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이름 한 줄 남기지 못한 족속이 어떻게 천 년동안 이스라엘의 적이 될 수 있었을까요?
고대 근동의 왕들은 자신이 무너뜨린 성읍과 민족의 이름들을 돌에 자랑스럽게 새겼습니다. 애굽의 바로는 신전 벽에 정복지 목록을 남겼고, 앗수르 왕은 굴복시킨 왕의 이름을 비문에 줄줄이 적었습니다. 유명한 '메르넵타 석비(Merneptah Stele)'에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도 등장합니다. 하지만 '아말렉(Amalek)'은 고대 근동의 어떤 역사 기록에도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고고학자 요하난 아하로니(Yohanan Aharoni)의 설명처럼, 이들은 거대한 건축물이나 비석을 세우지 않고 네게브(Negev) 사막을 떠돌던 유목 민족이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들이 섬긴 신의 이름조차 전해지지 않습니다. 블레셋에는 다곤이, 모압에는 그모스가, 암몬에는 밀곰이 있었지만 아말렉에게는 신의 이름조차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성경은 이 이름 없는 족속을 결코 잊지 않습니다. 출애굽 직후 르비딤에서 처음 이스라엘과 싸웠던 아말렉은 사사 시대와 사울과 다윗 시대를 지나, 바사(페르시아) 궁정의 하만에게까지 이어집니다. 그 사이에 놓인 시간은 무려 천 년에 가깝습니다. 하나님은 "대대로 아말렉과 싸우겠다"고 맹세하셨습니다(출 17:16). 더 나아가 신명기는 아주 역설적인 명령을 내립니다. 아말렉이 한 일을 기억하라고, 그리고 동시에 그 기억을 천하에서 지우라고 말씀하십니다(신 25:17-19). 기억하면서 동시에 지우라니,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많은 사람이 아주 간단히 대답하였습니다. “아말렉은 저주받은 혈통이고, 그 피를 이은 자는 영원히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오랜 시간 동안 이렇게 성경을 읽어왔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천천히 읽어보면 다른 그림이 드러납니다. 월터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이 지적하듯, 성경이 아말렉을 고발하는 진짜 이유는 그들의 '피'가 아니라 그들의 '방식'에 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걸어갈 때, 지쳐서 행렬 맨 뒤에 처진 가장 약하고 병든 자를 노렸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힘없는 약자를 짓밟는 방식, 바로 그것이 아말렉의 정체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특정 민족을 영원히 미워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아말렉이라는 이름을 통해 약자를 착취하는 폭력의 방식을 철저히 경계하고 미워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저는 이 글을 통해 네가지 측면에서 차례로 살펴보며 답을 찾고자 합니다. 첫째, 네게브 사막에 살았던 유목민 아말렉의 역사적 실재를 살피겠습니다. 둘째, 르비딤 광야와 신명기가 그어 놓은 도덕적 경계선의 참뜻을 밝히겠습니다. 셋째, 사무엘하 1장에 나오는 아말렉 청년 이야기의 숨겨진 반전을 드러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에스더서가 고발하는 오래된 폭력의 반복을 추적하겠습니다. 이 추적을 통해, 역사에서 흔적 없이 사라진 아말렉이라는 이름이 어떻게 오늘날 성경 속에서 우리를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이 되었는지 함께 밝혀내고자 합니다.
아말렉은 그 시작부터가 수수께끼입니다. 성경 창세기 36장을 보면, 아말렉은 야곱의 쌍둥이 형인 '에서'의 후손입니다.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가 낳은 아들이 바로 아말렉이었습니다(창 36:12).
그런데 창세기 14장을 읽어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집니다. 아브라함 시대에 전쟁이 났을 때, 여러 왕의 연합군이 '아말렉 족속의 온 땅'을 쳤다는 기록이 나오기 때문입니다(창 14:7). 아브라함은 에서의 할아버지입니다. 즉, 에서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아말렉이라는 땅이나 무리가 존재했다는 뜻이 됩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독일의 구약학자 클라우스 베스터만(Claus Westermann)은 창세기 14장의 기록이 어색하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이 구절을 '아말렉의 모든 족장'을 가리키는 것으로 읽자고 제안했습니다. 또 다른 학자들은, 훗날 성경을 기록한 사람이 옛날이야기를 적으면서 당시 독자에게 익숙한 이름인 '아말렉의 땅'이라는 표현을 미리 가져다 썼다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어느 쪽이든 분명한 사실이 하나 남습니다. 성경은 아말렉을 이스라엘과 완전히 남남인 이방인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아말렉은 이스라엘의 낯선 적이기 이전에, 야곱의 형 에서에게 뿌리를 둔 '먼 친척'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아말렉은 어디에서 살았을까요? 그들의 거처는 더욱 모호합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그들은 시내 광야 근처의 르비딤에 나타납니다(출 17:8). 민수기에서는 가나안 남쪽 네게브(Negev) 사막에 산다고 하고(민 13:29), 사울 왕 시대에는 이집트 근처까지 뻗어 있으며(삼상 15:7), 다윗 시대에는 시글락 마을을 불태우고 사막으로 사라져 버립니다(삼상 30:1). 한곳에 정착해 성벽을 쌓은 나라라면 이렇게 넓은 지역에서 번쩍번쩍 나타날 수 없습니다. 즉, 아말렉은 한곳에 머무는 나라가 아니라 사막을 넓게 떠도는 유목민 무리였습니다.
