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로만 설명할 수 없는 회사라는 슬롯

논리 - 심리 - 생리의 삼 박자

by수풀림

회의 시간, 종종 이런 말들과 마주할 때가 있다.

"그건 잘못된 거 아닌가요?"

"원칙적으로는 이게 맞는 것 같은데요?"

"지난번엔 A라고 하시더니, 왜 말을 바꾸시나요?"

이런 말을 자주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우선 논리적으로 빈틈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이 하는 말은 대부분 다 맞는 말들이다. 그리고 그 말을 하는 이유도 분명하다. 일의 원리와 원칙을 기준으로 하면, 도무지 회의에서 나온 방향성이 이해가 가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맡은 팀에도 비슷한 특징을 가진 팀원 B가 있었다.

그 친구는 머리가 비상하고 일의 구조를 빠르게 익히는 사람이었다. 시장 자료는 단 한번의 스캔으로도 단박에 이해했고, 처음 맡은 프로젝트도 데이터만 있으면 금세 핵심을 짚어냈다. B가 가져온 보고서는 논리적으로 더할나위 없이 완벽했다. 우리팀에 이런 사람이 있어서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같이 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상하게도 B가 점점 버거워졌다. 얼마 전에는 급작스런 사장님 지시로 전수 조사를 진행할 일이 생겼는데, 그 말을 전달하자마자 B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왜 그 일을 해야 되는거죠? 팀장님은 그 일이 우리가 하는 프로젝트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는 논리적으로 이 일이 우리 팀 일과 맞지 않다며 조목조목 따져 들었다.


그의 항의에는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생각해도 사장님의 지시는 부당했고, 우리 업무와도 무관했다. 그러나 온라인 게임인인 이상, 회사 대표가 시킨 일을 피해갈 방법은 없었다. 나는 B를 설득하기 위해 온갖 설명을 해봤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대화 말미엔 너무 지친 나머지, 이렇게 말하고 회의를 끝내 버렸다.

"우리 다 월급 받는 온라인 게임인들이잖아. 까라면 까야지 어떡하겠어. 정 하기 싫음 그만두던가."

그의 벙찐 표정을 보며 두 가지 감정이 들었다. 10년 전 나의 상사였던 꼰대 부장님처럼 말한 내 자신이 혐오스럽다는 마음과, 사이다를 벌컥벌컥 들이킨 것처럼 속이 찌르르하고 시원해진 느낌.


나 역시 그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팀장인 내가 해야 할 일은 사장님의 지시가 얼마나 비논리적인지 증명하는 것이 아니었다. 팀이 그 일을 최대한 덜 소모적이고 빨리 끝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팀원 B가 보고 있는 것은 ‘이 일이 옳은가’였고, 내가 보고 있던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어떻게 해낼 것인가'였다.

우리는 같은 회의실에 앉아 서로 다른 문제를 풀고 있었던 셈이다. B가 여태까지 풀어왔던 문제에는 아마도 늘 정답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회사에서 마주친 문제에는 한 번도 정답이 있었던 적이 없었다. 설령 정해진 답이 있다고 해도, 상황과 맥락에 따라 그 답은 시시각각 변했다. 어제의 오답이 오늘의 정답일 때도 많았다.


회사에는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다.

일을 아무리 잘해도 승진에서 번번이 떨어지는 때도 있고, 지난 번 칭찬받은 기획안이 이번에는 대차게 까일 때도 있다. 바쁜 우리 팀은 사람이 부족해서 난리인데, 놀고 먹는 것 같은 옆 팀은 이상하게도 사람들을 계속 충원한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논리'라는 필터 하나로 본다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일투성이일 수밖에 없다. 논리는 분명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세상을 해석하려 할 때 우리는 회사라는 세계를 자꾸 오독하게 된다. 이는 비단 회사 일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생존욕구가 때로는 심리적인 요인이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드니 말이다.


결국 회사와 업무를 이해한다는 것은, 눈앞에 보이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지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 겉으로는 비논리적으로 보이는 결정 뒤에도, 반드시 맥락의 흐름이 있다. 그 맥락까지 함께 보지 못하면 우리는 자꾸 “왜 이런 결정을 내리는가?”에 매몰되게 되고, 억울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시야를 조금 더 넓히면 처음에는 납득되지 않던 일들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다.

회사에서 필요한 것은 맞는 말을 하는 능력이 아니라, 상황과 맥락에 따라 유연하게 사고할 수 있는 포용력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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