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공원의 제3의 길

용산공원의 제3의 길


용산공원 부지를 둘러싼 논쟁이 ‘주택이냐 공원이냐’라는 이분법으로 흐르고 있다. 정부는 법률을 개정해 용산공원 부지 일부에 청년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고, 반대편에서는 국가공원을 온전히 지켜야 한다고 맞선다.


서울 중심부에 청년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는 방향은 의미가 있다. 온라인 게임과 교육·문화시설에 접근하기 좋은 곳에 청년이 감당할 수 있는 주택을 공급하는 것은 중요한 정바카라 과제다. 그러나 공공임대주택이라고 해서 기존의 고층 아파트 단지 방식을 반복할 필요는 없다. 고층 주거동과 폐쇄적인 대규모 단지로 구성된 개발은 남산에서 용산공원을 거쳐 한강으로 이어지는 역사·문화축을 훼손할 뿐 아니라, 가로와 주변 도시를 단절시키고 용산공원 부지를 주거 기능에 치우친 섬으로 만들 수 있다. 정부의 구상이 고층 단지형 개발로 귀결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용산공원 부지 전체를 대형 공원으로 남겨야만 서울의 녹지를 지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서울은 녹지의 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도시라기보다 생활권에서 이용할 수 있는 녹지가 고르게 분포하지 않고 서로 연결되지 않은 도시다. 중요한 것은 거대한 잔디밭의 면적이 아니라 가로수길과 소형 공원, 광장과 정원이 일상에 얼마나 촘촘히 들어와 있는가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용산공원 부지를 서울 전체의 주택 공급량과 공원 면적을 조정하는 수단으로만 다룬다는 데 있다. 서울 전체만 도시가 아니다. 시민의 일상이 이루어지는 동네와 생활권도 하나의 도시로 기능해야 한다. 주택만 대량으로 지으면 또 하나의 주거단지가 되고, 공원만 조성하면 주변과 단절된 녹색 섬이 된다. 도시는 주거와 업무, 상업과 문화, 교육과 여가, 거리와 자연이 함께 작동하는 공간이다. 용산공원 부지 자체가 살고 일하고 즐길 수 있는 완결된 도시로 기능할 수 있는지를 질문해야 한다. 이제 주택과 공원의 이분법을 넘어 용산공원의 제3의 길을 찾아야 한다.


완결된 저층 고밀도 공원도시

제3의 길은 용산공원 부지를 하나의 완결된 청년도시로 계획하는 것이다. 청년에게 잠자리만 제공하는 주거단지가 아니라 청년이 살고, 일하고, 창업하고, 배우고, 문화를 만드는 도시다. 세계의 창업자와 연구자, 예술가와 크리에이터가 일정 기간 머물며 협업하는 직주락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공공·민간 임대주택, 공유오피스와 창업 공간, 대학과 직업교육시설, 공방과 상점, 공연장과 독립서점, 스포츠시설과 공원이 걸어서 연결돼야 한다. 집에서는 잠만 자고 다른 기능은 외부에서 해결하는 베드타운이 아니라 일상에 필요한 기능을 내부에 갖춘 생활권이어야 한다.


공간 모델은 저층 고밀도의 복합 임대도시다. 역사적 건축물과 중요한 녹지를 보존하면서 5~10층 안팎의 복합건축을 가로를 따라 촘촘하게 배치한다.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 김성홍의 ‘길모퉁이 건축’, 최근 건축계에서 논의되는 ‘중간주택’은 모두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영세한 필지 단위 건축 사이의 대안을 모색한다. 저층에는 상점과 공방, 공유오피스와 문화시설을 넣고 상층에는 공유주거와 업무공간을 둔다. 용산공원은 이러한 건축적 논의를 도시 규모로 실험하는 장소가 될 수 있다.


기본 단위는 아파트 단지가 아니라 가로와 블록이어야 한다. 작은 블록과 촘촘한 보행로를 만들고 길마다 가로수를 심는다. 큰 공원은 선형공원과 소형 공원, 광장과 중정, 옥상정원으로 연결한다. 집에서 업무 공간과 학교, 상점으로 가는 길이 곧 공원길이 되는 도시다.


저층 고밀도 개발은 주택 공급과 공원 조성, 역사 보존을 함께 실현할 수 있는 대안이다. 공원 한편에 도시를 끼워 넣는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를 하나의 공원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이는 주택과 공원의 면적을 절충하는 타협안이 아니다. 주거와 업무, 상업과 문화, 녹지와 역사 자원을 하나의 생활권으로 결합하는 새로운 도시 모델이다.


건물 단위 소유, 임대 중심 도시

공간 형태만큼 중요한 것은 소유와 운영 방식이다. 용산공원에 들어설 주거와 업무, 상업 공간은 개별 호실을 분양하지 않고 건물 단위로 소유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건물 전체를 한 소유자가 보유하고 내부 공간을 다양한 이용자에게 임대하는 방식이다.


주거는 공공기관이나 민간 소유주가 건물 전체를 보유하고 임대하며, 한 건물과 블록 안에 공공임대와 민간임대를 적절히 혼합한다. 공유주거도 개인의 독립된 공간을 보장하면서 식당과 작업실, 운동시설과 정원, 커뮤니티 공간을 선택적으로 공유하도록 설계한다. 다양한 소득과 직업, 국적과 생애주기의 사람들이 함께 생활할 수 있어야 한다.


업무시설도 호실별로 분양하거나 폐쇄적인 대형 사옥으로 짓기보다 민간이 건물 단위로 소유하고 운영해야 한다. 내부에는 공유오피스와 공동 작업장, 스튜디오와 연구공간을 배치해 임대한다. 서로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만나 아이디어와 프로젝트를 만드는 환경이다.


상가 역시 민간이 건물 전체를 소유하고 운영하되 구분소유 방식의 개별 호실 분양은 금지해야 한다. 하나의 운영자가 내부 공간을 독립상점과 공방, 서점과 식당, 로컬 브랜드에 임대하고 업종 구성과 임대료, 공용공간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방식이다. 그래야 청년 창업자와 실험적인 상점을 유치하고 상권의 정체성을 장기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원칙은 간단하다. 주거와 업무, 상업 공간은 건물 단위로 소유하고 개별 공간은 다양하게 나누어 임대한다. 주거에는 공공임대와 민간임대를 혼합하고, 업무시설과 상가는 민간이 소유하고 운영한다. 개별 호실을 분양하는 도시가 아니라 건축물과 상권을 장기적으로 관리하며 콘텐츠를 축적하는 도시를 만들자는 것이다.


새로운 도시를 실험하자

용산공원 관련 법률을 개정한다면 공원 부지에 고층 공공임대아파트를 짓는 데 머물지 말고 용산공원의 제3의 길을 제도화해야 한다. 용산공원 부지 전체를 하나의 새로운 도시로 계획하고 장기간 운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용산공원은 고층 아파트 단지가 되어야 하는가, 거대한 잔디공원이 되어야 하는가. 둘 다 충분하지 않다. 용산공원은 도시가 되어야 한다. 청년이 집을 소유하지 않아도 안정적으로 살고, 작은 기업과 상점이 높은 임대료에 밀려나지 않으며, 업무와 생활, 문화와 자연을 걸어서 누릴 수 있는 도시다.


용산공원의 공공성은 공원 면적이나 임대주택 공급량을 최대화하는 데만 있지 않다. 서울이 아직 시도하지 못한 새로운 도시의 가능성을 다음 세대에 여는 데 있다. 이것이 용산공원의 제3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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