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질서』를 집필하면서 반복해서 마주치는 퍼즐이 있다. 원도심과 신도심의 관계다. 신도시가 조성되면 원도심은 중심성을 상실하지만, 새롭게 개발된 신도심도 지역생활권의 중심지로 성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도시에는 여러 상업지구가 존재하지만, 주변 지역의 소비자까지 끌어들이는 강력한 중심상권은 사라진다. 흔히 이를 신도시 개발에 따른 도시 역량의 분산으로 설명하지만, 실제로는 더 구체적인 경제적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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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원도심 상권의 구성이다. 신도시 개발과 소비자 이동으로 원도심의 상업적 중심성은 크게 약화됐지만, 중심 업종은 여전히 패션이다. 거리를 걷는 사람은 줄고 공실은 늘어나는데도 전국적인 패션 기업의 로드숍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소비자가 떠나고 상권이 쇠퇴했는데도 업종 구성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원도심 상권은 왜 쇠퇴한 업종에서 벗어나 새로운 업종으로 전환하지 못하는 것일까?
한국 소도시의 원도심은 주변 시군의 소비자들이 모이는 지역생활권의 종합 쇼핑 중심지였다. 과거에는 지역 상인들이 운영하는 의류점과 양품점, 신발가게, 서점, 문구점, 가구점, 전자제품점 등 다양한 업종이 중심상권을 구성했다. 원도심은 특정 상품을 구매하는 거리가 아니라 지역생활권의 다양한 소비 수요를 충족시키는 상업 중심지였다.
이러한 상권 구조를 바꾸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부터 확산된 전국 패션 브랜드의 대리점 시스템이었다. 이랜드를 비롯한 패션기업들은 지역 상인들을 대리점주로 활용해 전국으로 유통망을 확장했다. 1990년대에는 캐주얼과 스포츠·아웃도어 브랜드가 중심가로에 집중하면서 전국 소도시마다 비슷한 패션 쇼핑거리가 형성됐다. 여러 브랜드를 한자리에서 비교하고 구매할 수 있다는 집적의 이익이 패션업종의 집중을 더욱 강화했다. 다양한 업종이 공존하던 원도심은 점차 전국 패션 브랜드 대리점 중심의 상권으로 바뀌어 갔다.
신도시 개발은 이러한 상권 구조를 다시 흔들었다. 신도심에는 아파트 주민들의 일상적인 소비를 담당하는 음식점과 카페, 병원, 학원, 생활서비스 업종이 집적했다. 그러나 이러한 생활형 상권은 원도심의 패션 로드숍을 충분히 유인하지 못했다. 패션 브랜드는 다른 패션 브랜드가 모여 있는 곳에서 집적의 이익을 얻기 때문이다. 그 결과 신도심은 생활소비의 중심지가 되었지만 지역생활권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쇼핑 중심지로 성장하지 못했고, 원도심은 소비자를 잃으면서도 기존 패션상권의 구조를 유지하게 됐다.
여기에는 집적경제의 함정이 있다. 패션 브랜드는 다른 패션 브랜드가 모여 있는 거리에 입점할수록 유리하고, 건물주는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전국 브랜드를 선호한다. 개별 사업자에게는 모두 합리적인 선택이지만, 이러한 선택이 반복되면 상권 전체는 특정 업종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된다. 개별 점포의 합리성이 상권 전체의 취약성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패션시장의 경쟁구조가 바뀌면서 이러한 취약성이 드러났다. 고급 패션시장에서는 해외 명품 브랜드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면서 국내 브랜드의 경쟁력이 약해졌다. 중저가 시장에서는 SPA 브랜드가 가격과 상품 기획에서 경쟁력을 확보했다. 무신사와 29CM 같은 패션 전문 플랫폼은 독립·디자이너 브랜드의 성장을 이끌었고, 네이버쇼핑과 쿠팡 같은 종합 이커머스 플랫폼은 의류 구매를 온라인으로 이동시켰다. 고급시장과 중저가 시장에서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하고 유통채널까지 변화하면서 기존 전국 패션 브랜드의 입지는 좁아졌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유명 브랜드의 옷을 사기 위해 소도시 번화가를 방문할 필요가 없어졌다. 전국 브랜드의 집객력이 약해지자 그 브랜드에 의존했던 중심상권도 함께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패션 브랜드의 경쟁력이 약해져도 로드숍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대리점 시스템이 그 이유 중 하나다. 본사는 상품을 공급하지만 임대료와 인건비는 지역 대리점주가 부담한다. 본사는 점포를 유지하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작고, 점주는 기존 투자와 생계 때문에 쉽게 철수하지 못한다. 한때 패션상권을 전국으로 확산시킨 대리점 시스템이 이제는 업종 전환을 지연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건물과 임대료의 문제도 있다. 특정 업종이 밀집하면 점포의 크기와 구조, 임대료, 거리의 이미지까지 그 업종에 맞춰진다. 업종의 경쟁력이 약해진 뒤에도 건물주가 과거의 임대료 수준을 고수하면 새로운 사업자가 들어오기 어렵다. 한때 상권을 성장시킨 집적경제가 이제는 다른 업종으로의 전환을 가로막는 것이다.
