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린 작가의 『눈부신 안부』를 읽고
"사람의 마음엔 대체 무슨 힘이 있어서 결국엔 자꾸자꾸 나아지는 쪽으로 뻗어가?"
안부는 따뜻하다. 누군가에게 건네는 안부는 건강을 염려하는 마음을 담기도 하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기도 한다. 그래서 안부를 묻는다는 행위 자체는 반가움을 담고 있다. 그런데 안부를 물어볼 대상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안부가 닿을 대상이 부재한다면 안부를 전한다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소설 <눈부신 안부>는 대상이 부재한 안부일지라도 그 안부가 결국 나를 위로하는 힘이 되어준다는 것을 알려주는 특별한 소설이었다. 단절되었던 누군가의 안부를 궁금해하고 그에게 말을 걸고 싶어 하고 결국은 그 존재에게 다가서는 순간을 맞이하는 장면은 유난히 인상 깊었다.
소설은 예상치 못한 사고로 언니를 잃은 주인공 해미가 유년의 상처를 뒤늦게 치유하며 성장하는 가슴 따뜻한 스토리를 담고 있다. 백수린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부드러운 문장 덕분에 소설을 읽는 내내 가슴 한 켠이 아려오왔다. 해미는 언니의 죽음으로 너무 일찍 인생이라는 비극에 대해 알아 버렸다. 엄마와 아빠는 언니를 잃은 고통을 해미에게 감추지 못할 정도로 힘겨워하고 어린 동생은 무슨 일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해맑기만 하다. 이런 끔찍한 상황 속에서 해미는 갑작스럽게 장녀가 되어버렸고, 선의의 거짓말로 엄마와 아빠를 안심시키고 동생의 어리광을 받아주며 혼자 꾸역꾸역 슬픔을 삼켜낸다. 심지어 아빠와 헤어져 독일로 가게 되면서 상실의 슬픔과 함께 이방인으로서의 외로움까지 겪게 된다.
해미는 언니를 지독히도 그리워한다. 걷다가도 공부를 하다가도 언니의 흔적들을 느끼며 언니가 왜 떠나야만 했는지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면서 때때로 혼잣말로, 일기장에 남긴 문장들로 언니에게 안부를 남긴다. 언니는 대답이 없지만 해미는 언니에게 "사람의 마음엔 대체 무슨 힘이 있어서 결국엔 자꾸자꾸 나아지는 쪽으로 뻗어가?" 라며 나름 어리광을 피운다. 그리고 해미는 자신의 슬픔을 제쳐두고 가족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타인만을 위한 거짓말을 떠올린다.
사실 해미의 거짓말은 아무도 다치게 하지 않는 순백의 거짓말이다. 열세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나는 괜찮다고, 혼자 잘 지낼 수 있다고 주변을 안심시키고 싶어 만들어 낸 말들. 심지어 거짓말에 현실감을 주기 위해 주변을 착실히 관찰하고 그 사실을 비밀 노트에 나누어 기록하며 외울 정도로 성실하게 행동한다. 그런데 이런 해미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미어진다. 작고 여린 아이가 슬픔을 혼자 삼켜내는 모습에서 나도 모르게 어렸을 적 나의 모습을 대입하게 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슬프게 하고 싶지 않아서 나 혼자 온전히 슬픔을 삼키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이렇게 슬픔에 잠겨있던 해미에게 손 내밀어 주는 다정한 타인이 나타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온몸이 따뜻해졌다. 해미는 독일에서 어렵사리 사귄 친구들을 통해 그 슬롯에 조금씩 적응할 수 있게 되고 한수 어머니의 첫사랑을 찾는 일을 통해 슬픔을 잠시 넣어두는 연습을 할 수 있게 된다.
소설의 시점은 유년시절과 청소년 시절의 해미와 어른이 된 해미를 넘나들며 이어진다. 사실 어른이 된 해미는 어린 시절의 일들을 완전히 묻어둔 채 무감각하게 살아간다. 자신이 언니의 죽음으로부터 느꼈던 감정의 바다가 계속 출렁이는 것도 모르는 채 일상을 살아간다. 그러다 우연히 대학 동창이자 미묘한 연애 감정을 주고받기도 했었던 우재와 재회하게 되면서부터 타인을 향한 해미의 감각이 점차 깨어난다. 더 나아가 해미는 자신이 미처 마주하지 못했던 상처받았던 어린 해미를 감싸 안아주는 일을 시작한다. 다른 이의 안부를 묻는 것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어느새 나의 안부를 묻고 나의 상처를 끌어안는 것으로 향한다.
이 작품에서는 해미와 여러 인물 간의 화해의 순간도 등장한다. 연이 끊어져 있던 누군가를 떠올리고, 안부를 묻고, 화해에 이르는 과정은 다정한 문장들에 잘 담겨있다. 소중했던 누군가와의,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진심 어린 화해라는 쉽지 않은 일을 해나가기로 다짐한 인물들을 보고 있자면 나이를 떠나 대견함이 든다.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어지기까지 한다. 그 묵직한 다짐은 허구의 세계에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실재하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에 내려앉는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가정을 이루지 못했고, 늘 공경했던 시인이 되지도 못했고, 뼈아픈 시행착오를 수도 없이 겪었어. 하지만 내 삶을 돌아보며 더 이상 후회하지 않아. 나는 내 마음이 이끄는 길을 따랐으니까. 그 외롭고 고통스러운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자긍심이 있는 한 내가 겪은 무수한 실패와 좌절마저도 온전한 나의 것이니까.” 이 부분을 읽을 때는 뒷통수를 맞은 것처럼 어안이 벙벙했다. 실패와 좌절에 굴복한 적은 있어도 그것을 내가 내 것으로 만든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었다. 그런데 내가 눈부신 존재라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는 이런 힘이 있을 수 있겠다 생각했다. 나 자신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실패의 순간에도 나를 믿어주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나와의 화해가 아닐까.
서투르고 미숙했던 어린 날을 떠올리면 괜스레 작아진다. 우리의 마음속엔 아직도 보내주지 못한 어린아이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각자 그 아이들을 보내기 위해 얼마만큼 노력했는지 떠올리면 우리 자신도 무척 기특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스스로를 가둬두었던 해미를 세상 밖으로 이끌어 준 사람들을 보면서 고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든든하게 누군가 곁에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이렇게 힘이 난다니 새삼 신기하다. 소설을 다 읽고 난 지금, 난 나에게 이런 말들을 해주고 싶다. 타인과 손잡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 것. 마음껏 안부를 묻고 전할 것. 나의 이야기를 상대편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것. 그렇게 서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삶은 더욱 빛날 것이란 것을 말이다.
마지막으로 소설을 읽으며 가장 마음에 남았던 문장을 다시금 되새기고 싶다. "네가 찬란히 살았으면 좋겠어. 삶은 누구에게나 한 번뿐이고 아까운 거니까." 해미가 성장해 나가는 동안 오히려 독자인 내가 힘을 받았다. 누구나 찬란히 살아가고 싶지만 때때로 좌절하는 일들이 생긴다. 그럴 때 다시금 힘을 낼 수 있는 건 한 번뿐인 인생이 너무 아름답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 세상에 혼자 감당해야 하는 슬픔 같은 건 없다. 우리는 언제든 서로를 힘껏 끌어안아 줄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