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드워드 하퍼의 작품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을 보고
뉴욕의 깊은 밤, 두 길이 교차하는 곳에 레스토랑이 위치해 있다.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화려한 뉴욕의 모습은 사라지고 적막만이 길을 잠식하고 있다. 전면이 통유리로 된 레스토랑 실내에 직원과 세 명의 남녀 손님이 자리하고 있다. 어둠 속에서 유난히 밝게 빛나는 레스토랑의 형광등 불빛은 인적이 끊긴 대도시의 어두운 밤과 대조를 이룬다. 그 순간 한 번 더 장면이 전환되며 사람들과 조금 떨어진 자리에 그림자처럼 자리한 남자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등 돌리고 앉은 이 남자는 어떤 표정으로 앉아 있을까? 등 뒤로 그림자가 스며드는지도 모르고 이 남자는 어떤 생각에 빠져있는 걸까.
미국의 대표적인 화가인 에드워드 하퍼는 도시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를 사실적으로 다룬 작가로 알려져 있다. 도시의 텅 빈 공간과 텅 빈 관계 속에서 오는 고독, 우울, 절망감을 표현하는데 일가견이 있었던 그는 현대인들이 살아가는 삶의 공간 속에서 소재를 찾아 자신의 독특한 화풍을 발전시켜 나갔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보는 이들은 그의 그림을 바라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내면에 내재되어 있던 고독과 마주하며 그림 속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된다.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은 도시의 고독과 소외를 다룬 호퍼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이 작품을 자신이 살고 있던 맨해튼 근처의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어느 간이식당에서 영감을 얻어 그렸다. 호퍼는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곳에서 대도시의 고독을 보았다"라고 말하며, 그가 발견했을 도시의 또 다른 이면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가 그려내는 일상은 쾌활하고 활기차기보다 낮의 부산함이 사라진 후에 남은 침묵과 같다. 도시의 풍경은 무미건조하고 단조로우며, 깊은 상실감과 외로움을 동반한다. 텅 빈 거리와 불 꺼진 상점, 식당의 비어 있는 의자와 모자를 깊게 눌러쓴 남자의 고독이 보는 이에게로 전염되기에 이른다.
작품 속 모자를 눌러쓴 남자는 중심에서 약간 벗어나 앉아있다. 밝은 빛과 주무대가 되는 공간은 다른 세 인물이 가져갔지만 우리의 시선을 빼앗는 것은 이 남자이다. 중심에서 벗어나 있는 그는 고독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고독이란 추상적인 감정을 인간으로 형상화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만든다. 나조차도 이 남자에게 말을 걸지 못할 것임을 안다.
공간은 이방인을 귀신같이 알아챈다. 이방인은 단순히 이 도시의 사람이 아닌 것을 넘어서서 이 도시의 정착하지 못한 모든 이를 의미한다. 찰나의 머뭇거림을 느끼는 순간 공간은 도시에 적응하지 못한 존재를 구석으로 안내한다. 그림자와 가까운, 모서리와 가까운 공간의 가장 구석진 곳으로. 나 또한 그림 앞에 서있다가 공간에게 떠밀려 그의 옆에 앉는다. 그리고 내 옆에 앉은 익명의 남자로부터 도시에 섞이지 못하는 푸념 같은 속삭임을 듣는다.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도시는 우리에게 편리함을 안겨주지만 도시의 이면에 자리한 익명성과 외로움은 우리를 쓸쓸하게 만든다. 화려하고 바삐 움직이는 대도시 속에서 우리는 어느 순간 방향을 잃고 정처 없이 방황하기에 이른다. 익명의 유령이 되어 잠시 도시에 있었음을 기억한다. 그리고 어두운 그림자처럼 공허함을 뒤집어쓰고 허기진 마음을 달래기 위해 식당을 찾는다. 인간들이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섬처럼 덩그러니 앉아있는 익명의 나는 익명의 너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형광등 불빛 그림자 속에서 조용히 생각한다. 그리고 내 앞에 놓인 냅킨에 천천히 적는다.
-함께 있어도 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