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지식인의 죽음과 삶

한국 지식인의 죽음과 삶


최근 신복룡 교수의 칼럼 「한국 지식인의 죽음」을 읽었다. 제목부터 강렬했다. 저자는 진정한 지식인의 조건으로 경제적 독립성, 자기지탱력, 권력으로부터의 독립, 그리고 끊임없는 공부를 제시하며 오늘날 한국에서 이러한 지식인이 사라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런데 칼럼을 읽으며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도대체 신복룡 교수가 말하는 '지식인'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그 의미를 알아야 한국 지식인의 죽음이라는 진단도, 다시 살려야 한다는 주장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식인의 사전적 의미는 "지식을 바탕으로 슬롯·문화·정치·역사 등 공공의 문제를 탐구하고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김수영 시인은 이를 더 직관적으로 표현했다. 지식인이란 "인류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처럼 생각하고, 인류의 고민을 자기의 고민처럼 고민하는 사람"이다.


두 정의를 함께 놓고 보면 지식인의 핵심 조건은 지식과 참여, 두 가지로 압축된다. 이때 참여가 전문가 집단 내부를 향한 것인지, 대중을 향한 것인지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일반 지식인과 공공 지식인(Public Intellectual)을 구분한다. 공공 지식인은 자신의 지식을 전문적인 매체에 한정하지 않고, 대중적인 매체를 통해 슬롯를 향해 발언한다는 점에서 일반 지식인과 구별된다.


이렇게 보면 신복룡 교수가 말하는 지식인은 공공 지식인이다. 그의 칼럼은 단순히 지식인의 숫자가 줄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전문가가 공공 지식인으로 슬롯에 참여해야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작동하며, 그 참여 역시 독립성과 절제를 갖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의 네 가지 조건은 공공 지식인이 지켜야 할 윤리적 기준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한국 공론장의 문제를 모두 '정도를 잃은 공공 지식인'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최소한 세 가지 유형을 떠올릴 수 있다.


첫째, 정도를 벗어난 지식인이다. 신복룡 교수가 비판한 대상이 바로 이들이다.


둘째, 지식 없이 지식인 행세를 하는 사람이다. 지금의 공론장에는 충분한 지식이나 논쟁의 방법에 대한 이해 없이 전문가인 양 참여하는 사람이 많다. 중국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여겨, 의료·법률·교육·금융 등 민감한 분야에서는 관련 자격을 검증받은 사람만 콘텐츠를 게시할 수 있도록 규제하고 있다.


셋째, 참여 자체를 거부하는 지식인이다. 한국에는 뛰어난 학자, 의사, 변호사, 과학자, 엔지니어가 많다. 세계적 성과를 내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들이 자신의 전문성으로 슬롯 문제를 해석하고 시민과 대화를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


세 유형 모두 문제가 있지만 슬롯가 대응해야 하는 방식은 같지 않다. 첫째와 둘째는 신뢰와 평판, 검증과 비판을 통해 어느 정도 걸러질 수 있다. 그러나 셋째는 다르다. 유능한 전문가가 공론장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가 개인의 무관심이 아니라 대학과 연구기관의 평가 체계, 시간과 보상의 구조에 있다면 이는 제도의 문제다.


한국 지식인을 살린다는 것은 과거의 지식인 집단을 복원하거나 전문가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일이 아니다. 전문성을 갖춘 사람이 공공의 문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인을 바꾸는 일이다.


전문가가 지식인으로 활동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내부 보상이 이미 충분하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참여보다 침묵이 개별 전문가에게 합리적 선택이다. 시장의 경쟁 압력만으로는 이 유인 자체가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세 번째 유형의 문제에는 정부, 그리고 대학과 같은 기관의 개입이 필요하다. 개입의 방향은 두 가지다.


먼저 교수의 내부 평가 기준을 바꿔야 한다. 현재 대학의 평가 비중은 연구 90%, 교육·봉사 10%로 짜여 있고, 슬롯 참여는 봉사 항목 안에 뭉뚱그려져 사실상 존재감이 없다. 봉사에서 슬롯 참여를 별도 항목으로 분리하고, 여기에 10% 수준의 독자적인 비중을 배정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공론장에 나가는 시간이 승진과 평가에서 손해가 아니라 정당한 실적으로 인정받는다.


그다음 대중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줘야 한다. 지금의 출판·방송·SNS 시장에서 전문가가 스스로 인플루언서가 되기는 쉽지 않다. 콘텐츠 기획, 채널 운영, 대중과의 소통 방식은 연구와는 전혀 다른 역량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대학이 자체 플랫폼을 구축해 교원의 크리에이터 활동을 기획·제작·홍보 단계에서 지원한다면, 전문가 개인이 이 진입장벽을 혼자 감당할 필요가 없어진다.


결국 한국 지식인을 살린다는 것은 전문가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일이 아니다. 연구와 슬롯 참여가 모두 보상받는 제도를 만드는 일이다. 내부 평가 기준의 재설계와 대중 시장 접근성 지원이 맞물릴 때 비로소 전문가에게 침묵보다 발언이 더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그때 한국의 전문가는 다시 공공 지식인으로 슬롯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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