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한국관광공사가 공개한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 시즌2의 서산 편은 ‘머드맥스’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다.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를 패러디해 바지락을 캐러 가는 경운기 수십 대가 갯벌 위를 질주하는 장면을 담은 영상이다. 한국관광공사가 이 캠페인에서 서산에 붙인 콘셉트 자체가 ‘갯벌 머드맥스’였다.
무대가 된 대산읍 오지리갯벌은 공교롭게도 국내 3대 석유화학단지 가운데 하나인 대산석유화학단지와 이웃한 곳이다. 그러나 영상 어디에도 정유 설비나 공장 굴뚝은 등장하지 않는다. 갯벌을 질주하는 경운기와 그 옆에 늘어선 정유탑은 언뜻 서로 다른 두 도시를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둘을 하나로 묶는 열쇠말은 이미 정해져 있다. 서해안이다. 갯벌도, 석유화학단지도, 대산항도 모두 중국과 마주한 서해라는 같은 위치 위에서 자라났다. 서산시 스스로도 이 점을 오래전부터 자신의 정체성으로 내세워 왔다. 서산은 서해안의 관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서산시는 대산항을 ‘환황해권 신 중심항만’이자 ‘서해안 중부권 중심항만’으로 규정한다.
문제는 이 관문이 지금도 실질적인 중심 기능으로 이어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1982년 제2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은 서산을 농촌도시생활권의 중심도시로 지정했다. 당시 서산생활권은 서산군과 당진군으로 구성됐으며, 1989년 분리된 태안군까지 현재의 행정구역으로 환산하면 서산시·당진시·태안군에 해당한다. 아산만에서 가로림만과 태안반도, 천수만에 이르는 충청남도 서해안의 상당 부분을 포괄하는 생활권이었다.
흥미롭게도 오늘날 대전지방법원 서산지원의 관할구역 역시 서산시·당진시·태안군이다. 40여 년 전 국토계획이 설정한 생활권의 범위가 오늘날에도 사법 기능을 통해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행정적 관할과 실질적인 중심성은 같은 것이 아니다. 당진이 산업도시로 성장하고 태안이 독자적인 관광도시로 자리 잡은 지금, 서산은 여전히 이 생활권의 중심도시로 기능하고 있을까.
서산의 중심성을 이해하려면 먼저 오늘의 서산시 경계를 넘어 역사적인 생활권을 볼 필요가 있다. 1914년 부군면 통폐합으로 조선시대의 서산군과 태안군, 해미현 등이 하나의 서산군으로 통합됐다. 태안이 다시 분리된 것은 1989년이다. 지금은 서로 다른 지방자치단체지만 서산과 태안은 오랫동안 하나의 행정·생활권을 이루었다.
서산의 관문 기능은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보인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은 태안반도의 중국행 포구에서 백제의 수도로 이어지는 길목인 가야산 협곡에 자리한다. 한강 유역을 잃은 백제가 서해를 통해 중국과 교류하면서 서산 일대는 바다와 내륙을 연결하는 통로가 됐다.
이 관문 기능은 서산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이웃한 당진(唐津)이라는 이름부터 ‘당나라로 가는 나루’라는 뜻이다. 원효와 의상이 당나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이 지역으로 왔다는 이야기가 전할 정도로 서산과 당진 일대는 일찍부터 대중국 교류의 전초기지였다. 오늘날 두 도시가 항만과 산업을 놓고 경쟁하는 모습은 오랜 역사적 지리 위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경쟁인 셈이다.
조선시대 서산이 속한 내포는 사대부들이 낙향해 터를 잡는 땅으로 자리 잡았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가야산 앞뒤의 열 고을을 내포라 부르며 땅이 기름지고 평평하고 생선과 소금이 풍부해 부자가 많고 여러 대를 이어 사는 사대부 집안이 많다고 기록했다. 서울과 가까워 풍속의 차이가 크지 않아 살 만한 곳이라고도 평가했다. 이러한 생활문화는 정순왕후 생가가 있는 음암면 한다리마을과 운산면 유기방 가옥에 남아 있다.
조선시대 서산의 중심 기능은 여러 거점에 나뉘어 있었다. 해미에는 15세기 초 축조된 읍성을 중심으로 충청 서부지역의 군사 기능이 집중됐다. 서산읍에는 행정과 상업 기능이 축적됐다. 조선시대 관아의 정문인 관아문과 외동헌은 지금도 서산시청 앞에 남아 있고, 서산향교도 동문동에 자리한다. 도시의 행정 중심이 수백 년 동안 같은 장소를 중심으로 이어져 온 것이다.
서산 원도심의 공간구조에도 읍성도시의 흔적이 남아 있다. 옛 관아가 있던 시청 일대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번화로는 오랫동안 중심 상업가로 역할을 했다. 읍내동과 동문동의 골목길, 시장과 관공서가 가까이 모여 있는 구조는 조선시대 읍성에서 근대 상업도시로 이어진 서산의 역사를 보여준다.
