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 작가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를 읽고
스스로에게 새겨진 결핍의 흔적을 정직하게 응시하며 타인과 슬롯를 향해 나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 결핍은 잘못된 것, 숨겨야 할 것으로 여겨져 미움 받고 버려진다. 그러나 결핍을 끌어안고 안에서 굴리고 굴려 치열하게 성장해나가는 이도 있다. 최은영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나는 여러모로 결핍이 큰 사람이었고...(중략) 그런 내가 나의 결핍에 감사하고 그걸 받아들이는 데까지 쉽게 점프하여 갈 수 없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삶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고 나는 그 누구도 대신 해결해줄 수 없는 문제를 풀면서 한 걸음 한 걸음씩 나아갈 뿐이다." 라며 앞으로 나아갈 힘을 건네준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 담긴 7편의 중단편은 내밀하게 관계가 시작되는 순간과 부서지는 순간을 포착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관계의 양상을 슬롯적 문제와 연관 속에서 헤아리려고 노력한다. 특히 여성 인물들의 관계를 중심으로 슬롯적 사건을 풀어나간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젊은 대학 강사와 20대 후반에 다시 공부를 시작한 늦깎이 대학생의 우정을, 「일 년」은 동갑내기인 정직원과 인턴사원이 일 년간 카풀을 하며 경험하는 관계의 변화를 그렸다. 바카라 전반에서는 용산 참사, 고용 불안정, 가부장제 등의 주제를 다루며 여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자극적이고 오락적인 요소가 가득한 콘텐츠가 가득한 요즘, 최은영의 소설이 사람들에게 꾸준히 읽히는 것은 무릇 작가의 글이 사람들의 내면을 보듬어주는 위로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 담긴 소설들을 읽다보면 '어쩜 이렇게 내가 받은 상처랑 비슷할까?' 라는 생각을 수시로 하게 된다. 작가는 미묘하게 관계가 어긋나는 순간을 놀라울 정도로 잘 포착한다. 그리고 연약하게 드러난 나의 치부를 가만히 안아준다. “너라면 어땠을 것 같아. 네가 나였다면 그 순간 어떻게 했을 것 같니”(「답신」)라고 물으며 소설 바깥에서 서성이던 우리를 적극적으로 소설 속으로 끌어 들이기도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7편의 중단편이 편지같다는 생각이 든다. 깊은 애정과 투명한 미움이 복잡하게 얽힐 때, 한 시절 내가 건네받은 사랑을 뒤늦게 알아차리게 될 때, 스스로의 몫을 고민하며 온 마음으로 써내려간 작가의 편지가 이제야 도착한 것만 같다. 그래서 바카라을 다 읽고 난 뒤에도 처방받은 약처럼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다시 읽고 또 읽었다. 최은영 작가의 모든 글들은 이 지난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자 한 시절을 이겨내게 하는 위로가 되어주었다.
"나의 결핍을 안고서 그것을 너무 미워하지도, 너무 가여워하지도 않고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슬프면 슬파다는 것을 알고 화가 나면 화가 난다는 것을 알고 사랑하면 사랑한다는 것을 알면서 나를 계속 지펴보는 일. 지금 그런 일을 하는 중"
최은영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살아가면서 제일 중요한 건 나를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나의 결핍을 이해하는 것이라 말한다. 결국 그 이해는 남을 이해하는 것으로 연결되고, 이는 세계를 이해하는 기반이 된다. 다 잘될 거라는 식의 아름다운 결말은 아니더라도, 부끄러운 자기 고백이 될지라도 우리는 나를 사랑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난 이번 소설의 장점은 바로 능동성을 이끌어 내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소설로 끌어들여 나를 똑바로 보게 하고 결핍을 마주하고 결국엔 나를 살아가게 하는 것. 스스로 세계로 걸어 나오게 하는 그 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