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 마음 좀 알아줬으면
"그래서, 결론이 뭐에요?"
최 대리의 발표가 채 5분도 지나지 않은 시점. 화면에는 아직 두 번째 장이 떠 있었다. 김 부장의 기습 질문에 당황한 최 대리는 개미만한 목소리로 답을 했다.
"아, 네. 그러니까 결론은 뒤에서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지난주에 말한 거랑 뭐가 달라졌는지 모르겠는데?"
회의실에 영원과 같은 정적이 흘렀고, 그렇게 일주일 밤낮을 준비한 발표는 허무하게 끝나 버렸다. 김 부장은 바로 자리를 박차고 나갔지만, 최 대리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정지 상태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하나 둘 최 대리에게 다가와 한마디씩 말을 건냈다.
"김 부장님 원래 말이 좀 세잖아.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
"다음엔 결론 슬라이드 먼저 넣으면 되겠네."
"이따 끝나고 술이나 한 잔 하면서 풀자."
최 대리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고 했다. 하나도 괜찮지 않은 표정으로.
모두 나름의 방식으로 최 대리를 위로하고 싶었을 것이다.
마음에 담지 말고 술로 풀어버리라는 말도 오랜 경험에서 나온 해결바카라이었을 것이고, 결론부터 말하라는 충고도 현실적인 도움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최 대리의 귀에는 그 누구의 말도 들리지 않았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그 어떤 말도 제대로 와 닿지 않은 것이다. 만약 그가 이런 말을 들었다면 어땠을까?
"발표 준비 오랫동안 열심히 했는데, 많이 속상하시겠어요."
"결론 부분에 중요한 얘기 다 넣어놨던데. 거기까지 못 가서 억울했겠네."
"하필이면 사람들 앞에서 갑자기 그런 말 들어서 되게 당황했겠다."
앞선 말들처럼 괜찮다며 억지로 웃어넘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정확히 알아주는 말을 들은 순간,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 것 같다. 그리고 한참 뒤에야 조심스럽게 진짜 속마음을 꺼냈을지도 모른다.
“맞아요. 발표 망친 것보다, 제가 제대로 못 한 것 같아서 자바카라이 되네요. 부장님은 제 노력은 알아주시지도 않고, 못 한 것만 보시는 것 같아서 속상하기도 했고요."
회사에서는 불문율처럼 암묵적으로 지키는 룰이 있다.
바로 웬만해서는 감정을 드러내거나, 감정을 가지고 대화하지 않는 것. 대신 사실에 기반해서, 해결바카라 위주로 말한다. 감정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속도와 효율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감정까지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대화가 길어질 것 같고, 자칫 상대방의 편을 들어주거나 잘못을 눈감아주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빠르게 돌아가는 회사에서 누군가의 마음을 찬찬히 살피는 일은, 여유가 있을 때나 가능한 사치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감정을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마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인정받지 못한 서운함은 회의에서 입을 닫게 만들고, 억울한 마음은 나중에는 냉소적인 태도를 갖게 한다. 아무도 자신의 애씀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쌓이면, 마음이 닫혀 일을 하지 않게 되기도 한다. 감정을 외면하면, 나중에 보이지 않는 비용으로 지불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공감이란, 상대의 말에 모두 동의하는 것도, 업무의 기준을 낮추는 것도 아니다.
최 대리의 속상함을 이해해 주면서도 발표의 부족한 점은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다. 다만 무엇을 말하느냐만큼 언제 말하느냐가 중요하다. 마음이 닫힌 사람에게 건네는 조언이나 충고는 공격처럼 들리지만, 이해받았다고 느끼는 사람은 같은 말에서도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을 찾아낸다. 그래서 먼저 공감을 해주어야만 마음이 열리고, 그 사람이 직접 움직일 수 있는 에너지가 다시 채워지는 것이다.
리더십은 늘 고민한다. 직원들의 동기 부여를 어떻게 하면 될지. 회사에는 사람을 움직이기 위한 방법이 참 많다. 목표를 높이고, 보상을 걸고, 평가와 피드백을 반복한다. 그러나 때로는 누군가 자신의 애씀을 알아주는 한마디가 그 모든 것보다 먼저 사람을 일으켜 세운다.
온라인 게임인에게 공감은 더 이상 사치가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에 대한 이해의 시작이자, 마음을 여는 열쇠이다. 나에게 진정으로 공감해주는 한 명의 사람만 있어도, 우리는 다시 힘을 얻고 일을 해나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