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돌게 하는 시

-안미옥 시인의 『저는 많이 보고 있어요』, 「썬캐처」를 읽고

by김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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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를 읽을 때 읽기 어려운 시와 읽기 편한 시를 구분한다. 시의 완성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시를 흡수하는데 걸리는 시간에 따른 구분이라 할 수 있다. 읽기 어려운 시는 낯선 형태, 낯선 단어가 등장해 나를 곤란하게 만들거나 익숙한 단어가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문장에 자리하고 있어 당혹스럽게 만드는 시를 말한다. 이런 시들은 이해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암호를 풀기 위해 단서들을 조합해 나가듯 시인의 문장 속에 숨어 있는 단서들을 조합하는 즐거움이 있다.


읽기 편한 시는 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앞서 말한 읽기 어려운 시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지만 여운이 남아 위로가 되는 시이다. 시인의 문장이 나의 경험과 일치한 적도 많다. 이런 시를 읽을 때는 시와 내가 하나 되는 즐거움을 느낀다. 그리고 소리 내어 문장을 읽는 순간, 그 문장 속에서 기억이 살아 숨 쉬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가끔 멍하니 한 문장에 머물러 한참을 빠져나오지 못한 적도 있다. 시의 안과 밖으로 시인과 소통하며 나도 모르게 동화하는 것이다.


안미옥 시인의 <썬캐쳐>는 내게 읽기 편한 시였다. 섬세하게 직조된 문장들은 처음에는 은은한 여운을 주었지만 읽을 수록 나를 들여다보고 세계를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썬캐쳐'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밝은 태양빛의 기운을 집 안으로 불러오기 위해 사용한 일종의 풍수 아이템으로 시에서는 시인이 오늘과 내일의 경계를 넘나들도록 도와주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매일 밤 자기 전 내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깨어나선 내가 무엇이 될지 생각해.


시의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시인은 잠이 들고 깨어나며 썬캐쳐를 통과한다. 동시에 썬캐쳐를 통과하며 아름답게 부서지는 햇빛과 대조적으로 불안하고 위태로운 자신의 상황과 직면한다.


표면이 거친 돌로 된 심장으로 뛰고 있던 걸까. 막다른 벽. 컵 속에서 깨진 물의 파편처럼 놓여 있었나.


현실에 두 발을 딛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바닥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왜일까. 유리발로는 그럴 수 없었던 것이다.


이 문장을 읽자 수영장에서 바닥에 발이 닿지 않아 목 끝까지 두려움이 차오르던 순간이 떠올랐다. 시인이 현실을 살아가며 느꼈을 두려움과 막막함이 내게도 덮쳐왔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바닥을 유리발로 간신히 딛고 살아가는 삶은 얼마나 고단한가.


하지만 시인은 끝까지 좌절하지 않고 ‘발을 깨뜨려야 한다고 해도 좋다. 내가 어디에 서 있던 것인지는 아무도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한 뼘의 사랑과 한 발자국의 위로가 얼마나 커다랗고 깊은지.’ 라며 스스로에게 위로를 건넨다. 시인이 밤과 낮의 경계를 부단히 넘나들며 알고 싶었던 것은 현실의 바닥을 딛는 방법이 아니라 ‘내 마음대로 되진 않았지만’ 내가 지금까지 ‘단단하고 투명한 눈동자’로 축적해온 시간의 의미 아닐까. 그 시간은 결국 나의 발끝부터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될테니.


이 시는 한 마디로 어제와 오늘의 경계에서 산산조각난 나 자신을 위로해 주는 시였다. 썬캐쳐를 통과한 빛들이 내 몸을 통과한다. 어느 새 투명해진 몸을 바라보며 창문 아래서 시인과 나의 형체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어진다.


초사람.jpg고사리 작가, <초사람>, 국립현대미술관


‘오늘은 어떤 형체로 살았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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