근현대에 들어 서산의 관문 기능은 산업화를 통해 부활했다. 1980년대 후반 대산에 석유화학 산업이 들어오고 1991년 대산항이 무역항으로 지정되면서 서산은 농업과 수산업 중심의 도시에서 국가적인 산업도시로 변모했다. 1989년 시로 승격한 이후에는 산업단지와 새로운 주거지가 확대되면서 도시의 공간구조도 달라졌다.
그러나 서산의 도시 성장에서 주목할 점은 역사적 중심부를 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시청과 관아 유적, 번화로와 동부시장이 남아 있는 원도심 바로 남쪽에 예천지구와 중앙호수공원을 조성했다. 산업화의 성과를 새로운 도시공간으로 전환하면서 기존 중심부의 연속성을 유지한 것이다. 신시가지 개발이 원도심의 쇠퇴로 이어진 다른 중견도시들과 구별되는 서산의 중요한 도시적 성취다.
서산의 중심성을 평가하려면 개별 시설과 산업의 규모보다 서산·당진·태안 생활권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살펴봐야 한다. 주변 지역의 주민과 기업이 어떤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서산을 찾는가. 행정·사법, 교통, 의료, 산업, 문화, 상업의 여섯 가지 앵커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첫째, 행정·사법이다. 서산의 가장 분명한 광역 중심 기능은 대전지방법원 서산지원이다. 서산지원은 서산시 뿐 아니라 당진시와 태안군까지 관할한다. 세 지역이 독립적인 지방자치단체로 분리된 이후에도 하나의 사법권으로 묶여 있다는 점에서 서산의 생활권 중심성을 보여준다.
둘째, 교통이다. 서해안고속도로가 서산을 지나고 대산항은 서산을 중국과 동남아시아로 연결한다. 대산–당진고속도로는 2030년 개통을 목표로 건설 중이며, 서산공항과 대산항 인입철도도 추진되고 있다. 철도역이 없는 서산에서는 동문동의 공용버스터미널이 주변 지역과의 여객교통을 담당한다. 산업항만의 규모에 비해 광역 여객교통이 취약하다는 점이 서산의 한계다.
셋째, 의료다. 서산의료원과 서산중앙병원 등 지역 의료기관은 서산과 태안 주민들에게 중요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산업과 관광만으로는 생활권 중심지가 될 수 없다. 의료처럼 주변 지역 주민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서비스가 함께 있어야 중심성이 유지된다. 서산이 광역 생활서비스의 중심지로 발전하려면 전문의료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넷째, 산업이다. 서산의 최대 산업거점인 대산석유화학단지는 여수·울산과 함께 국내 3대 석유화학 집적지로 꼽힌다. 대산읍에는 HD현대오일뱅크, 한화토탈에너지스, 롯데케미칼, LG화학, KCC 등 주요 기업과 협력업체가 모여 있고, 주거·상업·의료 등 생활서비스도 발달했다. 대산항은 원료 수입과 제품 수출을 담당하며 석유화학산업을 뒷받침한다. 대산은 산업과 항만, 생활서비스가 결합한 서산의 주요 부도심이다.
여기에 성연면 일대의 자동차·부품 산업과 이차전지 관련 산업이 더해지면서 산업기반이 넓어지고 있다. 성연면의 서산테크노밸리는 산업단지와 주거지, 근린상업시설이 결합한 직주근접 생활권이다. 서산의 산업 중심성은 대산의 생산 규모뿐 아니라 당진의 철강·항만과 연결된 서해안 산업벨트에서 어떤 기능을 수행하느냐에 달려 있다.
다섯째, 문화다. 서산은 역사문화와 해양문화가 풍부한 서해안의 문화 중심지다. 해미읍성,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개심사, 간월암은 전국적인 인지도를 가진 역사문화 자산이다. 가로림만의 감태와 갯벌문화, 삼길포항의 선상 어시장, 간월도의 어리굴젓은 서해안 특유의 생활문화를 보여준다. 여기에 한다리마을과 유기방 가옥으로 대표되는 내포의 사대부 문화가 더해진다. 양반문화와 어촌문화, 산업도시 문화가 공존하는 서산은 역사유산과 자연경관, 지역 먹거리를 두루 갖춘 서해안의 주요 문화·관광 거점이다.
여섯째, 상업이다. 서산의 전통적인 중심상권은 동문동과 서산동부시장 일대다. 동부시장은 지금도 활발한 거래가 이루어지는 지역의 대표적인 전통시장이다. 시장에서 번화로와 중앙로로 이어지는 원도심에는 전국 패션 브랜드의 대리점과 의류·잡화점, 음식점 등 다양한 상업시설이 밀집해 있다. 특히 패션 대리점이 집적된 중심거리는 서산의 상권 규모와 오랜 상업 중심성을 보여준다.
