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단지는 동네가 될 수 있는가
부산 기장의 오시리아를 걸으며 궁금해졌다. 오시리아는 관광단지인가, 동네인가. 공식적으로는 관광단지다. 아난티 코브와 빌라쥬, 롯데월드, 롯데아웃렛, 이케아 등 국내 최고 수준의 관광시설이 모여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특정 목적지를 방문한 뒤 다시 떠난다. 아난티 코브에서 숙박한 방문자 중 몇 명이나 걸어서 롯데월드를 방문할까? 오시리아는 이처럼 전형적인 목적지(destination)형 관광단지다.
그런데 이곳을 천천히 걸으면 다른 가능성을 볼 수 있다. 오시리아가 한국의 다른 관광단지와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재개발하지 않았다
많은 관광단지는 하나의 부지를 통째로 개발한다. 기존 마을을 철거하고 호텔과 리조트, 쇼핑시설을 계획적으로 배치한다. 오시리아는 그렇지 않았다. 해동용궁사, 국립수산과학원, 국립수산과학관이 위치한 동암마을은 그대로 두고 그 둘레를 관광단지로 개발했다. 공식적으로 분리되어 있지만 동암마을은 오시리아 관광단지에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
즉, 오시리아는 하나의 거대한 리조트가 아니라 기존 도시 자산과 새로운 관광시설을 연결한 관광단지다. 바로 이 점이 오시리아가 관광단지를 넘어 관광 동네로 진화할 수 있는 가장 큰 자산이다.
오시리아에는 도시 자산이 있다
관광단지의 경쟁력이 도시 자산의 다양성에서 나온다면, 오시리아는 이미 성공한 단지다. 동암마을이라는 자연마을이 있고, 천년고찰 해동용궁사가 있으며, 국가 연구기관인 국립수산과학원이 있다. 여기에 세계적 리조트인 아난티와 대형 쇼핑·레저시설이 결합되어 있다. 이처럼 서로 다른 기능과 역사를 가진 공간이 한 지역 안에 공존하는 관광단지는 국내에서도 드물다. 문제는 이 도시 자산들이 서로 연결되지 못한 채 각각의 목적지로만 기능한다는 점이다.
허브가 없다
그 이유는 단지 지역 전체를 연결하는 다운타운이 없기 때문이다. 아난티는 숙박시설이고, 롯데월드는 테마파크이며, 롯데아웃렛은 쇼핑시설이다. 해동용궁사는 사찰이고, 국립수산과학원은 연구기관이다. 모두 훌륭한 목적지이지만 사람들의 일상을 연결하는 중심지는 아니다. 관광객은 아난티에서 숙박하고, 롯데월드에서 놀고, 용궁사를 둘러본 뒤 다시 떠난다. 목적지는 있지만 그 목적지들을 이어주는 생활의 허브는 없다.
단지 지역 가운데 위치한 동암마을 역시 아직은 허브라고 보기 어렵다. 창고, 수산시설, 상업시설, 주택이 띄엄띄엄 배치되어 있어 공간의 밀도가 낮다. 상권과 거리 문화도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허브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 역시 동암마을이다.
동암마을이라는 베이스캠프
동암마을은 관광단지가 들어서기 전부터 존재했던 자연마을이다. 새롭게 만든 리조트가 아니라 시간을 축적한 장소다. 새로운 건축주와 로컬 창업자가 진입해 기존 건물과 빈 공간을 로컬 식당과 카페, 해양문화공간, 크리에이터 스튜디오로 전환한다면 어촌의 정체성을 유지한 채 사람들이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오시리아의 베이스캠프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각 관광시설은 그 베이스캠프에서 연결되는 목적지가 된다.
허브 앤 스포크 관광단지
동암마을이 베이스캠프가 되고 관광시설이 동암마을에 연결된다면 오시리아는 허브 앤 스포크(Hub & Spoke) 구조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허브는 동암마을이고, 스포크는 아난티, 롯데월드, 롯데아웃렛, 해동용궁사, 국립수산과학원, 국립수산과학관이다.
국립수산과학원 역시 내부 시설의 일부를 외부에 공개하면 단순한 연구기관으로 머물 것이 아니라 해양 창업, 블루푸드, 해양문화를 동암마을에 이식한다면 지역의 진정한 앵커가 될 수 있다.
오시리아가 동암마을을 중심으로 허브 앤 스포크 도시가 된다면 관광객은 시설을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동네를 경험하게 된다. 하나의 관광시설만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장소를 걸어서 연결하며 하루를 보내는 관광이 가능해진다.
관광단지에서 관광 도시로
오시리아는 이미 훌륭한 관광단지다. 더 큰 가능성은 주민과 관광객이 함께 일상을 즐기는 도시가 되는 것이다. 기존 자연마을, 천년고찰, 국가 연구기관, 리조트와 쇼핑시설이 하나의 생활 동선 안에서 연결되는 동네를 말한다.
관광단지는 목적지를 만든다. 동네는 관계를 만든다. 오시리아의 미래는 더 많은 관광시설을 짓는 데 있지 않다. 이미 존재하는 도시 자산을 하나의 동네로 연결하는 데 있다. 결국 오시리아의 경쟁력은 관광시설의 규모가 아니라 동네성(neighborhoodness)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