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앵커

도시의 앵커


경주 보문단지의 한 호텔 강연장에 서서 문득 3년 전 대구를 떠올렸다. 2023년 11월, 동성로의 오래된 상가 건물 무영당에서 열린 출범식이었다. 동국대 한광야 교수가 오래 구상해 온 사업이 마침내 첫걸음을 떼던 자리였다.


대구·경산권 열두 개 대학이 힘을 모아 동성로에 공동 캠퍼스를 열겠다는 구상은 당시로서는 다소 무모하게 들리기도 했다. 대학은 저마다 자기 캠퍼스를 지키려는 관성이 유독 강한 조직이다. 그 열두 곳이 원도심의 한 거리에 함께 자리를 내겠다고 나선 것 자체가 이례적이었다.


그로부터 3년, 이 사업은 교육부의 RISE 체계 안으로 편입되며 지속 가능한 궤도에 올라섰다. 이번 경주 세미나는 지난 3년의 성과를 나누는 자리이자 앞으로의 방향을 다시 묻는 자리였다. 나는 여기서 「지역 대학은 어떻게 지역슬롯의 앵커가 되는가」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지역소멸이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닌 시대다. 학령인구는 줄고, 지방대학은 정원을 채우지 못하며, 청년은 계속 지역을 떠난다. 이런 흐름 속에서 대학에 요구되는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단순히 학생을 가르치고 졸업시키는 기관을 넘어, 지역이 기댈 수 있는 무언가가 되라는 요구다.


그 요구에 답하는 길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생태계의 앵커가 되는 길과 도시의 앵커가 되는 길이다.


생태계의 앵커와 도시의 앵커

먼저 익숙한 쪽부터 보자. 대학을 중심으로 기업과 연구기관, 지방정부가 연결되고, 그 연결 속에서 인재가 길러지고 산업과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우리가 흔히 그리는 생태계의 앵커다.


교육부의 글로컬대학사업은 대학을 지역혁신생태계의 중심으로 세우려 하고, RISE 사업은 대학을 지역인재양성생태계의 중심으로 세우려 한다. 초점은 조금 다르지만 논리는 같다. 대학이 잘 작동하면 그 주변에 생태계가 자라나고, 생태계가 자라나면 지역이 산다는 논리다.


그런데 교육부가 아직 본격적으로 시도하지 않은 또 하나의 길이 있다. 지역 대학을 도시의 앵커로 만드는 것이다. 대학 자체가 사람이 실제로 찾아오는 목적지가 되어 원도심의 공간과 보행, 상권과 커뮤니티를 지탱하는 방식이다.


두 길은 본래 상호보완적이다. 다만 삶의 질을 중시하는 오늘의 문화를 고려하면 도시의 앵커라는 두 번째 역할이 더 중요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학의 참여로 지역혁신생태계와 지역인재양성생태계를 활성화하더라도, 그 생태계가 만든 일자리와 도시를 지역 인재가 선호하리라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좋은 일자리가 있어도 살고 싶지 않은 도시라면 사람은 결국 떠난다.


대학의 역할은 어쩌면 산업과 일자리를 직접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대학이 자리한 도시 자체를 더 살고 싶고, 걷고 싶고, 머물고 싶은 도시로 만드는 데까지 확장되어야 한다.


적어도 동성로 연합캠퍼스에서는 도시의 앵커가 되는 일이 먼저다. 사람이 찾아오는 곳이라야 인재가 머물고, 인재가 머물러야 그 위에 산업과 혁신 생태계도 뿌리를 내릴 수 있다. 이 가능성을 선명하게 보여준 도시가 미국의 시라큐스다.


시라큐스, 고속도로가 가른 도시를 다시 잇다

뉴욕주 시라큐스대학에서 다운타운까지는 약 1마일에 불과하다. 그러나 1959년부터 1969년까지 단계적으로 건설된 81번 고속도로는 대학과 도심 사이의 보행 동선을 끊고 기존 공동체를 갈라놓았다.


한때 GE와 캐리어를 중심으로 성장했던 산업도시는 제조업 쇠퇴와 함께 활력을 잃었다. 대학은 세계적인 대학으로 성장했지만, 그 활력이 담장 밖 다운타운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지는 않았다. 가까운 거리였지만 대학과 도심은 서로 다른 세계처럼 움직였다.


전환점은 지역 참여를 강조한 낸시 캔터 총장이 2004년 부임하면서 찾아왔다. 대학은 2005년 다운타운 서쪽의 낡은 가구 창고를 매입해 개조하고 이듬해 디자인대학을 입주시켰다. 이어 대학과 다운타운을 연결하는 무료 버스를 운행하고 보행로와 자전거도로, 공공미술과 조명을 결합한 ‘커넥티브 코리더’를 조성했다.