최근에는 예천지구가 새로운 소비 중심지로 성장했다. 중앙호수공원 주변의 카페와 음식점, 석남천을 따라 형성된 수변 상권, 서해로의 대형 의류 매장과 생활용품점이 서로 다른 소비 수요를 충족한다. 산업화로 창출된 구매력이 매력적인 생활문화 공간으로 이어진 사례다. 원도심과 가까운 입지까지 고려하면 두 상권은 함께 서산·태안·당진 생활권의 상업 중심성을 강화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1982년 서산생활권이 설정된 이후 40여 년 동안 충남 서해안의 공간질서는 크게 달라졌다. 당진은 철강과 항만을 기반으로 서산과 경쟁하는 산업도시로 성장했고, 태안은 독자적인 해양관광도시로 자리 잡았다. 서산 내부에서도 대산과 성연의 산업거점, 예천동의 신시가지가 성장하면서 도시의 중심 기능이 여러 곳으로 분산됐다. 과거 서산생활권의 중심도시였다는 사실만으로 오늘날의 중심성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첫 번째 도전은 산업 중심성과 교통 중심성의 불일치다. 대산석유화학단지는 국내를 대표하는 산업거점이지만 오랫동안 고속도로 본선과 직접 연결되지 못했다. 대산에서 전국 고속도로망으로 진입하려면 당진 방향을 거쳐야 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산–당진고속도로가 건설되고 있다. 서산의 가장 강력한 산업거점이 광역교통에서는 오히려 이웃 도시의 네트워크에 의존해 온 것이다.
이 문제는 당진의 부상과 맞물린다. 대산이 석유화학으로 성장하는 동안 당진은 철강·에너지·항만을 기반으로 빠르게 산업도시화했다. 현대제철과 당진항을 비롯한 대규모 산업·물류 인프라가 들어섰고 광역교통망도 확충됐다. 결국 2025년 말에는 주민등록인구에서도 당진이 서산을 추월했다. 1989년 시로 승격한 서산과 2012년 시가 된 당진의 위상이 한 세대 만에 크게 달라진 것이다.
그러나 당진의 성장을 서산의 쇠퇴로만 볼 필요는 없다. 대산의 석유화학과 당진의 철강·항만은 하나의 서해안 산업벨트를 형성한다. 문제는 경쟁 자체가 아니라 그 벨트 안에서 서산이 어떤 기능을 맡느냐에 있다. 특히 글로벌 석유화학산업의 공급과잉과 구조조정은 서산의 고용과 지역 소비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산업구조의 다변화와 함께 산업에서 창출된 소득을 지역의 독립적인 경제·문화 기반으로 전환하는 일이 중요하다.
두 번째 도전은 태안과의 관계다. 서산과 태안은 1989년까지 하나의 군이었고 지금도 서산지원의 같은 사법권에 속한다. 태안읍 등 태안 북부로 가는 육상교통에서도 서산은 여전히 중요한 통로다. 산업도시 서산과 해양관광도시 태안은 서로 보완적인 구조를 가질 수 있다.
서산이 태안 전체의 관문인 것은 아니다. 안면도 등 태안 남부로 가는 일부 동선은 홍성 방면에서 천수만 방조제 도로를 통해 접근할 수 있다. 서산을 지나지 않고도 태안의 주요 관광지에 갈 수 있다는 의미다. 과거 하나의 행정구역이었다는 사실만으로 서산의 중심성이 자동으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세 번째 도전은 서산 내부의 공간적 통합이다. 대산과 성연의 산업거점, 해미의 역사문화 거점은 도심과 떨어져 있지만, 원도심과 예천지구는 지리적으로 연결돼 있다. 시청과 번화로, 동부시장, 공용버스터미널이 남아 있는 원도심에는 남양여관과 같은 건축 재생 공간과 새로운 로컬 사업자도 등장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공간적 연속성이 충분한 경제적·문화적 연결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산업의 성장이 원도심 경제로 확산되고, 예천지구의 소비 기능이 기존 상업·문화 자산과 결합하려면 두 지역을 연결하는 보행환경과 상업 콘텐츠가 필요하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근대 이후 서산이 철도축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이다. 내포의 전통적인 행정 중심은 홍주(홍성)였고, 근대 장항선도 천안–온양–홍성–광천–보령–장항으로 이어지며 서산을 비껴갔다. 서산은 철도가 아니라 도로와 항만을 통해 성장한 도시다. 그래서 서산에게 교통망은 다른 중견도시보다 더욱 중요한 문제다.