업종 과밀의 위험은 소도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의 이대 앞은 한때 중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화장품 로드숍이 밀집하면서 번성했지만, 관광 수요와 화장품 유통구조가 달라지자 상권 전체가 침체했다. 화장품 매장이 빠져나간 자리를 다른 업종이 곧바로 채우지는 못했다. 최근에는 허용 업종 확대와 카페·음식점의 진입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상권의 전환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가로수길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패션 브랜드와 대형 플래그십 스토어가 밀집하면서 유명 상권으로 성장했지만, 높은 임대료와 소비 변화로 주요 브랜드가 철수한 뒤 공실이 늘어났다. 건물주가 과거의 임대료 수준을 유지하려는 경향은 새로운 업종의 진입을 어렵게 했다. 최근 임대료 인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지만, 한번 높아진 상권의 비용구조를 바꾸기는 쉽지 않다.
먹자골목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음식점과 술집이 밀집한 거리는 외식과 음주를 목적으로 하는 고객을 끌어들이지만, 독립서점과 디자인숍, 공방, 갤러리 같은 다른 콘텐츠가 진입하기는 쉽지 않다. 몇몇 새로운 가게가 들어온다고 해서 거리 전체가 콘텐츠 상권으로 전환되지는 않는다. 특정 업종에 특화된 상권은 강한 경로의존성을 갖는다.
이것이 집적경제의 역설이다. 특정 업종의 집중은 상권을 빠르게 성장시키지만, 그 업종의 경쟁력이 사라지면 상권 전체가 동시에 쇠퇴한다. 더 큰 문제는 쇠퇴 이후에도 기존 업종을 중심으로 형성된 건축환경과 임대료, 상업적 관성이 남아 새로운 업종의 진입을 어렵게 만든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할까. 기존 점포의 철수나 업종 전환을 직접 규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대리점 계약과 점포의 존속을 결정하는 경제적 유인에 대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상권 전체가 특정 업종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도록 사전에 관리하는 것은 검토할 수 있다.
지금까지 상권정바카라은 기존 업종 구성을 전제로 거리 환경을 개선하고 고객을 유치하는 활성화 사업에 집중해 왔다. 그러나 특정 업종의 경쟁력이 구조적으로 약화된 상황에서는 이러한 방식만으로 상권을 회복하기 어렵다. 앞으로는 집적의 이익뿐 아니라 과밀의 위험을 관리하고, 변화하는 소비시장에 맞춰 업종 전환과 재구성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정바카라을 전환해야 한다. 업종별 점포 비중과 전국 브랜드 집중도, 공실률 등을 조사해 상권의 다양성을 진단하고, 특정 업종이 과도하게 밀집한 가로에서는 새로운 업종의 진입을 유도하고 점포의 용도 전환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구단위계획과 상권 활성화 사업도 이러한 목적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상권의 다양성은 도시의 경제적 회복력을 결정하는 중요한 자산이다. 결국 원도심 쇠퇴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패션 브랜드의 과도한 집적을 관리하지 못한 데 있다. 원도심의 중심성을 회복하려면 거리 환경을 개선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존 업종 구성을 유지하는 활성화 정바카라에서 벗어나 지역의 독립상점과 다양한 업종이 공존하도록 상권을 재구성해야 한다. 상권의 회복은 기존 상권을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상권으로 전환하는 데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