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적당한 때

임시정부 편 (01)

by로크

본 소설은 심판자 망국의 백성 1막 '한성감옥 편', 2막 '밀명 편', 3막 '하와이 편'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하와이 교민들 간의 치열한 분쟁은 용만을 하와이 밖으로 내쫓았다.


박용만계가 연루된 재판은 미국과 일본 간의 동맹관계를 위해하는 외교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건이었다. 따라서 하와이 섬 내부에서 조용히 해결되지 못하고 본토의 계속적인 압박을 받았다. 국제관계를 중시하는 미국은 일본을 적대하는 용만의 군대를 하와이에 그대로 둘 수 없었고, 끝내 특별경찰권을 박탈하며 군대를 해산했다.


그와 달리 이승만계의 국민회 재정흠축혐의는 하와이에서 내부에서 발생한 사소한 문제에 불과했다. 그들은 고발됐던 혐의들에 대해 수사기관으로부터 모조리 무혐의 처분을 받으며 추락한 명예를 회복할 수 있었다. 이슈의 규모로서도, 그 결과로서도 승만의 완승이었다.


완승. 그 어휘가 하와이 교민들의 입에서 정직하게 나오지는 않았다. 지난 몇 년 동안 낫과 호미로 서로를 겨눴던 자리가 아직 그들의 손에 남아 있었다. 상처는 봉합되었으나 그 아래 자리에는 여전히 무언가가 있었다.

용만이 떠난 이후로 하와이는 완전히 이승만이 장악했다. 대한인국민회 하와이 지방총회는 모두 이승만의 사람으로 가득 채워졌고 교육사업 역시도 그가 뜻하는 바대로 이루어졌다.


이승만과 박용만 사이의 갈등을 중재하는데 실패한 중앙총회는 처음엔 파국으로 끝나버린 상황에 유감을 표했다. 하지만 한인슬롯가 다시 안정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이자 그의 통솔력을 인정하며 아픈 상처를 애써 봉합했다.


그해 겨울. 태평양의 작은 섬에서 형제가 서로 갈라진 자리는 바다 넘어 어느 누구의 시야에도 담기지 않았다. 하와이의 이승만도, 미국 본토를 헤매는 박용만도, 그들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세계의 지도 위에서 아직 아주 작은 점 위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그 지도 위의 다른 자리에서는 완전히 다른 국면이 접어들고 있었다. 제국주의적 팽창정바카라들이 서로 충돌하면서 발발했던 세계 1차 대전이 거의 막바지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마지막까지 전선에 남아있던 동맹국 독일은 미군의 계속되는 공격에 패퇴를 거듭했고 협상국은 승전 이후 가져가게 될 막대한 전리품에 벌써부터 군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혼란의 시기. 미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의회에 참석했다. 대통령이 의회에 몸소 출두할 때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윌슨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의회에 참석한 이유는 세계대전의 종결을 앞두고 그동안 정치학자로서 구상해왔던 이상을 실현시킬, 다신 없을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918년 1월. 하원의장 제임스 챔프 클라크는 대통령의 참석소식을 의원들에게 알리며 연두교서의 일종으로 의회에서 연설할 기회를 제공했다. 클라크의 소개에 따라 윌슨은 의원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의회의 가운데에 섰다. 그리고 떨리는 입술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여러분, 지난 1917년 4월 우리는 세계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전쟁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는 전 세계가 고통받고 있는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하여, 정의롭고 영속적인 평화를 세우기 위하여 미국의 확고한 입장을 밝히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윌슨은 이번 참전으로 인하여 미국이 국제슬롯에서 차지하는 입지가 변화하였음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의회에서 하는 이 발언이 미 대륙을 넘어 세계대전에 참전한 협상국들의 목표 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사실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는 처음 보였던 긴장 섞인 태도가 무색할 만큼 점차 능숙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우리의 목표는 단지 전쟁의 종식을 넘어 인류 전체의 자유와 안전을 위한 정의로운 질서를 확립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전쟁은 앞으로의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이 될 것이며 저는 이 자리에서 14개조 평화원칙을 발표함으로서 새로운 국제질서를 구축하고자 합니다.”


그는 미리 준비해온 교서를 펼쳐 읽기 시작했다.


“제1조 모든 평화 조약은 공개적으로 체결되어야 하며, 이후에는 어떠한 비밀 외교나 비밀 협정도 존재해서는 안된다. 외교는 언제나 공개적으로, 국민의 눈 앞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제 2조 공해는 평시와 전시 모두에서…”


14개조 평화원칙을 윌슨이 읽어나가자 의회에 모인 이들은 너나할 것 없이 대통령의 목소리에 주목했다. 기자들은 역사적인 순간을 포착하고자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으며 누군가는 재빠르게 윌슨의 말을 받아적기 시작했다. 윌슨은 참석자들의 그런 고생을 모르는지 쉬지 않고 계속 읽었다.


“…제5조 식민지 문제를 해결할 때에는, 관련된 식민지 주민의 이익과 전쟁 당사국의 정당한 주장을 공평하게 고려해야 한다.

제6조 모든 외국군은 러시아 영토에서 철수해야 하며…”


세계대전의 원인이 되기도 했던 식민지 문제에 대하여 윌슨은 강대국의 최고지도자 중에서 가장 전향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이는 각각의 민족이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서 그 귀속과 정치 조직, 운명을 결정하고 다른 민족이나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않을 것을 천명한 집단적 권리로서, 후에 민족자결주의라고 불리기도 한 자결권을 의미했다. 미국의 대통령이 스스로 내 건 이 표어는 전 세계의 수많은 식민지 국민들을 가슴 설레게 했다.


조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서울의 어느 골목의 청년이, 상해의 어느 지하 하숙방의 노인이, 하와이의 어느 사탕수수밭의 소녀가, 그 어구를 서로 다른 자리에서 받았다. 그리고 그 어구를 받은 손끝은 서로 다른 자리에서 같은 결로 떨렸다.


윌슨은 자신이 주창한 평화원칙이 식민지 국민들의 독립운동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채 계속 연설을 이어 나갔다.


“…제14조 모든 국가들이 상호 보장된 독립과 영토의 안전을 위해 국제연맹을 설립해야 한다.

이 원칙들은 우리 미국이 추구하는 정의로운 세계의 기초이며, 그 어떤 보복적 조치나 탐욕, 영토적 야욕과도 무관한 것입니다. 우리는 인류 전체가 진실하고 자유로운 협력 속에서 평화를 누리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싸우는 이유이며, 이 목표가 달성될 때에만 진정한 평화가 올 것입니다.”


윌슨이 교지를 모두 읽자 의원들이 그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윌슨은 자신이 구상한 새로운 국제질서 - 대소국가를 막론하고 평화와 정의를 유지하기 위한 국제연맹의 탄생을 꿈꾸며 자리에서 내려왔다. 세계대전의 종결을 앞두고 미국의 대통령이 주장한 14개조 평화원칙은 각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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