서산이 가진 새로운 가능성은 뜻밖에도 산업이 아니라 갯벌에서 가장 선명하게 나타난다. 1970년대 말 시작된 서산AB지구 간척사업은 천수만의 바다와 갯벌을 막아 간월호와 부남호, 대규모 농경지를 만든 국가 주도 개발사업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진 담수호와 주변 농경지는 다시 철새들이 찾아오는 생태공간이 됐다. 간월도와 천수만은 어리굴젓과 새조개 같은 지역 먹거리와 철새관광이 결합된 서산의 또 다른 얼굴이 됐다.
서산의 북쪽에서는 정반대의 역사가 진행됐다. 대산 인근 가로림만은 대규모 개발보다 갯벌의 생태적 가치를 지키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2026년 7월 가로림만의 서산갯벌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한국의 갯벌’ 확대등재를 통해 세계유산에 포함됐다. 산업개발의 시대에 바다를 메워 새로운 땅을 만들었던 천수만과, 생태의 시대에 갯벌 자체를 자산으로 다시 발견한 가로림만이 한 도시 안에 공존한다.
바로 여기에 서산의 새로운 전략이 있다. 산업도시를 버리고 생태도시로 전환하는 것이 아니다. 산업과 생태라는 두 얼굴을 서해라는 하나의 지리 안에서 연결하는 것이다.
첫째는 대산의 산업 중심성을 광역교통 중심성으로 연결하는 일이다. 2030년 개통 예정인 대산–당진고속도로와 대산항, 계획 중인 서산공항과 철도망이 연결되면 대산은 더 이상 고립된 산업단지가 아니라 서해안 산업벨트의 주요 결절점이 될 수 있다. 서산시도 대산항과 공항·고속도로·철도를 묶는 교통망 구축을 핵심 전략으로 제시하고 있다.
둘째는 가로림만–천수만–태안을 하나의 생태관광권으로 연결하는 일이다. 태안은 이미 전국적인 해양관광지다. 서산이 태안과 관광객을 놓고 경쟁하기보다 가로림만과 천수만, 해미와 가야산의 문화자산을 연결한다면 서산은 태안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넘어 서해안 여행을 조직하는 거점이 될 수 있다. 가로림만의 세계자연유산 등재는 이러한 생태관광권을 구축할 수 있는 새로운 계기다.
셋째는 서산 원도심을 이 여행권의 베이스캠프로 만드는 일이다. 지금도 해미읍성, 마애여래삼존상, 간월암, 가로림만을 찾는 여행자는 많지만 이들이 반드시 서산읍에 머물러야 할 이유는 충분하지 않다. 서산시는 체류형 관광을 확대하기 위해 ‘서산에서 일주일 살아보기’와 단체관광객 유치사업 등을 운영하고 있다.
서산 원도심은 이러한 체류 거점으로 발전할 수 있는 건축환경과 상업 기반을 가지고 있다. 관아에서 번화로와 동부시장, 버스터미널로 이어지는 역사적 중심가로가 있고, 오래된 음식점과 건물, 새로운 로컬 공간도 등장하고 있다. 남양여관과 같은 건축 재생, 번화로의 독립상업과 로컬 콘텐츠를 확장한다면 원도심은 단순한 전통상권을 넘어 서해안 여행의 문화적 거점으로 발전할 수 있다.
넷째는 서산 내부의 공간적 통합이다. 대산과 성연의 산업거점, 예천지구의 소비·생활문화 중심지, 원도심의 역사적 상업지구, 해미의 문화거점을 하나의 도시경제로 연결해야 한다. 특히 중앙호수공원과 번화로·동부시장·버스터미널을 연결하는 생활문화 축을 형성하고, 원도심의 건축환경과 로컬 콘텐츠를 강화해 신시가지와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결국 서산이 회복해야 할 것은 단순한 인구 순위가 아니다. 홍성은 내포의 역사적 행정 중심이라는 자산을 가지고 있고, 당진은 철강·항만을 기반으로 산업과 물류의 규모를 키웠다. 태안은 해양관광에서 독자적인 브랜드를 구축했다. 서산은 대산의 산업소득을 바탕으로 예천지구라는 매력적인 신시가지를 형성하고, 역사적 원도심과 가까운 곳에 새로운 생활문화 중심지를 만든 경험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가로림만과 천수만의 생태자산, 대산항의 산업·물류 기능을 연결한다면 산업 규모뿐 아니라 생활환경과 문화적 매력으로 차별화된 새로운 산업도시 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
머드맥스가 보여준 갯벌은 산업도시 서산의 반대편 얼굴이 아니다. 우리가 대산석유화학단지만으로 바라보던 서산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또 하나의 서산이다. 공장도 갯벌도, 항만도 철새도 결국 서해라는 하나의 지리에서 나왔다. 서산이 이 다양한 자산을 하나의 지역경제로 연결하고 새로운 산업도시 모델을 완성할 때, ‘서해안의 관문’은 과거의 구호를 넘어 실질적인 중심성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