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체제의 민주성

1987년 체제의 민주성


요즘 정치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한 가지를 새삼 실감한다. 한국에서는 절대 권력이 형성되기 어렵다. 정치는 늘 혼란스럽고 갈등이 끊이지 않지만, 어느 한 세력이 권력을 장기간 독점하는 일도 쉽지 않다.


그것은 민주주의에는 오히려 좋은 일이다. 서양 민주주의 철학이 오랫동안 고민한 문제도 바로 이것이었다. 민주주의의 목적은 위대한 지도자를 만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 권력을 잡았을 때 그것이 절대 권력이 되지 못하도록 막는 데 있다. 샤를 드 몽테스키외는 이를 위해 권력분립과 견제와 균형(checks and balances)을 제안했고, 알렉시 드 토크빌은 미국의 시민슬롯와 자발적 결사체에서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힘을 찾았다.


한국 사례가 흥미로운 것은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원리가 다르다는 점이다. 시민슬롯가 강해서도 아니고, 권력분립이 특히 강해서도 아니다. 민주화 이후 한국에서는 지역주의와 대통령 단임제가 절대 권력을 견제하는 장치로 작동했다. 영호남을 중심으로 한 정치 경쟁은 어느 한 세력이 전국을 장기적으로 장악하기 어렵게 만들었고, 단임제는 대통령이 임기 초반부터 차기 권력과 경쟁하도록 만들었다. 여권 내부의 분열은 정치적 비효율처럼 보이지만, 권력 집중을 막는 민주주의의 안전장치이기도 했다.


많은 사람이 1987년 체제를 낡은 체제라고 비판하며 개헌을 주장한다. 물론 지역주의와 단임제가 정치적 비효율을 낳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시민슬롯가 충분히 성숙하지 못하고, 정부 내부의 견제와 균형 역시 강하지 않은 한국에서 단임제마저 약화된다면 절대 권력을 견제할 장치는 무엇이 될 것인가.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성급한 개헌이 아니라 1987년 체제가 가진 민주적 기능을 먼저 이해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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