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주거 사다리인가

누구의 주거 사다리인가


“청년의 주거 사다리를 지켜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아파트 재건축과 주거지 재개발을 통해 주택 공급을 늘려, 청년이 주택을 확보하 고 소득과 자산이 늘어남에 따라 더 나은 주택으로 이동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자는 뜻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문제는 그 청년이 누구냐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주거 사다리는 대학을 졸업하고 안정적인 온라인 게임을 얻은 뒤 대출과 저축, 경우에 따라 부모의 도움을 받아 첫 집을 사고 더 좋은 집으로 옮겨가는 경로다. 서울에서는 사실상 아파트를 향하는 사다리다. 인서울 대학을 졸업해 대기업이나 전문직에 취업한 청년이라면 비교적 현실적인 경로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청년이 이 사다리 앞에 서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의 입학정원부터 전국 고교 졸업생 한 학년의 15% 안팎에 불과하다. 그중에서도 대기업과 전문직에 진입하는 청년은 다시 일부다. 청년을 하나의 계층처럼 말하면 이런 차이가 사라진다.


더 많은 청년에게 서울의 주거 사다리는 다른 곳에서 시작한다. 학교나 온라인 게임 근처의 작은 원룸을 구하고, 소득이 늘어나면 조금 넓은 빌라나 다세대주택으로 옮긴다. 결혼하거나 가족이 생기면 서울을 벗어나 수도권 교외의 신도시에서 집을 찾는다. 더 넓고 쾌적한 주택을 상대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가격에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가운데 소득과 자산이 늘어난 일부는 다시 서울의 아파트로 돌아올 것이다.


이렇게 보면 청년의 주거 사다리는 모두가 서울 아파트를 향해 곧바로 올라가는 하나의 사다리가 아니다. 서울의 저가 원룸과 빌라는 청년이 도시에 진입하는 공간이고, 교외 신도시는 가족 형성기에 필요한 주택을 제공하며, 서울 아파트는 그중 일부가 나중에 선택하는 주거지가 된다.


사다리의 첫 계단을 없애는 재개발

정부와 지자체는 청년의 주거 사다리를 지키기 위해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확대하고 있지만, 자가 선호가 강한 한국에서 공공임대만으로 주거 사다리 전체를 만들기에는 한계가 있다. 더구나 재개발·재건축으로 기존 저층 지역을 철거한 뒤 그 일부를 공공임대로 공급한다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청년을 수용하던 저가 민간주택과 다양한 가격대의 주거 선택지가 함께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더 큰 역설이 발생한다. 청년의 주거 문제를 해결한다는 이름으로 추진하는 재개발·재건축이 정작 사다리의 아래쪽을 없앨 수 있다는 점이다. 재개발 대상이 되는 저층 주거지에는 오래된 원룸과 다세대·다가구주택이 많다. 시설은 낡았지만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으로 서울에 진입할 수 있는 주거 공간이다. 이들을 철거하고 신축 아파트로 바꾸면 주택의 물리적 품질은 좋아진다. 그러나 저렴한 주택 재고는 사라지고 진입가격과 임대료는 높아진다.


결국 재개발은 서울 아파트를 구입할 수 있는 일부 청년에게는 새로운 주택을 공급하면서, 다른 청년에게는 서울에 처음 진입할 수 있는 저렴한 주택을 줄이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한쪽의 주거 사다리를 만들기 위해 다른 쪽의 첫 번째 계단을 없애는 셈이다.


저층 지역이라는 도시 생태계

낡은 원룸과 빌라를 그대로 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필요한 것은 저층 지역의 소멸이 아니라 진화다. 오래된 건물은 수리하고, 수명이 다한 건물은 개별적으로 다시 짓고, 필요한 곳에는 중층 공동주택과 다양한 유형의 주택을 공급해야 한다.


저층 지역의 가치는 주거에 그치지 않는다. 제인 제이콥스는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에서 도시가 다양한 경제활동을 수용하려면 오래된 건물을 포함해 서로 다른 연식과 비용의 건물이 섞여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든 건물이 새 건물이라면 높은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사업만 살아남기 때문이다.


이 원리는 한국의 저층 지역에도 적용된다. 다양한 연식과 가격대의 건축물이 공존하는 저층 지역은 청년과 중산층에게 다양한 주거 선택지를 제공하는 동시에 소상공인·예술가·크리에이터에게 가게와 작업실, 사무실을 제공한다. 이들이 진입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골목상권과 창조지구도 만들어진다.


따라서 주택정바카라은 몇 채를 새로 지을 것인가만 물어서는 안 된다. 어떤 건축 생태계를 남기고 어떤 도시를 만들 것인가도 물어야 한다. 역세권 복합개발과 주거지 재개발·재건축 일변도의 정바카라으로는 청년과 중산층의 주거 문제뿐 아니라 소상공인의 경쟁력과 창조지구 육성 문제도 해결하기 어렵다.


필요한 것은 저층 지역을 없애는 개발이 아니라, 다양한 연식의 건축물이 공존하는 저층 지역을 유지하면서 그 품질을 지속적으로 높이는 도시정바카라이다.


#도시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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