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질서 시리즈, 영월 편으로 강원도 파트를 마쳤다. 춘천, 속초, 강릉, 원주, 영월—이 시리즈의 기준으로 보면 강원도의 중견도시는 5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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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도시. 이 시리즈가 다루는 23개 도시를 이렇게 부르기로 했다. 광역단체와 기초단체 사이에서 주변 3~5개 기초단체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도시들이다. 자기 생활권에서는 분명 중심이다. 병원도 법원도 대학도 이 도시에 있다. 그런데 그 생활권을 이루는 이웃 시·군에 대해서는 공식 권한이 하나도 없다. 시장과 군수는 법적으로 대등하다. 중심 노릇은 하되 그걸 뒷받침할 제도는 없는 도시들. 그래서 중견도시는 국토계획의 잃어버린 고리다.
정부가 이 자리를 몰랐던 건 아니다. 1981년 제2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이 전국을 28개 생활권으로 나누고 중심도시를 지정했다. 대도시생활권 5개를 빼면 23개, 이 시리즈가 다루는 도시와 정확히 같다. 2014년 박근혜 정부의 지역행복생활권 정바카라도 비슷한 시도였지만 방식이 달랐다. 중앙정부가 중심을 지정하지 않고 시·군의 자율 협의에 맡겼다. 생활권을 나누는 문제에는 두 번 다 답했지만, 그 안에서 누가 중심을 맡을지는 여전히 빈칸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도 지금 다시 중견도시를 봐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소멸 위기를 광역권 집중만으로는 풀 수 없기 때문이다. 통합 진통을 겪는 전남광주가 그 증거다. 목포권, 광주권, 순천권으로 이루어진 이 광역단체는 광주 하나로 굴러가지 않는다. 목포와 순천이 각자 제 역할을 하지 않으면 통합은 이름뿐이다. 다른 광역권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이 시리즈는 각 중견도시가 어떻게 지금의 중심이 되었고, 그 중심성을 지키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전부 새로 가는 길도 아니다. 2015년 이후 다닌 기록을 정리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번엔 그중 상대적으로 덜 가본 도시부터 다시 걷는다.
중견도시를 이론으로 세울 수 있을까. 국제정치의 중견국가론이 실마리를 준다.
세계 무대에서 중견국은 강대국도 약소국도 아닌 나라다. 다른 나라를 명령할 공식 권한이 애초에 없다는 조건에서 출발한다는 점이 이 개념을 쓸모 있게 만든다. 그래서 세계 무대에서 중견국은 모든 걸 잘하려 하지 않고 한 분야를 정해 기준이 되는 니치외교를 하고, 스스로 결정을 밀어붙이는 대신 판을 짜고 합의를 관리하는 촉매자·조정자 역할을 맡으며, 비슷한 처지의 행위자를 모으는 연합외교를 편다. 이 모두를 떠받치는 것은 신뢰와 평판이다.
그런데 중견국 대부분은 정작 지역 무대에서는 중추국가로 기능한다. 세계 무대에서는 중견국이지만 지역 무대에서는 구심점이라는 뜻이다. 여기서는 방식이 다르다. 공식 권한이 아니라 공공재를 공급함으로써 리더십을 얻는다. 브라질이 우나수르를 만들어 남미에서 얻은 위치가 그렇다. 명령이 아니라 다들 함께 쓸 무언가를 대신 만들어주기 때문에 주변이 따라온다.
중견도시도 이 두 무대를 동시에 산다. 광역단체와 전국 체계라는 세계 무대에서는 중견국처럼 니치와 신뢰로 존재감을 만들어야 하고, 지역생활권이라는 지역 무대에서는 중추국가처럼 공공재를 대신 공급해야 한다. 교통망을 연결하고, 광역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며, 대학과 병원을 유지하고, 산업과 상업의 중심을 형성하며, 생활문화의 선택지를 공급하는 일이다.
중견도시론은 단순히 규모가 큰 도시를 연구하는 이론이 아니다. 공식 권한 없이도 주변 지역을 연결하고, 생활권에 필요한 공공재를 공급하며, 중심으로서의 신뢰를 얻는 방법을 찾는 이론이다. 이 도시는 자기만 잘하는 게 있는가. 생활권 전체가 함께 쓸 무언가를 대신 공급하고 있는가. 이 도시가 흔들리면 생활권 전체가 함께 흔들릴 만큼 여전히 대체 불가능한가.
이 질문에 하나씩 답해가는 일, 그것이 중견도시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