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 작가의 『악마는 열심히 산다』를 읽고
"기대를 거는 마음? 그게 사라졌어?"
기대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기다림’이다.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소망하고 고대하는 만큼 쉽게 추락하기도 한다. ‘기대에 못 미치다’, ‘기대 밖의 일이었다’ 같은 표현만 봐도 그렇다. 소망은 우리에게 큰 기쁨을 주지만, 때로는 그보다 더 큰 슬픔도 안긴다.
문득 씁쓸한 생각이 든다. 내가 기대했던 삶은 어떤 것이었을까 돌아보게 된다. 지금과는 달랐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어떤 상처도 받지 않고 맑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었다. 모두에게 사랑받고, 모두에게 인정받는 그런 삶, 그리고 작가로서의 삶 또한 살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세상이 어느 정도는 내 뜻대로 흘러갈 것이라는 기대를 했다. 그 기대가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은 미처 알지 못하면서.
나는 솔직히 『악마는 열심히 산다』를 읽으면서 악마Z를 사랑하게 됐다. 종교가 있는 나로서는 천사가 아니라 악마를 사랑하게 됐다는 사실이 놀랍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인간이 아닌 존재에게 감정을 쏟고, 들여다보며 응원해 본 것은 처음이었다. 내가 악마Z에게 나도 모르게 나를 투영한 것은 그에게서 어느 순간 내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기대하고 상처받은 인간을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삶에 어떤 작은 기대를 걸어버리는 그가 이상하게 이해됐다.
그가 내뱉은 "열심히 하고 싶지가 않아." 이 한 마디가 와서 박혔다. 균열을 천천히 내며 내 몸에 자리잡았다. 가영의 밀려드는 감정에 악마Z가 동화된 것처럼 나는 제3자처럼 과거에는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던 감정들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다시금 애도하고 위로하고 안아줬다. 이제서야.
동기들보다 한참 늦게 졸업한 나는 지원하는 곳마다 떨어지면서 지쳤고, 집 안에 틀어박히기 시작했다. 자소서를 고치고 또 고치면서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무엇이 부족한지, 무엇을 채워야 하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가족들은 방에 갇혀 있는 나를 답답해하며 나가서 뭐라도 하라고 다그쳤다. 하지만 뭐라도 할 힘이 내게는 없었다. 다시 전공을 살려 글을 쓸 용기도 어딘가에 지원해 면접을 볼 자신도 없었다. 미래는 이미 나를 버리고 저만치 앞서 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때의 나를 떠올리니 가영의 말들도 잔인할 정도로 와닿았던 것 같다.
시간이 너무 많은데 너무 느리게도 갔다. 아 막막하다, 그렇게 소리 내어 말하면 온몸이 건조하다가도 눈알 끝까지 순식간에 눈물이 차올랐다. 나는 지금 막막해. 어떤 것도 할 수 없어. 그런 의지도 없고 힘도 없고 구해 주는 이도 없어. 막막했다. 세상은 너무 크고 나는 너무 작고 사람들은 빠르고 똑똑하고 나는 어리석다. 내 어리석음을 어떻게 하지 못하겠어. 내가 나라는 사실을 어쩔 수 없다. 그런 게 막막했다.
p. 114
졸업이 늦어졌던 건 학비 마련을 위해 휴학을 반복해서였다. 그때 나는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방송국 막내 작가로 들어가 방송 일을 배웠다. 어렸을 때부터 동경하던 방송업계에서 일한다는 것만으로도 보람찼다. 몰아치는 일들이 고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고, 워라벨은 당연히 챙길 수 없었다. 무엇보다 정서적 폭력을 아무렇지 않게 퍼붓는 인간들 사이에서 인간들에게 지쳐갔다. 하지만 프로그램 마지막에 잠깐 지나가는 스크롤에서 내 이름을 보는 것으로 나는 그 힘든 시간들을 버텨낼 수 있었다. 휴학하고 1년 반 남짓의 시간이었지만 내게 방송은 또 하나의 꿈을 만들어줬다. 그래서 취업난을 겪고 있던 그 순간에 다시 방송일을 떠올렸고 도전할 수 있었다. 그렇게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묵묵하게 이 일을 해냈다. 아니 하고 있다고 믿었다.
물론 모든 도전이 해피엔딩으로 끝나진 않는다. 나는 그 업계를 떠났고, 지금은 평범한 시청자로서 콘텐츠를 즐기지만 때때로 그립다. 좋아하던 일을 버리고 떠나는 마음이란 언제 떠올려도 서글프다. 그때 내가 떠났던 가장 큰 이유는 그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자괴감이었다. 악마Z의 말처럼 내가 좋아하는 걸 내 마음대로 하고 싶었는데 그럴 힘이 없었다. 정말 좋아하는 일을 싫어하게 되는 과정 또한 괴로웠다. 이것만을 목표로 두고 정신없이 몰입했는데, 내 안에서 ‘제일 중요한 게 죽어버려’ 실망한 순간, 나는 ‘돌아갈 곳이 없어졌다’라고 느꼈다. 나는 이 세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루저였다.
악마Z는 나와 다르게 자신이 좋아하는 걸 택했다. 소소한 것일지라도 자신의 마음이 원하는 것을 따랐다. 그것이 소멸인 것을 알면서도 선택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하기 위해 가장 큰 용기를 낸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단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남아 있는 이들을 위한 선택. 가영의 공허함과 슬픔을 온몸으로 느낀 악마만이 할 수 있는 선택. 악마가 해서는 안 되는 희생적인 선택. 금기를 깨 버린 악마 Z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인간은 역시 번거롭구나. 몸 안에 너무 많은 것이 있다.
p. 55
악마Z는 인간이 된 것을 후회했다. 몸이 너무 커. 너무 커서 너무 잘 느껴지는구나.
p. 60
30대 중반이 된 나는 종종 치열하게 살며 상처받은 후배들, 열렬하게 사랑하다가 괴로워하는 후배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기대가 커서 실망도 크다는 그 친구들에게 나는 웃으며 말한다. "언니는 아직도 기대를 해. 그렇게 상처받고 그렇게 울어놓고선 그새 까먹고 또 기대를 하더라고." 이쯤 되면 포기할 줄도 알았는데, 나는 여전히 무엇인가를 갈망하고 기대하고 쫓아가려고 한다. 심장을 거친 사포로 민 것처럼 너덜너덜해졌는데도 정신 차리지 못하고 달려든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세상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시 다가가는 거니까.
포기만 남았던 순간도 있다. 증오로 버텼던 적도 있다. 그런데 나는 한 번도 ‘잘 살아내고 싶다’고 마음먹었던 적은 없었다. 달라지지 않는 상황에서 미워할 존재가 나밖에 없어서 나를 집요하게 괴롭혔다. 살고 싶었다가 살기 싫어졌다. 그런데 악마Z가 가영의 몸으로 자신도 모르게 열심히 살아내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내가 다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에도, 내가 삶을 지속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존재가 어딘가에 있을지 모른다고. 그래서 남아서 살아보기로 했다. 한번쯤은 나를 위해 잘 살아내보자고. 그리고 너무 힘든 때가 오면, '잡을 손이 없으면 스스로의 손을 잡아가면서' 살아가보자고. 그렇게 버티는 삶도 가치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