국내 구약학자 임봉대는 바로 이 점에 주목하여, 이스라엘과 아말렉의 싸움을 '농사짓는 정착민'과 '사막을 떠도는 유목민' 사이의 오래된 갈등으로 봅니다. 성곽 안에 모여 사는 농부나 상인에게, 집 없이 사막을 떠도는 유목민은 언제 곡식과 가축을 훔쳐 갈지 모르는 위협적인 존재였습니다. 당시 이 지역의 역사를 움직인 큰 힘 중 하나는 사막의 유목민과 농경지의 농민이 벌이는 끝없는 밀고 당기기였습니다.
고고학도 같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철기 시대에 접어들며 네게브 사막에는 작은 농촌이 빠르게 늘어났고, 사막의 길목을 지키기 위해 여러 요새가 세워졌습니다. 사막을 건너는 장사꾼들을 유목민의 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나중에 이 요새들은 이집트 왕 시삭의 공격으로 무너집니다. 이 역사적 사실을 보면, 왜 고대 비문에 아말렉의 이름이 없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유목민은 떠나고 나면 그 자리에 유물은 거의 남지 않습니다. 성을 짓지도 않고 거대한 신전도 없는 유목민은, 다른 나라 왕들이 정복하고 자랑할 만한 대상이 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유목민이라고 해서 무조건 적이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네게브 사막에는 아말렉 말고도 여러 유목 족속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금속을 다루는 기술자 무리였던 '겐 족속'은 모세의 처가 쪽 친척이기도 했는데, 이스라엘과 잘 어울렸습니다(삿 1:16). '갈렙 족속'이나 '여라므엘 족속'도 오랫동안 유목 생활을 했지만, 이스라엘 사람과 물건을 사고팔며 서로를 지켜주다가 결국 유다 지파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생활 방식이 달랐던 것이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가 중요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차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 성경 사무엘상 15장에 나옵니다. 사울 왕이 아말렉을 공격하러 가던 길에, 겐 족속에게 미리 사람을 보내 "아말렉 사람들 사이에서 빠져나오라"고 경고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나와 광야를 지날 때 겐 족속이 친절을 베풀어 주었습니다(삼상 15:6). 같은 광야 길에서 어떤 무리는 이스라엘을 도왔고, 아말렉은 등 뒤에서 칼을 꽂았습니다.
여기서 족보의 얄궂은 사실 하나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유다 지파의 위대한 영웅 '갈렙'은 원래 '그나스 사람'이었습니다(수 14:6). 그런데 '그나스'라는 이름은 에서의 족보에도 나옵니다(창 36:11). 혈통만 따지고 보면, 이스라엘의 영웅이 된 갈렙과 이스라엘의 영원한 적이 된 아말렉은 같은 뿌리(에서의 집안)에서 뻗어 나온 셈입니다. 결국 누군가의 운명을 결정한 것은 핏줄이 아니었습니다.
아말렉은 끝까지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는 약탈자의 삶을 고집했습니다. 이들은 오직 자기 무리의 이익만 챙기는 '배타적 유목민’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튼튼한 왕국의 모습을 갖추자 아말렉의 위협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마침내 히스기야 왕 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세일 산에 숨어 있던 아말렉의 남은 무리를 몰아냈다는 기록(대상 4:42-43)을 끝으로, 아말렉은 역사 속에서 완전히 사라집니다.
그럼에도 질문은 남습니다. 단순히 살아남기 위한 싸움이었다면 모압이나 암몬, 에돔 같은 다른 민족도 이스라엘을 지독하게 괴롭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유독 "대대로 싸우겠다"고 맹세하신 대상은 오직 아말렉뿐입니다. 사막의 지리적 환경이나 유목민이라는 사실만으로는 하나님이 왜 그토록 아말렉에 대해 분노하셨는지 완벽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 진짜 이유는 르비딤 광야에서 아말렉이 칼을 겨눈 '치사하고 잔인한 방식'에 숨어 있습니다.
아말렉이 르비딤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기습한 사건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 직전, 이스라엘 백성은 마실 물이 없어 모세와 크게 다투었습니다. 물을 마시지 못해 행렬 맨 뒤로 처진 사람들, 즉 가장 지치고 약한 사람을 아말렉이 정확히 노렸습니다.
출애굽기가 이 사건의 '뼈대'를 보여준다면, 신명기 25장은 이 사건의 '도덕적 의미'를 설명합니다. 신명기 25장 17절에서 18절을 보면, 아말렉은 이스라엘 백성이 피곤하고 지쳤을 때 뒤에 떨어진 약한 사람을 쳤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평가합니다.
그렇다면 아말렉은 왜 굳이 약한 사람을 공격했을까요? 요람 하조니(Yoram Hazony)는 전쟁의 논리로 이 장면을 분석합니다. 보통 전쟁은 상대를 굴복시키거나 전리품을 얻기 위해 상대의 가장 강한 군대와 싸웁니다. 그러나 아말렉은 정반대였습니다. 무기를 다룰 줄 모르는 사람, 아이를 안은 여인, 노인과 병자를 노렸습니다. 하조니는 이것이 오늘날의 '테러'와 같다고 말합니다. 상대의 몸이 아니라 마음을 꺾고, 공동체 전체를 공포에 빠뜨려 전진하지 못하게 만드는 잔인한 방법입니다.
실제로 이 공격은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훗날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백성은 두려움에 빠져 "우리의 아내와 자녀가 사로잡힐 것"이라며 이집트로 돌아가자고 울부짖었습니다(민 14:3-4). 가장 약한 사람을 노린 아말렉의 칼끝이 한 세대의 마음을 꺾어버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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