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생활은 마라톤이다
"나 어제도 11시 넘어서 집에 갔잖아."
"잠 좀 실컷 자보고 싶다!"
"우리 언제까지 이렇게 일해야 되냐?"
며칠째 야근중인 우리 부서 사람들은, 회의실에서 눈을 마주치자마자 하소연을 시작한다. 눈밑까지 시커멓게 내려온 다크 서클, 초점 없는 퀭한 눈빛, 윤기가 싹 사라진 퍼석한 피부. 누구랄것도 없이 다들 비슷한 몰골이다. 매일 밤 늦게까지 진행되는 회의에 다들 지친 모습. 엉덩이 힘으로 어떻게든 버티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면 차라리 쉬울텐데, 집단 지성과 영혼을 다 갈아 넣고 있는데도 진척이 더디기만 하다. 이놈의 일은 언제 끝나려나. 프로젝트 종료날이 하루 빨리 다가와 발 뻗고 잠잘 수 있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띠링' 회의 중 메일 알림이 뜬다.
발신자는 사장님, 제목에는 '긴급'이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다. 잠시 회의를 멈추고 메일을 큰 화면에 띄운다.
[글로벌 리더십이 XX자료를 요청했으니, 이번 주 목요일까지 자료를 준비해서 보고해주시기 바랍니다.]
메일을 읽는 전무님의 얼굴은 금세 사색이 된다. 아직 반도 못 끝낸 프로젝트가 거대한 산처럼 놓여져 있는데, 그 앞에 커다란 바위가 굴러 들어왔다. 다들 웅성웅성하며 리더에게 불만을 표출한다.
"아니, 저희 지금도 죽을 것 같은데 이걸 목요일까지 하라고요?"
"너무 하신다, 정말."
틀린 말도 아니다. 지금은 회사에 있다가 잠깐 집에 다녀온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만큼, 사무실에서 살고 있다. 눈앞이 깜깜해지고 퇴사 욕구가 다시 차오른다.
생각해보니 회사 일이라는 게 매번 비슷한 패턴이었다.
이것만 끝내면 되는 줄 알았는데, 끊임없이 밀려오는 다른 업무들이 있었다. 인생을 장거리 마라톤에 비유하듯, 회사 일도 마찬가지였다. 산을 하나 넘고 잠시 쉬려고 하면, 금세 또 다른 산을 넘어야 했다.
문제는, 단순히 일이 줄줄이 비엔나처럼 계속 된다는 게 아니다. 우리 부서 사람들은, 모든 일을 100m 단거리 경주처럼 뛰고 있었다. 전속력으로, 있는 힘껏, 젖먹던 힘까지 짜내서, 밤을 새어 가며 달렸다. 오늘 저녁에 말해놓고 내일 오전까지 해달라고 해서, 회사를 대표하는 중요한 일이라고 해서, 투자를 유치하는데 필요하다고 해서, 늘 전력질주를 해야 했다. 어느 순간부터 ‘급한 일’과 ‘중요한 일’의 구분도 사라지고, 모든 일이 지금 당장 가장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100m 경주의 결승선은 신기루 같았다. 눈앞에 있다고 믿고 뛰었지만, 가까워질수록 저만치 물러나 있었다.
장거리 마라톤을 단거리 선수처럼 뛰면 어떻게 될까.
일단 지친다. 숨이 헐떡이고 눈앞이 깜깜해지고 나중에는 죽을 것 같은 공황이 올 수도 있다. 누군가는 달리다가 쓰러지고, 누군가는 들것에 실려 나가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영원히 트랙을 떠나기도 한다.
우리 온라인 게임인들은 이 레이스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나. 내가 생각한 답은, 돌고 돌아 결국 '나'다. 즉, 42.195km를 계속 달릴 수 있는 자기만의 체력과 페이스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매번 한계까지 몰아붙여 성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은 당장은 유능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런 방식으로 오래 달릴 수는 없다. 오늘의 성과를 위해 내일의 체력을 모두 써버리면, 정작 더 긴 레이스에서 필요한 힘이 남지 않는다. 온라인 게임인에게 필요한 건 전력질주가 아닌, 긴 회사생활이라는 마라톤의 완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