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사진 속의 어머니: 반 고흐와 안나 카르벤튀스

byLogos Brunch

왜 빈센트 반 고흐는 살아있는 어머니의 얼굴을 그리지 못했을까요?

1888년 10월, 프랑스 남부 아를(Arles). 서른다섯 살의 화가가 바카라상에 놓인 작은 흑백 사진 한 장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여동생 빌레미나(Willemina)가 고향 네덜란드에서 보내온 어머니의 사진입니다.

반 고흐 서한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얀 휠스커(Jan Hulsker)와 반 고흐 미술관 큐레이터를 지낸 레오 얀센(Leo Jansen)의 자료에 따르면, 빈센트는 이때 동생 테오(Theo)에게 급히 편지를 씁니다. "지금 나 자신을 위해 어머니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다. 색이 없는 흑백 사진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내 기억 속에 살아있는 그 색채의 조화로 다시 그려보려 한다."

다음 날 편지 내용은 더 구체적입니다. 얼굴은 잿빛, 배경은 옅은 초록, 옷은 진한 붉은색입니다. 그는 검은색으로 가득한 사진은 싫지만, 어머니의 초상화만큼은 꼭 갖고 싶다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깊은 의문이 생깁니다. 빈센트는 우편배달부, 농부, 카페 주인 등 이름 없는 평범한 이웃의 얼굴을 수없이 그렸던 화가입니다. 모델과 마주 앉아 몇 시간이고 상대의 눈을 들여다보며 영혼을 담아내던 사람이었죠. 그런데 왜 어머니만은 직접 마주 보지 못하고, '흑백 사진'과 '기억’을 거쳐야 색을 칠할 수 있었을까요?

반 고흐 전기 작가인 스티븐 네이페(Steven Naifeh)와 그레고리 화이트 스미스(Gregory White Smith)는 그의 내면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단서를 제시합니다. 빈센트가 한 달 전인 9월에 그렸던 자신의 자화상 역시 어머니의 초상화와 같은 '잿빛' 색조를 띠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머니의 색으로 아들의 얼굴을 칠한 셈입니다.

더욱 애처로운 사실은 편지에 덧붙여진 시(詩)입니다. 빈센트는 여동생에게 보낸 또 다른 편지에서 프랑스 농민 화가이자 시인이었던 쥘 브르통(Jules Breton)의 시구를 인용하며 고통스러운 질문 하나를 던집니다. "냉혹한 질바카라과 비방 속에서, 내 영혼이 찾는 저 여인은 누구인가?”

그 여인의 이름은 안나 코르넬리아 카르벤튀스(Anna Cornelia Carbentus)입니다. 위대한 화가 빈센트를 낳았지만, 끝내 아들의 거친 삶과 예술을 이해하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그녀는 아들이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난 뒤에도 17년을 더 살았습니다.

아들의 예술은 바로 이 어머니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어머니에게서 가장 멀리 달아남으로써만 그 예술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그 고통스럽고도 아름다운 역설의 지도를 따라가 보려 합니다.


제1장 고흐의어머니는 왜 마음문을 닫아야 했을까요?

안나는 1819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빌럼 카르벤튀스(Willem Carbentus)는 가죽 세공인이었지만, 1840년 개정 헌법 제본을 맡으며 '왕립 제본가'로 크게 성공하였습니다. 안나는 헤이그 중심가의 번듯한 2층집에서 자란 아홉 남매 중 둘째 딸이었습니다.

겉보기엔 남부러울 것 없는 가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집안에는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하는 짙은 어둠이 있었습니다. 언니 클라라는 간질을 앓았습니다. 당시 간질은 집안의 유전적, 정신적 고통을 덮어두기 위해 쓰던 점잖은 병명이었습니다. 클라라는 집안 체면 때문에 평생 결혼하지 못하고 그늘에 숨어 지냈습니다. 남동생 요하뉘스는 엇나간 길을 떠돌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아버지 빌럼 역시 1845년, 쉰셋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가족은 그의 진짜 병명인 정신병을 숨기기 위해, 열병으로 죽었다며 사인을 조작했습니다.

가족의 비극은 그 윗세대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할아버지 헤릿(Gerrit)은 일자리를 구하러 나갔다가 길에서 강도에게 맞아 죽었다고 전해집니다. 그 이전 세대 역시 네덜란드를 덮친 홍수와 전쟁, 역병으로 친척 대부분을 잃었습니다.

이런 끔찍한 상실의 기억 속에서 자란 소녀에게 세상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무서운 곳이었습니다. 그녀에게 행복은 믿을 수 없는 요행에 불과했고, 사랑하는 사람은 언제든 죽어 사라질 존재였습니다. 안나는 훗날 인생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 사람은 어리석다고 말했습니다. 요구하지 말고 그저 묵묵히 견디라는 것입니다.


쉬지 않는 손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불안은 안나의 손으로 옮겨갔습니다. 그녀는 평생 무서운 속도로 뜨개질을 했습니다. 편지도 뜨개질을 하듯 급하게 써 내려가, 앞뒤가 맞지 않고 뒤엉킨 문장이 수두룩했습니다. 네덜란드 미술사학자 레오 얀센(Leo Jansen)은 안나가 독서나 청소, 꽃그림 그리기에 맹렬히 집착한 것을 두고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으로 분석합니다.

