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공원, 정말 최선인가

용산공원, 정말 최선인가


용산공원을 고수해야 한다는 주장을 이해한다. 콘크리트로 뒤덮인 도시에서 살다 보면 나무와 풀, 트인 하늘을 그리워하게 된다. 그런 공간을 지키자는 목소리는 자연스러운 시민 정신의 발현이다.


2007년 노무현 정부가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을 만들어 반환되는 미군기지 부지를 공원으로 규정한 것도 개발 압력으로부터 이 땅을 지키려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난개발을 우려해 공원이라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2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서울도 변했고 도시를 바라보는 시민의 시각도 달라졌다. 거대한 상징 공간이나 기능별로 분리된 도시보다 동네와 생활권, 그리고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상이 중요해졌다. 이제 용산공원을 당연한 선택으로 만들어온 네 가지 신화부터 다시 생각해보자.


첫째, 서울 중앙에는 거대한 공원이 필요하다는 신화다.

파리나 런던, 도쿄, 뉴욕 같은 도시에서 대형 공원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서울은 이들 도시와 자연환경이 다르다. 서울은 산과 물을 끼고 형성된 배산임수의 도시다. 북한산과 관악산이 도시를 둘러싸고 한강이 중심을 가로지른다. 서울 중앙에는 이미 남산이라는 거대한 녹지가 있다.

서울에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거대한 중앙공원보다 이미 존재하는 산과 강, 공원과 고궁을 시민의 일상과 연결하는 일이다. 남산과 한강, 고궁과 동네 공원, 가로수길이 하나의 보행 네트워크로 이어진다면 서울 전체가 거대한 녹지 체계로 작동할 수 있다.


둘째, 거대한 녹지공원이 진짜 공원이라는 신화다.

시민의 삶에서 더 중요한 녹지는 매일 걷는 가로수길과 집 가까이에 있는 작은 공원일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이런 생활권 녹지는 재건축과 재개발 과정에서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동네 골목의 나무가 베어지고 폐쇄적인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며 그 주변에는 자동차 중심의 넓은 도로가 만들어진다.

녹지의 총량만큼 중요한 것은 녹지가 시민의 일상과 얼마나 가까이 있느냐다. 좋은 도시는 거대한 공원 하나를 가진 도시가 아니라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걷고, 나무를 만나고, 작은 공원에서 쉴 수 있는 도시다.


셋째, 현재의 용산이 정상이라는 신화다.

용산의 가장 큰 문제는 녹지가 부족하다는 것이 아니라 생활권이 분절돼 있다는 점이다.

조선시대 한양은 도성과 그 바깥의 성저십리로 이루어져 있었다. 오늘날 마포·성동·서대문·성북 같은 지역들은 도심과 연결되면서 동서와 남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도시로 성장했다. 용산만은 달랐다. 서울 한가운데의 거대한 부지를 외국 군대가 백 년 넘게 사용하면서 주변 동네와 단절된 채 남았다.

이제 그 땅이 시민에게 돌아온다. 반환된 부지를 다시 주변과 격리된 거대한 공원단지로 만든다면 형태만 달라질 뿐 단절은 계속된다. 용산만 멈춰 있던 도시화의 시간을 다시 이어갈 때다. 남산과 한강, 주변 동네를 잇는 용산의 동네화가 필요하다.


넷째, 용산이 국가상징공간으로 적절하다는 신화다.

서울에는 이미 국가를 상징하는 공간이 있다. 광화문이다. 광화문광장과 경복궁, 북악산으로 이어지는 축은 역사적으로나 상징적으로나 대한민국을 대표한다.

용산까지 국가상징공간으로 설정한다면 사실상 광화문의 상징축을 한강까지 연장하는 셈이다. 서울에 워싱턴 D.C.의 내셔널 몰과 같은 거대한 단일 상징축이 필요한지, 국가를 상징하는 공간이 하나 더 필요한지 의문이다.

용산의 역사도 생각해봐야 한다. 이곳은 근대 이후 오랫동안 외국 군대가 주둔했던 땅이다. 외국 군대가 떠나고 땅을 되찾았다는 사실에는 의미가 있지만, 그것이 곧 이곳을 국가상징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서울의 국가상징공간은 광화문으로 충분하다.

오히려 용산의 역사를 미래지향적으로 전환할 수 있다. 외부 세계와 오랫동안 접촉했던 장소를 이제 한국인과 외국인이 함께 살고 일하며 새로운 글로벌 문화를 만드는 도시로 바꾸는 것이다.


용산에서 새로운 도시를 실험하자.

국립중앙박물관, 전쟁기념관, 국방부, 어린이공원 등 기존 시설은 유지하고 나머지 반환 부지에서 새로운 도시를 실험할 수 있다. 공공임대주택과 공공공간을 중심으로 저층·고밀의 동네를 만드는 것이다.

단순한 주택 공급을 넘어 친환경, AI, 창조성, 삶의 질, 다양성이라는 미래 도시의 가치를 하나의 생활권에 결합해보자. 청년과 외국인, 창업가와 크리에이터가 함께 살고 일하며 새로운 글로벌 문화와 생활방식을 만드는 도시다.

용산은 서울 한복판에 다시 나오기 어려운 땅이다. 세상 어디에도 아직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도시 모델을 서울 중심에서 실험할 기회다.

용산 공원화만이 난개발을 막고 공공성을 지키는 유일한 대안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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