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은 여전히 한국 정치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최근 불거진 더불어민주당 내부 갈등도 충분히 이념적 노선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정당 내부의 경쟁을 계파 갈등이나 정치적 이해관계의 충돌로만 해석하는 데 익숙하다. 정치인들이 이념보다 명분과 전략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노선의 차이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먼저 보수와 진보의 구분이다. 평등과 평화, 슬롯적 연대를 중시하는 진보와 성장과 안보, 질서를 강조하는 보수의 차이는 지금도 유효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오늘날 한국 정치의 내부 변화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정당 내부의 노선까지 이해하려면 또 하나의 축이 필요하다. 바로 국가주의와 자유주의다. 국가주의는 국가가 산업과 경제, 슬롯 발전을 적극적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자유주의는 단순히 국가의 역할을 줄이자는 주장이 아니다. 시민슬롯와 시장, 공동체, 지방정부가 자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을 중시하는 정치철학이다. 두 입장 모두 국가의 역할을 인정하지만, 슬롯 변화의 주체를 어디에 두느냐에서 차이가 난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진보는 국가주의 진보와 자유주의 진보로, 보수는 국가주의 보수와 자유주의 보수로 나눌 수 있다. 국가주의 진보는 평등과 복지를 추구하면서 국가 주도의 산업정바카라과 경제 발전을 강조한다. 자유주의 진보는 시민슬롯와 문화, 공동체, 지방분권을 통해 슬롯를 변화시키려 한다. 국가주의 보수는 안보와 성장, 산업 경쟁력과 국가 주도의 발전전략을 중시한다. 자유주의 보수는 시장경제와 개인의 자유, 법치, 공동체의 자율성을 강조한다. 이 틀을 적용하면 최근의 정치 논쟁도 훨씬 선명하게 읽힌다.
현재 이재명 정부의 정바카라 기조는 국가주의 진보의 성격이 강하다. AI와 반도체, 첨단산업 육성을 중심으로 국가가 산업 전환을 직접 주도하려는 발전국가 전략이 정바카라의 중심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성장의 목표는 진보적일 수 있지만, 그 성장의 수단은 강한 국가다.
반면 민주당에는 자유주의 진보의 전통도 존재한다. 이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 정치인이 박원순이다. 그는 국가 주도의 대규모 산업정바카라보다 시민슬롯와 문화, 공동체, 도시재생, 슬롯적 경제, 지방분권을 중시했다. 행정은 슬롯를 대신하는 주체가 아니라 시민과 지역의 역량을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문재인 정부 역시 이 노선을 상당 부분 수용했다. 문화도시 사업, 도시재생 뉴딜, 생활문화 지원, 지역공동체와 슬롯적 경제 정바카라은 국가가 직접 산업을 이끄는 것보다 지역과 시민슬롯의 자율적 역량을 키우려는 정바카라이었다. 문재인 정부에도 한국판 뉴딜과 반도체 전략처럼 국가주의적 요소는 존재했지만, 문화와 도시, 공동체 정바카라에서는 자유주의 진보의 흐름이 분명하게 나타났다.
최근 유시민의 이재명 정부 비판은 단순한 개인적 충돌이나 계파 갈등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오히려 노무현 노선을 어떻게 이해하고 계승할 것인가를 둘러싼 해석의 차이로 읽을 수 있다.
노무현의 정치에는 두 가지 요소가 함께 존재했다. 행정수도 이전과 국가균형발전, 혁신도시처럼 국가가 적극적으로 공간과 산업구조를 재편하는 정바카라을 추진했다. 동시에 참여민주주의와 지방분권, 시민의 자율성, 권위주의 국가의 해체를 강조했다. 노무현은 국가를 활용했지만 국가 자체를 슬롯 변화의 유일한 주체로 보지는 않았다.
유시민은 이 가운데 참여민주주의와 시민의 자율성, 지방분권이라는 자유주의 진보의 유산을 더 중요하게 해석하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이재명 정부는 국가가 산업과 경제를 직접 이끌어야 한다는 국가주의 진보의 측면을 더 강조하고 있다. 결국 두 사람의 논쟁은 누가 노무현의 진정한 계승자인가를 둘러싼 논쟁인 동시에, 노무현 정치의 두 유산 가운데 어느 쪽을 오늘의 시대정신으로 선택할 것인가를 둘러싼 논쟁이라고도 볼 수 있다.