대학과 시, 지역 파트너들은 약 4,800만 달러를 투입했다. 70여 곳의 건물 외관을 개선하고 20여 개 건물에 조명을 설치했으며, 거리 곳곳에 공공미술과 문화 프로그램을 채웠다. 대학을 상징하는 오렌지색은 캠퍼스 안에 머물지 않고 다운타운의 버스와 거리, 안내시설로 확장됐다.


중요한 것은 대학이 도시 전체를 대신 개발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학은 일부 기능을 도심으로 옮기고, 두 공간을 잇는 동선을 만들고, 학생과 시민이 오갈 이유를 제공했다. 캠퍼스 하나가 방향을 바꾸자 도시의 동선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동성로 연합캠퍼스도 이 순서를 따라갈 수 있다. 열두 대학이 단순히 강의실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각 대학의 정체성을 살린 콘텐츠를 동성로 곳곳에 펼치면서도, 시민과 학생이 그것을 하나의 캠퍼스로 경험하고 기억할 수 있는 공간과 동선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 열두 개의 서로 다른 강의실이 아니라 하나의 이름으로 기억되는 거리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앵커는 업종을 가리지 않는다

시라큐스가 보여준 것은 한 대학의 성공담만이 아니다. 담장을 열고, 동선을 놓고, 사람이 다시 찾아올 이유를 만드는 원리는 대학이라는 업종에 갇혀 있지 않다. 여러 분야의 사례를 살펴보면 업종은 달라도 도시의 앵커가 되는 방식에는 놀라울 만큼 공통된 문법이 있다.


미술관은 이 문법을 일찍 증명한 분야다. 쇠락한 항구 도시 빌바오는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구겐하임미술관과 문화 콘텐츠를 결합해 연간 100만 명 이상이 찾는 도시가 됐다. 건축 자체가 도시를 찾아올 이유가 된 경우다.

런던의 테이트 모던은 발전소를 고쳐 쓴 거대한 공간과 상설전시 무료 개방을 통해 미술관을 시민의 일상 속으로 끌어들였다. 시애틀의 윙 루크 뮤지엄은 또 다른 길을 택했다. 유명 건축가나 거대한 예산보다 지역 주민이 전시 기획에 참여해 자기 동네의 역사와 이야기를 직접 채워 넣는 방식을 선택했다.


접근은 서로 달랐지만 결과는 같았다. 미술관이 전시물을 보관하는 시설을 넘어 외부인이 굳이 찾아오고 지역 주민이 반복해서 방문하는 목적지가 된 것이다.


기업과 상점도 같은 선택 앞에 선다. 파타고니아는 서핑 도시 벤추라에 본사를 두고 지역의 환경문화와 긴밀한 관계를 쌓아 왔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세일즈포스 타워와 연결된 트랜짓센터 옥상에 약 5.4 에이커 규모의 공원이 조성되어 시민 누구나 이용하는 도심 공간이 됐다. 업무공간은 닫혀 있어도 기업을 상징하는 장소와 부대공간은 도시에 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동네 빵집 성심당은 정반대의 원칙으로 같은 목적지에 도달했다. 전국으로 확장하는 대신 대전에서만 팔겠다는 고집이 역설적으로 대전을 찾아야 할 이유가 되었다. 지역성을 포기하지 않은 것이 성심당을 대전의 상징이자 도시의 앵커로 만들었다.


이 사례들을 관통하는 교훈은 단순하다. 도시의 앵커가 되는 데는 정해진 규모도, 정해진 업종도 없다. 미술관이든 기업 본사든 동네 빵집이든,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이유를 분명히 하고 사람이 오가는 동선을 만들며, 담장 대신 열린 공간을 내주고 다시 찾아올 콘텐츠와 관계를 쌓아가면 그곳은 앵커가 된다. 대학이라고 다르지 않다.


3년 전 무영당에서 느꼈던 설렘은 이제 구체적인 결실로 이어지고 있었다. 다음 3년의 과제도 분명해 보인다. 동성로 전체가 캠퍼스가 되고, 연합캠퍼스가 다시 동성로를 찾게 만드는 목적지가 되는 것이다.


열두 대학이 각자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하나의 이름으로 기억되는 거리와 공간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 동성로 연합캠퍼스가 대학 협력사업을 넘어, 동성로를 되살리는 도시의 앵커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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