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비가 싸서 임금이 낮다는 주장에 대해서

생활비가 싸서 임금이 낮다는 주장에 대해서


한국 기업이 세계 최고 수준의 개발자를 확보하려면 글로벌 기업과의 임금 경쟁을 피하기 어렵다. 최근 삼성전자의 성과급 논쟁도 단순한 노사 갈등이 아니라 글로벌 인재 경쟁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 모임에서 이 이야기를 하자 한 친구가 질문했다. "서울은 생활비가 싸니까 한국 기업이 개발자에게 실리콘밸리 수준의 임금을 줄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순간 당황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같은 이유를 든다.


금방 답하지 못해 집해 돌아와 정리했다. 나의 결론은 경제학적으로 보면 생활비가 낮다는 사실만으로 기업이 낮은 임금을 지급한다고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논점 1: 생활비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기업이 임금을 결정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은 생활비가 아니다. 필요한 인재를 확보하려면 경쟁사보다 얼마를 제시해야 하는가이다. 그 기준선은 시장 임금률이며, 시장 임금률은 결국 노동의 수요와 공급이 결정한다. 생활비는 기업의 임금 결정식에 직접 들어가지 않는다.


실리콘밸리를 보면 인과관계는 분명하다. 구글, 메타, 오픈AI 같은 빅테크 기업들이 집적하면서 고임금 일자리가 먼저 생겼고, 고소득 인구가 몰리면서 집값과 물가가 상승했다. 생활비가 비싸서 임금이 높아진 것이 아니라, 임금이 높아지면서 생활비가 함께 올라간 것이다.


서울도 비슷한 구조다. 고임금 노동자에 대한 기업 수요가 실리콘밸리만큼 강하지 않기 때문에 임금 수준이 낮고, 그 결과 주거비와 서비스 가격도 상대적으로 낮게 형성된다.


논점 2: 장기적으로도 생활비가 임금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생활비가 높아지고 그 수준이 지속되면 기업이 장기적으로 임금을 올릴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여러 대응 방식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기업은 근무지를 이전하거나, 원격근무를 확대하거나, 해외 인재를 채용하는 등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생활비가 높아졌다고 해서 기업이 시장 임금보다 높은 임금을 반드시 지급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노동자 역시 생활비만 보고 도시를 선택하지 않는다. 실리콘밸리나 뉴욕처럼 일자리, 문화, 교육, 네트워크 등 다양한 도시 어메니티(amenities)를 제공하는 곳에서는 높은 생활비를 감수하고서도 사람들이 계속 유입된다. 즉 생활비 상승이 곧바로 노동 공급 감소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생활비는 노동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변수 가운데 하나일 뿐이며, 임금을 독립적으로 결정하는 변수는 아니다. 서울의 개발자 임금이 실리콘밸리보다 낮은 이유는 생활비가 싸기 때문이 아니라, 고숙련 개발자에 대한 기업 수요와 산업 집적의 규모가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임금을 결정하는 것은 생활비가 아니라 노동시장이다. 실리콘밸리에는 세계 최대 테크 기업들이 집적해 있고 고숙련 개발자에 대한 수요가 공급을 초과한다. 서울은 기업 집적과 개발자 수요의 규모가 그만큼 크지 않다. 임금은 노동 이동이 완전히 자유롭지 않은 상황에서 이러한 노동시장 여건을 반영한 시장 가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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