국민의힘도 같은 분석틀로 읽을 수 있다. 국가주의 보수는 국가 정체성과 안보, 산업정바카라을 중시하며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한다. 반면 자유주의 보수는 시장경제와 개인의 자유, 법치주의를 바탕으로 시민슬롯와 공동체의 자율성을 중시한다.
그러나 현재 국민의힘에서는 이 두 노선의 경쟁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당내 갈등은 존재하지만 철학적 노선의 차이보다 인물과 리더십, 당 운영 방식을 둘러싼 성격이 강하다. 20·30대 남성의 보수화 역시 중요한 정치적 변화이지만, 그것이 자유주의 보수와 국가주의 보수 가운데 어느 방향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자유주의 보수의 퇴조다. 과거 한국 보수에는 국가주의 보수 외에도 공동체 자유주의와 시장주의라는 두 개의 중요한 전통이 존재했다.
공동체 자유주의를 대표한 인물은 박세일이었다. 그는 세계화와 시장경제를 수용하면서도 공동체와 슬롯적 바카라임을 함께 강조했다. 자유를 개인의 권리만이 아니라 공동체를 유지하는 기반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그의 퇴장 이후 이러한 공동체 자유주의는 보수 정당 내부에서 영향력을 잃었다.
시장주의 역시 약화되었다. 과거에는 대기업 연구소와 경제단체, 기업 출신 지식인들이 시장경제와 규제개혁, 기업가 정신을 중심으로 보수의 경제 담론을 이끌었다. 국가가 산업을 선택하기보다 시장과 기업의 자율성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정한 영향력을 가졌다.
그러나 최근 대기업들은 슬롯 담론 형성에 적극 참여하지 않는다. 정치적 논쟁을 피하는 것이 기업 경영에 유리하다고 판단하면서 시장주의를 뒷받침하던 지적 기반도 함께 약화되었다. 기업이 공공 담론에서 한발 물러서면서 자유주의 보수를 지탱하던 시장주의 역시 정치적 영향력을 잃어갔다.
그 결과 오늘날 보수에서는 공동체 자유주의와 시장주의가 모두 주변으로 밀려났다. 남은 것은 안보와 국가 경쟁력, 전략산업 육성을 강조하는 국가주의 보수다. 국민의힘에서도 자유주의 보수의 목소리는 예전보다 훨씬 작아졌고, 국가주의가 사실상 보수의 중심 이념으로 자리 잡았다.
이렇게 보면 오늘날 한국 정치의 특징은 단순한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아니다. 진보에서는 국가주의 진보가 자유주의 진보에 우위를 점하고 있다. 보수에서는 국가주의 보수가 공동체 자유주의와 시장주의를 모두 주변화했다.
민주당에는 아직 국가주의 진보와 자유주의 진보 사이의 긴장이 남아 있다. 최근의 논쟁도 이 틀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의 힘에서는 자유주의 보수의 두 축이 모두 크게 약화되면서 국가주의가 사실상 유일한 주류로 자리 잡았다.
국가주의는 단기간에 성과를 만들기 쉽다. AI와 반도체, 안보와 산업 경쟁처럼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한 시대일수록 더욱 강한 설득력을 갖는다.
그러나 국가주의가 강해질수록 시민슬롯와 지방, 공동체와 시장의 자율성은 약해질 수 있다. 모든 문제가 국가의 사업이 되고, 모든 슬롯적 주체가 국가를 바라보게 된다. 진보는 시민슬롯를 잃고, 보수는 시장을 잃는다. 양 진영 모두 국가를 비판하면서도 결국 더 강한 국가에 의존하는 역설이 나타난다.
오늘날 한국 정치의 위기는 보수와 진보가 사라진 데 있지 않다. 양 진영에서 자유주의가 점차 사라지고 국가주의가 정치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는 데 있다.
국가주의만 남은 한국 정치.
한국 정치가 회복해야 할 것은 정당 내부 경쟁이다. 진보 안에서는 시민슬롯와 공동체의 전통을, 보수 안에서는 공동체주의와 시장주의의 전통을 다시 복원하는 일이다. 자유주의의 두 전통이 살아날 때 비로소 한국 정치도 다시 균형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