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만 그런 건 아니더라고요
누가 마흔을 불혹의 나이라 했던가.
세상일에 혹하지 않고 자신의 주관과 중심을 갖게 된다는 40대. 어린 시절의 나는 마흔이 되면 그런 어른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세상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내면이 단단한 사람. 또렷한 삶의 방향에 대한 확신이 있는 그런 사람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내 상상과는 전혀 달랐다. 코로나가 창궐한 해에 마흔이 된 나는, 디지털로 바뀌는 세상에 적응하는 것조차 버거웠다. 회사에서는 팀장이 되고 승진도 했지만, 사람 때문에 웃고 사람 때문에 무너지는 건 여전했다. 작은 사건 하나에도 내 멘탈은 춤추는 풍선 인형마냥 마구 흔들렸다. '이게 맞나?'라는 질문이 점점 더 커졌다. 20년 가까이 하고 있는 일은, 더 이상 나의 길이 아닌 것만 같았다.
나이 마흔에 찾아온 온라인 게임인 사춘기.
사춘기는 청소년 시절에만 겪는 줄 알았다. 그러나 마흔이 되어서도 나는 여전히 나를 모르겠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불혹의 나이에 가장 먼저 든 감정이 당혹감이라니. 이건 내가 상상하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멋진 어른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조금 더 지혜롭고 현명해진 사람이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나만 이러는 건 아니었단 것이다. 회사에서 40대 동료들과 대화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한탄 멘트는 바로 이거였다.
"회사 그만두면 뭐 해먹고 살지?"
MBA에서 만난 동기나 선후배들도 마찬가지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슬롯적 성공을 거둔 대기업 임원도,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CEO도, 미래가 보장된 공기업 직원도 비슷한 걱정을 하며 살고 있었다.
"지금까지 앞만 보고 열심히 살기는 했는데, 앞으로도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AI가 나오기 이전부터, 온라인 게임인의 삶은 이미 끝이 예고되어 있었다. 저마다의 시기가 달랐을 뿐. 자발적으로 나오던, 구조조정을 당하던간에 같은 일을 계속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선택은, 더 이상 앞으로의 내 인생까지 바카라임져줄 수 없다. 그러니 어쩌면 마흔의 불안은 뒤늦은 사춘기에서 오는 방황이 아닌, 미래의 생존을 위한 현실적인 몸부림에 가깝지 않을까.
40대의 진로 고민은 이직이나 전직의 문제가 아니다.
근본적으로 앞으로의 20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20대에는 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를 질문했다면, 40대에는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묻는다. 세상의 정답을 향해 달려갈 수 있는 전반전과 달리, 후반전에는 정해진 답이 없다. 그래서 더 불안하다. 분명 골만 넣으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인생이라는 레이스는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간다.
이제 필요한 건 더 빨리 달리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속도를 찾는 일인지도 모른다. 남들이 정해준 성공의 기준을 따라가는 동안 미뤄두었던 질문들, 이를테면 나는 어떤 것들을 좋아하는지, 어떤 관계 속에서 나다워지는지, 무엇을 지키며 멋지게 나이들고 싶은지를 다시 꺼내야 한다. 마흔의 진로 고민은 그 질문들 앞에 다시 서는 일이다.
누가 마흔을 불혹이라 했던가.
어쩌면 마흔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나이가 아니라, 무엇에 흔들리고 싶은지 다시 묻는 나이인지도 모른다. 정해진 길을 그대로 걸어가는 나이가 아니라, 내 길을 다시 물어도 좋은 나이. 그러니 마흔의 진로 고민은 늦은 방황이 아니라, 남은 삶을 아무렇게나 살지 않겠다는 나만의 선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