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감리교 신도이신 부모님을 모시고 천연동 아펜젤러길을 걸었다. 독립문에서 감리교신학대학교를 거쳐 영천시장에 이르는 길로, 19세기 말 한국 선교를 시작한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 목사를 기리는 명예도로이다. 감리교신학대학교뿐만 아니라 1910년 창립된 석교교회 등 감리교 유적이 많다.
오늘 포스팅의 첫 번째 사진은 석교교회 정원에 있는 무궁화나무다.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주인에 따르면 수령이 100년이 넘는 나무라고 한다. 이제는 수명을 다한 듯 한쪽 끝에만 꽃이 피어 있다. 무궁화는 손이 많이 가는 나무라고 한다. 그래도 우리나라 국화인 만큼 벚꽃만큼은 아니더라도 지금보다 더 많이 심어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사진은 그 무궁화나무 건너편에서 만난 또 다른 무궁화다. 배경은 화려하지 않지만 내가 지금까지 본 무궁화 가운데 가장 키가 큰 나무였다.
천연동은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다. 길 건너 독립공원에서 출발해 아펜젤러길을 걷고 영천시장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추천한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영천시장이다. 외국인 관광객이 많지 않아도 동네 주민들로 활기가 넘치는 시장이다. 최근에는 영천시장 골목길에도 새로운 콘텐츠가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 지역의 앵커는 이제 9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독립서점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다. 서울의 풍경과 시간을 담은 동명의 그림바카라을 출간한 일러스트레이터 부부가 운영하는 한옥 서점이다.
주변에는 커피 로스터리, 제로웨이스트숍, 베이커리도 보인다. 골목상권의 기본 세트는 이미 갖춘 셈이다. F&B도 오래된 노포와 청년 감성의 가게가 자연스럽게 공존한다.
여기에 감리교 유적과 독립공원 같은 역사·문화 자원까지 더하면 천연동과 영천시장은 충분히 잠재력 있는 골목상권 후보지다.
사람들은 계속 '넥스트 마용성'을 찾는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주로 개발 호재와 교통망에 주목하지만, 나는 콘텐츠의 관점에서 본다. 그런 점에서 서대문구가 가장 유력한 후보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서대문구는 이제 4대 생활권이 동시에 성장하고 있다.
첫째는 신촌-북아현동-아현동 생활권이다. 대학과 청년 문화, 그리고 새로운 주거지가 결합하며 젊은 도시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둘째는 연희동 생활권이다.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와 로컬 크리에이터가 모인 서울 최고의 골목상권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다.
셋째는 천연동-무악재-홍제동 생활권이다. 감리교 유적과 독립공원, 영천시장, 새로운 로컬 브랜드가 결합하며 역사문화형 골목상권으로 발전하고 있다.
넷째는 남가좌동-홍은동 생활권이다. 명지대학교와 홍제천을 중심으로 카페와 베이커리, 로컬 콘텐츠가 꾸준히 늘어나며 새로운 생활권을 형성하고 있다.
신촌-북아현동-아현동, 연희동, 천연동-무악재-홍제동, 남가좌동-홍은동. 이 네 개의 생활권이 함께 성장한다면 서대문구는 서울에서 가장 콘텐츠가 풍부한 '동네 도시' 가운데 하나가 될 가능성이 크다. 안산과 홍제천을 축으로 서로 연결되는 다중심 구조가 서대문구의 가장 큰 경쟁력이다. 넥스트 마용성은 재개발이 아니라 콘텐츠가 만드는 도시에서 나올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