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공포 상인

by돌부처


"국민연금만 믿고 계세요?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그 돈 받으실 때쯤이면 기금은 이미 바닥입니다. 지금 이 자리 그냥 일어나시면요, 20년 뒤에 폐지 줍는 어르신들... 그거 남 얘기 아니에요. 오늘 와주신 분들께만, 제가 직접 설계해 드리겠습니다."


마흔둘 K가 그 세미나에 간 건 순전히 도시락 때문이었다. 점심시간에 동료가 "공짜 밥 준대, 한 시간만 앉아 있으면 돼" 해서 따라갔다. 회사 근처 호텔 세미나실, 제목은 '100세 시대 노후 재무 설계 무료 특강'. 그날 K는 밥값을 아주 비싸게 치르게 된다.


강사는 말을 잘했다. 슬라이드를 한 장 넘기자 폐지 리어카를 끄는 노인 사진이 떴다. 다음 장은 '국민연금 고갈 2055년'이라는 빨간 그래프. 또 다음 장은 요양원 침대에 혼자 누운 노인. K는 두 아이 아빠였다. 화면 속 노인이 자꾸 자기 얼굴 같았다. 강사가 물었다.


"여러분, 자녀분들이 여러분 노후 바카라임져 줄 것 같으세요?"

아무도 손을 못 들었다.


세미나가 끝나자 일대일 '무료 상담'이 이어졌다. 설계사는 따뜻했다. K의 두 아이 이름을 묻고, 가장의 바카라임이 어쩌고 하면서, 월 40만 원짜리 변액연금을 30년 부으면 노후가 해결된다고 했다. K는 그 자리에서 가입했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으니까. 그날 밤 K는 오랜만에 두 다리 뻗고 잤다. 드디어 아빠 노릇을 했다는 기분으로.


7년 뒤, 아이 학원비에 급전이 필요해진 K는 그 연금을 해지했다. 7년간 부은 돈이 3,360만 원. 돌려받은 환급금은 2천만 원이 조금 넘었다. 사업비, 수수료, 위험보험료... 설명을 들어도 잘 이해가 안 갔다. 그새 설계사는 회사를 그만뒀는지 전화를 안 받았다. K는 그제야 알았다. 자기가 7년 전에 산 건 노후대비가 아니라, 그날 밤의 단잠, 두 다리 뻗고 잘 안도감 한 번. 그게 1,300만 원이었던 거지.


옛날 점쟁이는 미래를 팔았다. 좋은 미래는 복채가 싸고, 무서운 미래는 비쌌지. 노후 공포 상인이 파는 게 정확히 이거야. 30년 뒤의 가난을 오늘 당장의 공포로 환전해서, 그 공포를 잠재울 상품을 비싸게 파는 거. 1화에서 내가 뭐랬지? 돈에 관한 거의 모든 공짜는 미끼라고. 그 공짜 도시락, 그 공짜 상담, 다 청구서가 따로 있었던 거야.


근데 노후 공포에는 다른 미끼에 없는 특별한 무기가 하나 있어.

검증이 안 된다는 것.


재테크 약장수가 찍어준 종목은 석 달이면 거짓말인 게 들통나. J처럼. 근데 "당신 노후가 위험합니다"는 30년 뒤에나 확인이 돼. 그때 가서 "야 이거 거짓말이잖아" 하려고 해도, 판 사람은 이미 은퇴했거나 죽었거나 셋 중 하나지. 공포는 멀수록 좋은 상품이야. 따질 수가 없으니까. 그래서 이들은 늘 가장 먼, 가장 안 보이는 미래를 골라서 겁을 줘.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돌부처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읽고 쓰는 사람.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소설을 씁니다.

801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총 190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재테크 약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