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글렀으니까~ ㅋㅋ 어차피 집도 못 사는데 뭐. 그래서 오늘은 나한테 선물하기로 했다. #욜로 #소확행 #탕진잼 #플렉스 #돈은_다시_벌면_되지"
이런 캡션, 한 번쯤 눌러본 적 있지? '좋아요'도 눌렀을걸. 나도 눌렀어. 웃기고, 솔직하고, 어딘가 쿨하잖아. 아등바등 사는 것보다 훨씬 멋있어 보여.
스물아홉 S의 통장은 매달 같은 곡선을 그렸다. 월급날 잠깐 차올랐다가, 2주면 바닥. 카드값 막고 나면 남는 게 없었다. 처음엔 좀 불안했는데, 언제부턴가 S는 그 텅 빈 통장을 농담으로 만들었다. "어차피 못 모아~" 하면서 친구들이랑 오마카세를 갔고, "이생망인데 뭐~" 하면서 택시를 탔고, "나를 위한 선물~" 하면서 갖고 싶던 걸 질렀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좀 편해졌다. 가난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 쿨한 게 되니까. 못 모으는 게 패배가 아니라 취향이 되니까.
그렇게 3년이 지났다. S는 여전히 텅장이었다. 달라진 건 없었다. 아니, 하나 있었다. S가 매달 "어차피"라는 말과 함께 흘려보낸 돈을, 누군가는 아주 알뜰하게 챙겨가고 있었다는 것.
이 빌런은 앞의 셋이랑 결이 완전히 반대야. 약장수도, 노후 공포 상인도, 영끌 전도사도 다 너를 '사게, 투자하게' 만들었잖아. 근데 텅장 미학자는 정반대야. 너한테 '포기하라'고 해. 어차피 안 되니까 모으지 말라고. 꿈도 미래도 다 내려놓으라고. 얼핏 보면 이 빌런이 제일 착해 보여. 너한테 뭘 사라고 안 하니까. 그냥 위로해주는 것 같으니까.
근데 잘 봐. 포기시키는 것도 결국 너를 쓰게 만드는 거야.
어떤 사람들은 욕심 때문에, 죄바카라감 때문에, 소외 공포 때문에 무너졌어. 이번에 S를 무너뜨린 건 바로 체념. 그리고 자기연민. "나는 어차피 안 돼"라는 그 달콤한 포기. 이게 왜 위험하냐면, 희망에 찬 사람은 돈을 함부로 안 써. 모으고, 따져보고, 미래를 계산하거든. 근데 절망한 사람은 달라. "어차피 안 올 미래"를 위해 오늘을 아낄 이유가 없잖아. 그래서 절망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소비 촉진제야.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