자녀에게도 똑같은 처방을 내렸습니다. 우울한 감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다른 일에 계속 정신을 쏟으라고 가르쳤습니다. 이것을 겉으로는 '근면'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근면의 진짜 뿌리는 감사가 아니라 공포였습니다. 손을 멈추면 곧바로 어둠이 밀려올 것 같았습니다. 안식이 없는 손, 쉼을 허락받지 못한 영혼.

그녀의 신앙 역시 이 궤적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험난한 세월을 겪은 가문에게 종교는 영혼을 깨우는 기쁜 소식이 아니라, 두려움을 마취시키는 진정제였습니다. 안나 스스로도 신앙의 유일한 목적은 '보호와 위로'라고 못 박았습니다.


흐롯쥔데르트, 포위된 전초지

서른 살이 넘도록 혼처를 찾지 못하던 안나는 열 살 어린 여동생이 먼저 약혼을 발표하자, 1851년 서른한 살의 나이에 쫓기듯 결혼했습니다. 신혼살림을 차린 곳은 벨기에 국경 근처의 황량한 촌마을 흐롯쥔데르트(Groot Zundert)였습니다.

마을 주민 대다수는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개신교인은 고작 쉰여섯 명뿐이었습니다. 가톨릭 주민은 개신교를 '침략자의 종교'라 부르며 적대시했습니다. 헤이그의 세련된 도시에서 자란 안나는 촌사람의 투박한 방언을 알아듣지 못했고, 그들을 멸시했습니다. 마을 사람 역시 그녀를 반기지 않았습니다.

이토록 숨 막히는 고립 속에서 안나가 유일하게 매달린 가치는 바로 '체면'이었습니다.

목사관 안에는 세 가지 절대적인 계율이 세워졌습니다. 의무, 체면, 그리고 건전성(degelijkheid)입니다. 특히 네덜란드 교회의 핵심 가치이기도 한 '건전성'은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지 말라는 가혹한 명령이었습니다. 안나는 기쁜 일이 생기면 곧이어 찾아올 불행을 걱정했고, 슬픈 일이 생겨도 우울해하는 것조차 금지했습니다. "돈은 없지만 훌륭한 평판을 지키고 있다." 이것이 그녀가 내세운 삶의 훈장이었습니다.

이러한 강박 때문에 고흐를 비롯한 자녀는 동네 거리에 나가 놀 수 없었습니다. 안나는 가난한 하층민과 어울리면 타락한다며, 교양 있는 사람하고만 사귀게 했습니다. 결국 고흐는 담장 높은 정원 안에서 가족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친구 없이 고립 가운데 자랐습니다.

성벽은 바깥의 위험을 막기 위해 세웁니다. 하지만 성벽은 언제나 안과 밖 양쪽을 단절시킵니다. 안나가 불안을 덮기 위해 쌓아 올린 굳건한 의무의 성채는 거친 세상으로부터 가정을 지켜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동시에, 틀에 갇힐 수 없었던 아들 고흐의 영혼마저 그 성벽 바깥으로 영영 내몰고 말았습니다.


제2장 정원의 축복과 묘비의 망령

쥔데르트(Zundert) 목사관 뒤에는 길고 좁은 정원이 있었습니다. 어머니 안나는 집과 가까운 곳에 금잔화, 제라늄 같은 꽃을 심었습니다. 색깔보다 향기를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 꽃밭 너머로는 사과와 배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안나는 죽을 때까지 정원을 가꾸었습니다. 그녀는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보는 일이 행복의 필수 조건이라 믿었습니다. 아이에게도 작은 땅을 나누어 주고 꽃과 나무를 기르게 하며 '삶의 순환'을 가르쳤습니다. 반 고흐의 종교적 내면을 연구한 캐슬린 에릭슨(Kathleen Powers Erickson)에 따르면, 이 정원은 빈센트에게 거대한 상징의 교실이었습니다. 제비꽃은 봄과 용기를, 담쟁이는 다가올 겨울과 죽음을 뜻했습니다. 햇빛은 하나님이 우리 가슴에 부어주시는 생명이자 평화였습니다. 훗날 빈센트가 그린 해바라기나 씨 뿌리는 사람의 배경이 된 눈부신 태양은, 바로 이 어머니의 정원에서 처음 뿌리를 내렸습니다.

빈센트가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은 붉은 머리와 주근깨만이 아닙니다. 평생 멈추지 않는 '손'도 물려받았습니다. 그는 어머니처럼 무서운 속도로 편지를 썼고, 어머니가 그린 꽃 그림을 따라 그리며 처음 연필을 쥐었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인생은 죽은 것과 같다고 믿었던 어머니의 '불안한 손'이 아들에게로 넘어와 '창조하는 손'이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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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게 난 길은 하나도 없더라" "성경 속 왕조실록" “성경 속 노마드” "사랑의 9가지 습관(공저)"의 저자. http://youtube.com/c/LogosLibr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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