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지금 한국어로 대화하는 거 맞지?

회사에는 통역이 필요하다

by수풀림

"다들 이해하셨죠?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회의의 끝을 알리는 전무님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든다. 이해는 커녕 방금 무슨 말을 들었는지 잘 모르겠다. 분명 한국어로 말한 것 같은데, 왜 못 알아듣겠지? 나만 그런가 싶어서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참석자들 머리 위에도 물음표가 동동 떠 있는 것 같다.

이런 기시감은 비단 상사와의 회의에서만 오는 건 아니었다. 얼마 전 IT팀과 함께하는 프로젝트 킥오프 미팅이 있었는데, 그들의 언어는 나에게 외국어를 넘어 외계어처럼 들렸다.

"어쩌구저쩌구 커넥션, 어쩌구저쩌구 임베딩...."

유일하게 들리는 말이라고는 중학교 시절에 달달 외웠던 몇 개 안되는 영단어 뿐. 질문을 하자니, 모르는 말이 너무 많아 그것마저도 쉽지 않았다.


회사에는 통역이 필요하다.

상사가 이메일로 지시한 한 줄의 문장을, 앞뒤 배경설명과 맥락, 방향성을 넣어서 해석하는 것. 다른 부서나 고객사에서 쓰는 전문 용어를 우리 회사의 공용어로 바꾸는 것 말이다. 만약 아까 회의에서 전무님이 나간 후 누군가 이렇게 추가 설명을 해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요즘 회사 매출 떨어져서 난리인 거 다들 알죠? 그래서 우리가 고객사 조사부터 다시 해야되는 거에요. 1차 타겟 100개부터 시작하는 건, 그만큼 신규 매출이 절실하다는 뜻이지."

IT팀의 언어도 이렇게 초등학생도 알아들을만큼 바꿔서 쉽게 설명해주면, 이해도가 확 올라갈 것이다.

"이건 우리 회사 프로그램이랑 AI가 서로 말이 통하게 다리를 놓는 작업이에요. 지금은 사람이 일일이 옮겨주고 있는데, 그걸 자동으로 연동되게 만드는 거죠."


회사에서 협업을 잘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통역사 역할도 잘했다.

그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는데,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고 배려한다는 점이었다. 상대방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 말을 하는지 파악하고, 그 말을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해석을 해준다. 알아들은 것을 자기 언어가 아닌, 듣는 사람의 언어로 다시 번역하는 것이다. 거지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사람은 백에 하나기에, 이런 역량을 가진 사람들은 참 귀하고 필요한 존재다.

그 외에도 이들의 다른 특징은 쉬운 단어를 쓴다는 것이다. 아는 게 많으면 드러내고 싶을법한데, 상대방 눈높이에 맞춰서 조절할 줄 알았다. 그리고 상대방의 말을 귀기울여 듣고, 질문을 건냈다.

생각해보면 이런 통역 능력은 그 어떤 직무기술서에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결국 일이 되게 하는 건 이 보이지 않는 번역에 있었다. 회사의 일은 말에서 시작해서 말로 끝난다. 그리고 그 말은 상대의 언어를 일의 언어로 바꾸는 데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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