배려의 회로

선택적 배려는 배려가 아니다.

byRyan Choi

배려라는 단어는 언제나 따뜻한 느낌을 준다. 그런데 일상에서 마주하는 몇몇 사람들을 지켜보면, 그 배려의 방향이 묘하게 어긋나 있는 경우를 종종 본다. 어떤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세심하고 친절한 사람이, 상황이 조금만 바뀌거나 대상이 달라지면 믿을 수 없을 만큼 무심해진다. 나는 이것을 '배려의 회로'가 어긋난 상태라고 부른다. 회로가 올바른 방향으로 작동하지 않으면, 그건 배려가 아니라 얄팍한 처세일 뿐이다.


이 배려의 회로가 어떻게 고장 나 있는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곳이 있다. 바로 운전석이다. 동승자를 위해 잠깐 멈춘다는 명목으로 뒤따르는 차들의 흐름을 막고 비상등을 켜는 사람을 보라. 자신의 사람을 편하게 하기 위해 수십 명의 시간을 무심히 갉아먹는다. 타인의 불편을 담보로 내 사람만 편하게 해주는 것은 배려가 아니다. 그것은 타인의 시간을 내 편의를 위해 함부로 갉아먹는 이기심이다.


이런 고장 난 회로는 운전석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매일 부대끼며 살아가는 온라인 게임에서도 너무나 흔하게 목격된다. 매번 회의 시간마다 5분, 10분씩 늦게 나타나는 사람이 있다. 바쁘다는 한마디로 변명하는 동안, 기다리는 사람들의 시간은 그 사람의 수만큼 곱해져 허공으로 사라진다. 자신의 일정만이 중요하다 하여 타인의 시간은 휴지조각처럼 취급하는 태도는, 배려의 회로가 끊긴 명백한 증거다.


주차하는 모습에서도 그 사람의 배려의 회로는 어김없이 드러난다. 텅 빈 주차장이라는 핑계로, 혹은 잠깐이라는 이유로 선을 밟고 삐딱하게 주차하는 사람들. '나 하나쯤이야', '잠깐인데 뭐 어때'라는 안일한 생각은 누군가의 불편은 전혀 상상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업무를 대충 넘겨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거나, 엘리베이터가 닫히려는 찰나에 열림 버튼을 누르지 않는 것. 이 모든 것이 같은 문제다.


진짜 배려란 무엇일까. 나와 내 주변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넘어,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 미치는 나의 영향력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다. 또한 내 편의가 누군가의 불편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스스로 브레이크를 거는 절제력이기도 하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순간적으로 주목받을 수 있지만, 배려의 방향까지 올곧은 사람은 주변의 신뢰와 좋은 평판을 얻고 오래도록 사람들 곁에 남을 수밖에 없다.


배려의 회로가 올바르게 작동하려면 자기 객관화가 먼저다. 세상의 중심에 나를 놓지 않고, 타인과 연결된 거대한 관계망 속의 한 점으로 스스로를 인식하는 연습이다. 내가 편하려고 다른 사람의 흐름을 막는 어리석음을 멈추려면, 먼저 내가 만드는 파장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타인에 대한 감수성이란 거창한 희생이 아니다. 일상의 작은 순간마다 내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한 번 더 생각하는 잠깐의 멈춤이다.


나이가 들고 온라인 게임생활의 연차가 쌓일수록, 이 배려의 회로가 얼마나 중요한지 더 선명하게 느낀다. 결국 배려는 규범이나 강요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일상의 작은 선택들이 쌓여 태도가 되고, 태도가 쌓여 신뢰가 된다. 선택적으로 작동하는 배려는 언젠가 반드시 들통나기 마련이다. 그 선택의 순간마다 회로가 나만을 향해 닫히지 않고, 타인을 향해 넓게 열려 있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진짜 어른의 태도 중 하나다.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어른이 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