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감 마를 일 없는 회사
글 쓰는 사람들이 가장 고민하는 것 중의 하나는 바로 '글감' 찾기다.
널리고 널린 게 소재라지만, 막상 내가 쓰려고 하면 잘 안 보인다. 끝도 없이 쫙 깔린 자갈밭 속에서 빛나는 조약돌을 찾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온라인카지노를 시작했을 때 나도 마찬가지였다. 미리 생각해놨던 얘기를 열 편의 글에서 풀어내고 나니 막막하기만 했다.
'이제 뭐 쓰지? 글감 다 떨어졌는데...'
그때 먼저 글을 쓰던 분께서 말씀해주셨다. 주변에서, 그리고 내 안에서 한번 찾아보라고. 처음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일기가 아닌 이상 그런 얘기가 글이 될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어 일단 가장 가까운 일상으로 눈을 돌려봤다.
평일 기준 하루 12시간 이상을 머무는 회사.
나에게는 온라인 게임생활이 곧 일상이었다. 회사란 먹고살려고 출근했다가, 스트레스 받고, 점심과 수다로 겨우 버티는 곳 정도랄까. 아무리 생각해도 글로 풀어낼 특별한 이야기거리는 없어 보였다. 자기계발서나 리더십 스토리를 쓸 재주는 더더욱 없었고.
그러나 어떻게든 여기서 글감을 찾아야 된다는 사명감으로 눈에 불을 켜고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평소와 다름 없는 월요 주간 회의에서 오갔던 말들이, 갑자기 오늘의 글거리로 보이기 시작했다. 목에 걸고 다니던 사원증이 어느 순간 개 목걸이처럼 느껴졌는데, 그걸 글로 쓰고 싶어졌다. 에어컨 때문에 냉방병 걸릴 것 같아 밖으로 나갔을 때 느낀 건물 밖 무더위를, 퇴사 소재로 살려 글을 썼다.
회사 일로 특히나 쓸 얘기가 넘쳐난 순간은, 사건과 시련이 찾아왔을 때였다.
친구처럼 오래 알고 지내던 동료가 퇴사한다고 했을 때, 그를 향한 안타까움과 남겨진 자의 슬픔 마음을 써내려갔다. 상사가 별 거 아닌 걸로 난리부르스를 쳐 당장 때려치고 싶을 때, 사직서 대신 온라인카지노를 열었다. 엉망진창 협업으로 프로젝트가 개판 오분전으로 갔을 때도, 메모장에 기록부터 했다.
뭐, 일단 '아아아악!'이라는 마음의 소리 그대로를 적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러다 짜증나고 화나는 감정이 조금씩 잠잠해지면, 이성적인 생각과 내가 얻은 배움의 포인트를 적었다. 어떻게 하면 부서간 조율을 잘 할 수 있을까, 프로젝트 리더가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인가, 오케스트라처럼 회사에서도 아름다운 협업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등등. 그렇게 적다보니 온라인카지노 저장글에 200개가 넘는 목록이 쌓였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온라인 게임생활이 평화롭고 안정적일 때보다, 태풍과 파도 속에 있을 때 쓸 말이 넘친다는 것이. 지랄맞은 사건과 시간들이 계속 발생하니, 영원히 마르지 않는 분수처럼 글감도 퐁퐁 샘솟는다. 글 쓰는 사람에게는 두 팔 벌려 환영해야 할 일이지만, 온라인 게임인이기도 한 나에게는 썩 달갑지 않은 글감 풍년이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히 달라졌다. 예전에는 힘든 일이 생기면 스트레스로 괴로워하기만 했다면, 이제는 그 사건을 조금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왜 이렇게까지 화가 나는지, 나중에 비슷한 일을 겪는다면 어떻게 대처할지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사건은 문장으로 변한다.
아무튼, 요즘 온라인 게임생활이 유난히 고달프다면 너무 억울해할 필요는 없다. 월급만 받고 끝내기엔 아까운 '글감'이 가득한 곳이니 말이다. 회사가 나를 시련에 빠뜨릴 때, 돈은 안 되지만 글감이라는 복지를 챙긴다고 표현하면 과장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