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 없는 리더십의 세계
30살, 처음으로 팀장이 되었을 때 상사였던 본부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제발, 리더십 바카라이라도 읽고 노력이라도 해봐라.”
당시 나는 그 말이 야속하게만 들렸다. 경력도 나이도 나보다 많은 팀원들은 나를 팀장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내 지시나 의견은 잘 먹히지 않아 나 역시 답답하고 억울했다. 이런 저런 사건들로 자괴감이 극에 달했을 때 들은 본부장님의 말 한마디는, 쓰라린 상처에 뿌린 소금과도 같았다.
“바카라만 읽으면 뭐해요! 저도 나름 노력한다고요.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되는 건데요?”
악을 쓰며 대들었다. 나 따위가 무슨 팀장이라고, 당장 때려치우겠다고 했다. 본부장님은 나를 팀장으로 키우고 싶어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도 방법은 잘 몰랐던 것 같다. 100명 이하의 중소 기업. 팀장 교육이라고는 사장님의 ‘정신 교육’이 전부였던 곳이었다. 퇴사한 이전 팀장도, 당시의 본부장님도 리더 교육을 받은 적은 없다. 대물림처럼 리더 자리를 이어받아 각자 자리에서 고군분투 했겠지. 그러니 ‘대체 어떻게 좋은 매니저가 되는거냐’고 묻는 나같은 후배에게는, 바카라을 읽고 자기계발을 하라는 조언밖에 못 했을 것이다. 회사는 나를 팀장 자리에 앉혔지만 아무도 팀장이 되는 법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나를 꾸짖던 본부장님의 나이가 되었다.
이제는 신입 팀장들이 찾아와 상담을 청한다. 그들의 고민은, 내 30살의 고민과 닮아 있다. 대체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하면 되냐고, 자신은 팀장 자격이 없는 것 같다고, 무엇을 공부해야 좋은 매니저가 될 수 있냐고 물어본다. 그들을 보니 문득 한때 내가 부러워했던 리더들의 모습이 스쳐갔다. 카리스마로 팀을 이끌고, 철저한 전문성으로 고객을 휘어잡고, 팀내 갈등을 능숙하게 풀어내고, 어떤 힘든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던 사람들. 당시의 나는 그들이 미치도록 부러웠다. 마치 IQ150의 천재처럼, 멋진 리더는 애초부터 남다른 무언가를 갖고 태어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세월을 겪으며 조금씩 깨닫는다. 그들 역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후천적으로 다듬어진 사람들이었음을. 단호하게 결정을 내리는 것 같아 보이는 리더도, 뒤에서는 자신의 판단이 맞는지 밤새 고민했다. 사이 좋은 이상적인 팀 모습 이면에는, 리더의 실패가 있었다. 사람을 잘못 뽑고, 관계가 틀어지고, 다시 맞춰가는 시간 속에서 성숙한 것이다. 타고난 재능이라 부러워했던 그들의 유능함은, 사실 오랜 시행착오가 만든 숙련이기도 했다
위대한 리더 중에는 분명 남다른 자질과 특성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회사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리더는 처음부터 완성형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리더십의 많은 부분이 개발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팀 성과를 관리하고, 팀원에게 피드백을 주고, 팀내 갈등을 조율하는 일은 경험하고 배우면서 분명 나아질 수 있다. 30살의 나는 팀원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쩔쩔맸지만, 수많은 실수와 경험을 거친 지금은 적어도 그때보다는 나아졌다. 갈등 앞에서 눈물 흘리는 대신, 팀을 위한 더 나은 판단을 할 줄 알게 되었다.
다만 절대 교육이나 경험만으로 완성형 리더가 되는 것은 아니다. 리더십은 ‘개발’될 수 있지만, 리더에게는 ‘계발’도 필요하다. 개발이 이미 가진 능력을 더 잘 쓰게 만드는 일이라면, 계발은 그 사람 안에 숨어 있던 가능성을 깨우는 일에 가깝다. 사람과 조직에 대한 관심,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 타인의 가능성을 믿고 기회를 주는 태도는 누군가 가르친다고 갖게 되는 건 아니다. 스스로 질문하고 돌아보며 성찰해야만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영역이다.
그리고 이러한 리더십 개발과 리더의 계발 영역은 오롯이 개인 몫으로만 남겨 두어서는 안된다. 조직이 누군가를 리더 자리에 앉혔다면, 그가 리더로 자랄 수 있는 기회와 경험까지 만들어줘야 한다. 회사는 완성형 리더를 찾아 헤매지만, 더 중요한 것은 미완성의 리더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리더는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