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가 배려이고 어디까지가 배제인가
얼마 전 임신부 동료 A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제가 지금 배려를 받고 있는건지, 배제되고 있는건지 잘 모르겠어요."
그녀는 우울한 표정으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임신 초기 입덧이 심하고 유산기가 있어, 팀장에게 이른 육아휴직을 요청했다. 팀장은 한참을 듣다가, 당장 육아휴직을 가는 대신 지금 그녀가 담당하고 있는 프로젝트 하차를 제안했다. 클라이언트의 무리한 요구와 높은 업무 강도 때문에 무척 힘겹게 끌고 나가고 있는 일이었다. 팀장은 다정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계속 스트레스를 받으면 뱃속의 아이에게 좋지 않다고. 그리고 육아휴직은 아이를 낳은 다음에 쓰는 것이 더 낫지 않겠냐고 했다. 어차피 곧 휴직할 생각이었기에, 그녀는 일단 팀장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팀장이 새로 제시한 업무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A는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고 배려해준 팀장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지옥같은 입덧 기간이 지나고, 어느덧 임신 안정기에 접어 들었다.
그러자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신이 빠진 프로젝트는 예상보다 잘 흘러갔고, 프로젝트 후임자 B는 떠오르는 스타가 되어 있었다. 팀장은 중요한 업무를 시키거나 의사결정을 할 때마다 자연스레 B를 찾았다. 심지어 A가 주요 담당자로 진행하는 업무마저 B의 의견을 물어보는 일이 잦아졌다. A는 싸한 느낌이 들었지만, 팀장에게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동안 팀장이 자신을 세심하게 신경써줬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몸이 힘들지는 않는지, 업무량은 감당할만 한지, 불편한 점은 없는지 수시로 물어봐 주었다. 무리한 일정이 잡히면 조정해줬고, 야근이나 출장이 필요한 업무도 점점 줄여 주었다. 출산 경험이 있는 옆 부서 팀장에게 직접 조언을 구할 정도로 진심이었다. 그런 팀장에게 서운함을 표출한다는 것은, 그의 순수한 호의를 의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A는 자신이 느끼는 혼란스러움을, 배려와 배제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처음에는 분명 팀장으로부터, 동료들로부터 충분히 배려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조직이나 업무에서 배제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떨 때는 제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업무도, 다른 사람한테 먼저 시키더라구요. 안정기라 출장 다녀도 문제 없는데 말이죠."
그 업무는 A가 잘 할 수 있는 업무이자 해보고 싶은 업무이기도 했다. 하지만 임신부를 일주일이나 출장보내면 안된다는 이유로, 처음부터 기회를 박탈당했다고 덧붙였다.
그녀의 말을 곰곰이 듣고 있자니, 배려와 배제는 종이 한 장 차이처럼 느껴졌다. 팀장은 어떻게든 그녀의 무거운 짐을 덜어주려고 했으나, 막상 당사자는 기꺼이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몫까지 빼앗겼다고 느꼈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동안 내가 팀장으로 했던 행동들이 떠올랐다. 팀원의 워라밸을 지켜준다는 명목하에 업무량이 많은 프로젝트는 주지 않았다. 그들이 잘 모르는 일은 버거울 것 같다는 이유로 제외하기도 했다. 발표가 서툰 팀원 대신 내가 앞에 나섰고, 실패하고 상처받을 것 같은 일은 아예 시키지 않았다. 팀원의 힘든 일을 대신하는 게 리더의 몫이라 믿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그들이 '할 수 있는지' 혹은 '하고 싶은지'를 묻기도 전에 혼자 판단하고 있었다. 좋은 리더는 배려하는 리더라는 생각했지만, 정작 그 배려로 인해 팀원은 중요한 경험과 성장의 기회에서 멀어진 것이다. 누군가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그의 한계를 먼저 정하는 순간, 배려는 가장 다정한 얼굴을 한 배제로 변질될 수 있다. 배려는 상대의 짐을 덜어주는 것이 아닌, 상대의 의사를 먼저 묻는 일인지도 모른다. 상대방이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끝까지 남겨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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