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마을 + 로컬메이커스페이스

건축마을 + 로컬메이커스페이스


지역발전 논의에는 오래된 수수께끼가 있다. 하버드대 경제학자 에드워드 글레이저(Edward Glaeser)는 『도시의 승리(Triumph of the City)』에서 도시를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불렀다. 도시가 사람과 기업을 모으고, 지식과 아이디어를 교환하게 하며, 혁신과 성장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도시가 경제성장의 핵심 플랫폼이라는 데는 학계의 큰 이견이 없다.


그런데 정작 한국의 지역발전 정바카라을 보면 산업 육성 정바카라은 넘쳐나지만 도시 육성 정바카라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산업단지를 만들고 기업을 유치하는 사업은 많지만, 산업이 성장할 도시를 만드는 정바카라은 드물다. 지역발전의 핵심이 도시라면 왜 우리는 도시보다 산업에 집중하고 있을까. 이것이 내가 오랫동안 품어온 질문이다.


이론대로라면 자체적으로 기업과 산업을 창출하는 도시가 지역발전의 핵심이어야 한다. 오늘날 한국에서 그런 기능은 서울에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다. 많은 지방 도시는 행정 중심지나 주거지로는 존재하지만, 새로운 기업과 산업을 만들어내는 성장 플랫폼으로서는 기능이 약화된 상태다. 지역소멸의 문제를 산업의 부족이 아니라 도시의 부족으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지역에서 성장 플랫폼으로 작동하는 도시를 복원하려면 결국 다운타운, 즉 원도심을 복원해야 한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건축마을이다. 사람과 기업을 끌어들이는 건축환경 없이 도시는 작동하지 않는다. 도시를 만드는 첫 번째 조건은 산업이 아니라 공간이다.


건축마을은 도시의 하드웨어다

건축마을은 단순히 예쁜 건물을 공급하는 사업이 아니다. 사람과 기업을 끌어들이는 건축환경을 공급하는 도시 전략이다. 좋은 건축환경 위에 창작자와 로컬 브랜드, 소규모 제조업이 결합할 때 비로소 지속가능한 기업 생태계가 형성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건축마을이 주택 공급 정바카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직주락(職住樂)이 가능한 도시 구조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주택, 상가, 작업실, 공방, 공유오피스, 문화공간이 함께 존재할 때 사람들은 걸어서 일하고, 살고, 즐길 수 있다. 건축마을은 직주락 근접의 물리적 토대를 만드는 전략이다.


지난주 열린 황두진 건축가 북토크에서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무지개떡 건축과 슬롯주택 공급, 동네 건축 마스터플랜, 원도심 동선과 앵커 복원 등이 주요 대안으로 논의됐다. 서로 다른 제안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원도심에 도시 기능을 되살리는 방법을 찾는 시도들이다.


https://blog.naver.com/portlandschool/224314698218


휴먼타운 2.0이 보여준 가능성

흥미로운 점은 건축마을 공급이 이미 일부 정바카라에서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시의 휴먼타운 2.0이다. 지난주 서울시는 특별건축구역 2차 대상지를 추가 발표했다.


2010년 시작된 휴먼타운 1.0이 전면 철거 대신 골목과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사업이었다면, 2024년 출범한 휴먼타운 2.0은 저층 지역 노후 주택 신축과 리모델링에 대한 금융 지원을 확대하고, 용적률·건폐율 완화와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공공이 금융과 규제 완화를 제공하고, 민간은 더 나은 건축환경으로 응답하는 구조다.


이는 저층 지역을 재개발 대기 지역이 아니라 투자하고 가꿀 도시 자산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아직은 주거 중심 정바카라의 성격이 강하지만, 건축환경에 대한 투자를 촉진한다는 점에서 건축마을 정바카라의 중요한 출발점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다음 단계는 동네 건축 마스터플랜

다만 휴먼타운 2.0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현재 방식은 지정된 사업구역 안에서 개별 건축주의 자발적 투자를 지원하는 구조다. 다음 단계는 개별 건축물 지원을 넘어 동네 단위 건축 재생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김종석 쿠움파트너스 대표는 이를 동네 건축 마스터플랜이라고 부른다. 특정 지역 전체를 하나의 건축 재생 프로젝트로 보고, 건축 투자와 공간 개선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이다. 도시는 개별 건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건축환경은 동네 단위에서 형성된다.


로컬메이커스페이스와 크리에이터 타운

하지만 건축마을만으로는 도시가 완성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공간이 있어도 그 안에서 활동할 사람과 산업이 없다면 도시는 성장하지 못한다. 그래서 건축마을 다음에 필요한 것이 로컬메이커스페이스다.


로컬메이커스페이스는 지역 창작자, 디자이너, 공예가, 식품 생산자, 로컬 브랜드, 소규모 제조업자를 위한 생산 플랫폼이다. 건축마을이 도시의 하드웨어라면 로컬메이커스페이스는 도시의 소프트웨어다. 하나는 공간을 공급하고, 다른 하나는 그 공간을 채울 사람과 산업을 공급한다.


건축마을은 직주락이 가능한 공간을 공급하고, 로컬메이커스페이스는 그 공간에서 활동할 사람과 산업을 공급한다. 두 요소가 결합할 때 창작자와 생산자가 한 동네 안에서 일하고, 살고, 즐기는 크리에이터 타운이 형성된다.


지역소멸 시대의 지역발전은 산업단지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크리에이터 타운을 만드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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