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나는 포기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제일 친했던 친구가 나보다 다른 친구와 더 친하게 지내는 걸 보게 되었을 때, 내가 믿었던 친구가 내 욕을 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뺨을 맞았던 때,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서류뭉치로 상사가 머리를 내려쳤을 때, 나를 사랑한다고 믿었던 사람의 마음이 거짓된 것임을 알았을 때. 지금 내가 나열하는 것들은 나이가 먹어가던 어느 해마다 나를 좌절하게 만들었던 것들이다. 떠올려보면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아직도 마음 한쪽이 아련하기도 하다. 하나하나의 사건들이 나에게 결정적 순간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내 인생을 뒤흔든 순간은 따로 있다.
나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학창 시절 동안 글을 썼고 글 쓰는 것을 제대로 배우겠다는 목표로 관련 학과에 진학했다. 나름 순조로웠다. 그리고 재학 시절 내내 방송작가가 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드라마를 무척 좋아했던 나는 드라마작가를 1순위로 지망하기도 했고, 라디오 인트로를 테이프에 녹음하고 인트로 멘트를 중얼거리며 라디오 작가를 꿈꾸기도 했다. 어떤 과정을 거치든 방송국에 들어가서 작가가 될 수만 있다면 행복할 것 같았다.
그러다 지인 분을 통해 우연한 기회로 방송 일을 하게 되었고, 1년 반을 휴학해 가며 방송 작가 일을 배웠다. 한 달에 60만 원을 받으며 일해도, 일주일에 3일은 날을 새워도, 내가 밥을 못 먹어도 출연자들 밥은 꼬박꼬박 챙겨야 해도 마냥 좋았다. 하고 싶었던 일을 바로 시작하게 되었고, 누구보다 빠르게 이 세계를 알아가고 있다 자부했기 때문이었다. 주변에서도 빨리 꿈을 이뤘다며 부러워했다. 그럴 때마다 나 자신이 기특했다. 꿈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그래서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방송작가 일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렇게 나를 서서히 잃어버리고 있는지도 모르고 주변을 돌아보지도, 잠시 하늘을 쳐다볼 생각도 없이 미친듯이 일만 했다.
작가 언니들은 말끝마다 ‘번 돈 다 병원비로 쓴다, 치사하고 더러워도 버티는 사람만이 살아남는다.’라고 하소연했다. 막내 작가였던 나는 이런 말들이 다 배부른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 자리에 있으니까 할 수 있는 말이라며 부러워했다. 나에게 그들의 자리는 아직도 까마득해 보였고, 언니들의 원고를 보며 공부하면서도 매번 현타가 왔다. 3년을 채워갈 때쯤 아래 연차의 작가 동생들에게 혼이 났다. 언니는 왜 이렇게 PD들 부탁을 다 들어주냐고. 언니 때문에 우리까지 부탁 같지도 않은 무리한 부탁들을 들어줘야 한다고 타박했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야 밑에 후배들이 똑같은 고생을 하지 않는다고 서운해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지시들이 무리한 요구일 수도 있다는 것을 뒤늦게 인식하게 됐다. 너무나 당연하게 해 온 일들이라 잘못된 것이란 것도 몰랐다. 참으면 되는 줄 알았고, 잘 버티고 있다고 믿었다.
그 뒤로 나는 내가 당한 것들을 후배들이 똑같이 겪고 있는 것을 알고 참을 수 없었다. 부당하다 생각했다. 그래서 아닌 건 아니라고 말했다. 작가는 방송국에 보조인력이 아니라는 사실을 조금씩이라도 알려주고 싶었다. 그런데 부당한 것들에 대해 목소리를 낼수록 미움을 받았다. 자꾸 누군가의 눈 밖에 났고 불편한 존재처럼 여겨졌다. 사정을 봐달라는 핑계를 대며 월급을 늦게 주기 시작했고 월급이 6개월째 밀린 어느 날, 결국 나는 이 세계를 떠나야겠다는 결정을 하게 됐다. 내가 과연 이곳에서 나의 존엄성과 꿈을 지키면서 일하는 것이 가능한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5년 동안 방송 작가 생활을 하면서 방송계를 떠난다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언니들 말대로 무조건 버티는 사람이 되리라 목표를 세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버티고 싶었던 이 세계에서 나는 결국 경계 너머로 밀려났고 더 이상 버틸 자신이 없었다. 분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딱 여기까지였다. 열정 가득했던 시간들을 뒤로하고 나는 그렇게 내가 사랑했던 세상에서 스스로 걸어 나왔다.
솔직히 말하면 방송 작가를 그만두고 난 뒤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할 줄 아는 거라고는 글 쓰는 게 전부인데, 당장 먹고 살려니 앞날이 캄캄했다. 다시 방송 작가 일을 할까 잠깐 고민도 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나에겐 갈망 같은 것이 늘 자리하고 있었다. 남이 정한 주제와 남이 정한 기획에 맞춰 쓰는 글, 이런 글을 쓰는 것에 지쳐있었다. 대학교 재학 시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소설을 읽고 시에 파묻혀서 살았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분명 ‘나의 글’이 쓰고 싶었는데 언제부터 원동력을 다 잃고 헤매게 된 걸까. 밤새 내가 쓰고 싶은 글에 대해 친구들과 떠들고 내가 쓴 글이 가진 장점에 대해 쉴 새 없이 말할 수 있었던 나는 어디로 간 걸까. 방송작가를 그만두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이 무엇인지, 어떤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은지 고민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누구나 자신을 뒤흔드는 결정적인 순간이 있겠지만 그게 몇 번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다. 한 번 일 수도 있고 그 이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불행이 찾아왔다고 생각한 그 순간 다시 기회를 얻었고, 다시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언제 다시 올지 모를 그 순간을 기다리면서 나는 다시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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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이 글을 쓰게 된 것이 5년 전입니다. 저는 그 사이 순수문학을 했던 기억을 몸과 마음속에서 되살려 시를 쓰고 있습니다. 5년 전 나에게 선언했던 것처럼 '나의 글'을 쓰겠다고 한 것들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단지 '나의 세계'를 조금씩 구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30대가 되어서도 끊임없이 고용 불안에 시달리고 글쓰는 것 외에 기술을 갖고 있지 못한 저를 원망하고 울고 속상해했지만, 결국 저는 글쓰기를 멈춘 적 없다는 것이 유일한 자랑임을 깨달았습니다. 모두가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서 나 또한 치열하게 살고 있다는 기록 한줄이라도 남기자 하는 마음에 뒤늦게 글을 올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