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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시를 쓰는가?

-영화 『나의 사적인 예술가』 를 보고 쓰는 나의 이야기

by김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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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의 사적인 예술가』 를 보고 나와서 가장 먼저 마주한 감정은 씁쓸함이었다. 뉴욕의 계절을 따라가다 자연스레 쓸쓸해진 것도 있었지만, 윌렘 대포가 연기한 '에드 색스버거'의 감정선을 따라가다가 나도 모르게 몰입한 까닭이었다. 거기다 예술가와 관련된 작품만 보면 예술가의 삶을 나에게 대입해 보는 버릇 때문이기도 했다.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은 나의 시집이 어느 헌 바카라방 깊은 곳에 놓여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지나가버린 전성기를 그리워하는 작가처럼 청승을 떨고 말았다.


그런데 나는 일단 이번 글에서 영화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내가 영화를 보고 떠올렸던 이야기는 '나는 왜 시인이 되고자 하는가'와 '나의 가치는 어디에서 오는가'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앞선 글에서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질문했다면, 이번에는 '왜 나는 시를 선택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하게 될 것이다.


시를 창작하는 습작생으로서 살아온 기간을 계산해 보니 문예창작학과 재학생 시절을 합쳐 무려 9년에 이른다. 이렇게 쓰고 보니 조금은 무서운 생각이 든다. 한 분야에서 10년 가까이 무언가를 해온 이들을 전문가라고 부르는데, 사실 나는 아직 습작생이다. 곧 10년 차 습작생이 될 예정이다. 사설에서 하는 강의를 도장 깨듯 듣고 다니고, 매년 대회를 준비하는 사람처럼 1년 치 공모전 일정을 확인하고, 투고하고, 기다리고, 실망했다.


제대로 다시 시를 써야겠다 맘먹기 전까지 나는 막연하게 문학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중학교 때 교과서에 나오는 시들을 보며 시를 쓴다는 것은 정말 다른 세계를 창조하는 일이구나 지레 겁을 먹었었다. 시는 아무나 쓰는 게 아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끊임없이 뭔가를 끄적거렸고 쓰고자 하는 열망을 버리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지금 그때 쓴 것을 보라고 하면 외면하고 말 테지만...) 이때는 소설에 더 관심이 많았고, 판타지 소설을 읽으면서 쌓인 상상력을 글로 풀어내고 싶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문예창작학과를 가고 싶다고 생각했고 운 좋게 원하는 과로 진학할 수 있었다.


문창과에 진학하면 자연스럽게 작가의 길로 연결되고 문학하는 사람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학교에 와보니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내 또래의 아이들 중에 이렇게 글 잘 쓰는 아이들이 많았다니. 또 한 번 좌절을 경험했다. 쉽게 포기하는 내 단점이 이럴 때는 장점처럼 활용됐다. 시 수업을 듣기보다 평론 수업이나 희곡 수업을 더 열심히 들었다. 시를 사랑하지만 쓸 수 없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시를 잘 읽어내는 사람이 되는 것밖에 없었다. 읽기에 몰두하며 자괴감이 드는 상황을 버텼다. 한편으로는 소심하게 시 소모임을 이어나가면서 창작자와 독자 사이에 발을 하나씩 걸치고 시와 밀당을 이어나갔다. 노트에 시를 위한 짧은 단상들을 남기며 시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 시를 버리고 도망갈 용기도 없으면서 먼저 거리를 두는 척했다는 생각이 든다.


시를 다시 만나기 전까지의 일대기는 너무 구질구질해서 말하고 싶지 않다. 시를 만난 순간도 결코 아름답지는 않지만, 먼 길을 돌아 시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을 나는 운명이라고 믿는다. 코로나 시기에 모두가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고, 또 다른 미래를 모색하던 시기에 나 또한 너무 쉽게 온라인 게임에서 언제든지 내칠 수 있는 대체 인력이 되어 버렸다. 어딘가에서 쉽게 대체되는 사람이 아닌 나로서 인정받고 싶었다. 그렇게 되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했다. 그때 나는 시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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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써야 된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회피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9년의 시간에서 제대로 시를 쓴 건 6년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생계에 치여 3년 동안은 거의 시와 멀어져 고급독자로서 만족하며 살았다. 다시 시를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읽는 것으로 문학에 대한 마음의 부채를 갚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시를 버리지 않았다고, 나는 시를 여전히 사랑한다고 증명하고 싶었다. 그런데 북토크나 작가와의 대화 같은 행사에 다녀오면 항상 서글퍼졌다. 시에 대해 이야기하며 행복하는 시인과 독자들을 보며 나도 온전히 공감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시를 쓰고 있지 않은 동안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는 걸 매 순간 직면하고 있었는데, 이것을 인정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


시를 제대로 써봐야지 마음먹었을 때 나는 무척이나 당혹스러웠다. 애드 섹스버거가 오랜 시간 돌고 돌아 시를 쓰려고 했을 때 마주했던 그 막연함이 내게도 몰려왔다. 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조차 잊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사설 수업에서 진행하는 합평을 받아야겠다고 마음먹었고, 수업을 신청했고, 바로 후회했다. 오랜만에 마주한 나의 시는 기본도 갖추지 못한 시였고, 초라했다. 순식간에 쪼그라든 작품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나는 왜 시를 선택했을까 후회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합평에서 상처받고도 시를 또 쓰고 싶었다. 누가 부추긴 것도 아니었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이었구나. 시의 형태를 빌어 말하고 싶구나. 가족에 대해, 미래에 대해, 두려움에 대해, 잊었던 꿈에 대해 나는 계속 말하고 싶었구나. 이 사실을 깨닫고 나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시를 썼던 것 같다. 주변을 관찰하고, 다른 사람들의 말을 주워듣고, 메모하고, 영화를 보고, 예술작품들을 관람하면서도 시만을 생각했다. 영감을 받기 위해 돌아다니고 좋은 문장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떠오르면 메모하기 바빴다. 시에만 미쳐서 산 건 아니지만 모든 순간에 시를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9년이 흐른 지금, 포기하지 않고 시를 쓴 나 자신을 지금이라도 칭찬해주고 싶다. 습작생이면 어때. 나는 여전히 시를 사랑하는 걸. 시도 아직 날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는 걸. 정신 승리를 하고 싶다. 이 긴 시간 동안 내가 시를 떠날 수많은 이유들이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버티는 자가 결국 승리한다'이지만, 나는 그 말을 어느새 믿고 있다. 끝까지 버텨볼 것이다. 내 시가 완성되는 날을 마주할 때까지.

images.jpeg영화 『나의 사적인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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