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승냥이
결혼 전의 자아는 분명히 미친놈이었다. 예민하다는 말도 고급진 표현이었다. 건드리면 콱!! 불편하면 빽!! 이건 미친놈이 확실했다. 사람이란 부드러운 단어 대신 '인간'이라는 말을 더 좋아했다. 군상을 쪼개보며 선을 긋고 서랍에 넣어 관찰하길 좋아했다.
이 새끼는 왜 저럴까, 저 새끼는 왜 저럴까. 이 슬롯는 왜 저럴까.
탐구하려는 마음과 냉소적인 태도가 만나서 부적절한 사상을 만들었다. 허무주의와 투쟁과 회의가 어지러이 섞였다. 다분히 공격적이고 선동적인 메시지를 입에 물고 산 듯. 다행히 어릴 적 어머님은 길가는 사람을 물거나 아스바리 걸어 자빠뜨려서는 안된다고 가르쳤다. 덕분에 경찰서에 잡혀가진 않고 온라인카지노에 불만을 싸지르는 정도에서 멈췄다.
결혼을 했고, 남편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 깨닫는 연차가 되었다. 가정의 원칙과 행동규범은 배우자로부터 나온다. 철학과 정신을 계승하여 집안 곳곳에 구현하는 것이 남편의 역할이다.(a.k.a 살림)
ENTP인 배우자는 거의 모든 것에 '그럴 수 있지'라는 관용을 보여준다. 그녀에게 '안되는 것'은 의외로 단순하다. 이를테면 아직 반이나 잘라서 쓸 수 있는 호박을 통째로 버린다거나 계획없이 소중한 휴일을 날리는 것 따위가 '절대 안되는 것'의 범주에 들어갔다. 그 이외엔 한없는 관용이었다. 트럼프가 지구를 멸망시키거나 내가 수억원을 날려먹거나 누군가가 굉장히 충격적인 일에 휘말리는 것도 모두 그녀에겐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그 분의 철학을 계승하여 살다보니 불편한 세상, 이상한 행동, 미친놈들의 사상 등을 바라보는 시선도 꽤나 너그러워졌다. 세상은 둥글고, 다양한 사람들이 참 많다는 정도의 갸웃거림이 액션의 최대치가 되었다. 예민하지 않으니 세상의 빈틈도 보이지 않았다. 흐린 눈과 적당한 허무주의, 관용을 가장한 무관심이 이리저리 섞여 꽤나 '성숙한' 어른 흉내를 낼 수도 있게 되었다. 흉내라는 표현은 거의 정확하다.
글에 힘은 분명 원숙함과 너그러움에서 나올 것이다. 가장 높은 차원의 정신이 가장 어려운 표현방식으로 드러난다. 글의 가치는 그러한 고고함과 거리감에 있다. 그러나, 적어도 온라인카지노를 비롯한 인스타에서 어그로를 끌 목적이라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선택이란 항상 두 점 사이의 어드메에 있지만, 언어로는 그 미세한 지점을 찝어내기 어렵다. 그러니 그냥 극단적인 두 선택지를 말해보자.
하나는 승냥이다. 그냥 아젠다를 물어뜯고, 불편함을 콱! 찌르고, 미운 것을 꼬집고 속 시원하게 빼액! 소리지르며 뛰어다니는 것이다. 거대한 코딱지를 파내거나, 미팅 중간 참고 참았던 방구를 터뜨리듯 본능적인 시원함을 선사하는 것이다. 앞뒤 가릴 것 없는 막무가내식 속시원함. 물론 이런 글이 저급하고 멍청하다는 뜻은 아니다. 무가치하다 치부하기엔 이 또한 일련의 예술의 영역이 아니겠는가.
다른 하나는 역시 세로토닌쪽에 가까울 것이다. 이 분야는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이라 [개쩐다]라는 비속한 말로 동경하고 있다. 내가 특히나 좋아하는 온라인카지노의 몇몇 작가님들이 그러한데, 단순히 온라인 콘텐츠라고 치부할 수 없는 중독성이 있다.
빠져들고, 곱씹게 되는 것이다. 술먹고 개뻗은 다음날 땡기는 복지리와 같다. 부드러운 글넘김. 해묵거나 아릿한 것들을 건드릴 때는 앗싸리 시원하거나 자극없이 포근해야 제맛인데, 그 경계를 찾는 것은 소수에게만 허락된 재능이자, 그마저도 운이 따라줘야 하는 것이다.
어차피 복지리 글은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이라 단념했다. 그리 인류애가 넘치지도 않을 뿐더러, 여차하면 날뛰려는 손 끝과 이제 나이 마흔먹고 그러면 안된다고 타이르는 머리가 적절한 합의를 거치지 못한 상태다. 승냥이와 복지리 중간은 없을까 생각해봤는데, 그 적절한 선을 우리는 소위 '글맛'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이 경계를 찾아가는 중인데 그래서 이 글 저 글 아무 써보고 있다. 세상과 거친 시비가 붙거나 이혼을 하지 않는 한 내 글이 다시 승냥이가 될 일은 없을 것 같고 이제 개쩔게 쓰는 일만 남았는데, 아이고야. 그거 어떻게 쓰는거냐.
여러분은 그 사이 어떤 지점에서 손을 놀리고들 계시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