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제기
경주 황남동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때 소비하는 것은 세 가지다. 커피, 공간, 그리고 동네다. 필자가 경험에 근거해 추정한 가치 비중은 각각 20%, 30%, 50%다. 커피는 품질로, 공간은 분위기로 평가받지만, 동네는 신라 고분이 창밖에 보이는 황남동이라는 사실 자체로 평가받는다. 소비자가 지불하는 가격의 절반은 커피가 아니라 장소에 대한 접근권이다.
이 관찰이 소상공인 정바카라에 던지는 질문은 직접적이다. 매출의 원천이 상품 20%, 공간 30%, 동네 50%라면, 소상공인을 지원하는 방식의 비중도 이에 상응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현재 정부 지원은 어디에 집중되어 있는가. 그리고 그 지원의 방향을 누가 결정하는가.
가치 구성의 일반성
황남동 카페의 20/30/50 구성이 필자의 개인 경험에 그치는가, 아니면 더 넓은 소비 현실을 반영하는가.
소비자가 카페에서 구매하는 것은 단일 상품이 아니라 경험 묶음(experience bundle)이다. Pine & Gilmore는 경험경제(experience economy) 개념을 통해 소비자가 상품이나 서비스보다 경험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는 것을 체계화했다.¹ Bitner는 서비스스케이프(servicescape) 개념으로 물리적 환경 — 조명, 음악, 동선, 온도 — 이 소비자의 지불의향에 독립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실증했다.²
장소 층위의 근거는 더 강하다. 송규봉은 자영업자들에게 경영이 어려워진 이유를 물으면 첫 손에 꼽는 것이 상권쇠퇴라는 사실을 확인하며, 매출의 핵심 결정 요인은 사업자가 아니라 상권임을 강조한다. ³ 김성순은 시간이 지나면 가게 이름보다 동네 이름이 먼저 떠오르고, 그 순간 상권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가 된다고 말한다.⁴
한국 소비 현장에서도 이 패턴은 뚜렷하다. 성수동, 익선동, 한남동, 황남동 — 소비자들은 가게를 목적지로 삼기 전에 동네를 목적지로 삼는다. 최원석은 소비자가 카페를 찾는 것이 단순히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며, 오프라인 공간이 브랜드 경험의 핵심이 된다고 주장한다.⁵ 황남동 카페 가치의 50%는 필자의 추정이지만, 그 방향성은 문헌과 현장이 함께 지지한다.
정부 소상공인 지원의 실제 구성
그렇다면 정부의 소상공인 지원은 소비자 소비 형태를 반영하는가? 2026년 소상공인 지원 예산은 총 5조 4,000억 원이다. 이 예산의 성격별 구성이 핵심 문제다.
안정 지원에는 정바카라자금 3조 3,620억 원, 소상공인 경영부담 완화 5,843억 원, 소상공인 재기 지원 3,056억 원, 온누리상품권 지원 약 7,000억 원 등 총 4조 9,519억 원이 포함된다. 정바카라자금은 경영난에 처한 소상공인에게 저금리로 융자를 제공하는 사업이고, 경영부담 완화는 전기·가스요금과 4대 보험료 등 고정비를 지원하는 바우처 사업이며, 재기 지원은 폐업 소상공인의 점포 철거와 재창업을 돕는 사업이다.
반면 성장 지원에는 기업가형 소상공인 육성 1,311억 원, 소상공인 성장 지원 280억 원, 소공인 특화 지원 1,187억 원, 지역상권 활성화 375억 원, 소상공인 디지털 역량강화 1,136억 원, 혁신 소상공인 AI활용 지원(신규) 144억 원 등 총 4,433억 원이다. 성장 지원은 전체 예산의 약 8%에 불과하다.⁶
이 안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기업가형 소상공인 육성 사업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정바카라의 방향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사업은 창업(226억 원)·성장(317억 원)·도약(764억 원)의 세 단계로 구성되며, 단계가 올라갈수록 예산이 커지는 구조다. 전체 예산의 46%가 도약 단계에 집중되어 있다.
창업 단계(226억 원)에서는 신사업창업사관학교를 통해 예비 소상공인에게 교육·멘토링과 사업화 자금(최대 4천만 원)을 패키지로 지원하고, 전국 21개소의 라이콘타운을 운영해 매장 실습·코워킹 등 창업 공간을 제공한다. 성장 단계(317억 원)에서는 강한소상공인(231억 원)과 로컬 크리에이터(86억 원) 사업을 통해 창작자·스타트업과의 협업, 지역자원 기반의 비즈니스 모델 고도화를 지원한다. 두 단계 모두 사업자의 역량과 콘텐츠를 키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도약 단계(764억 원)가 주목할 부분이다. 민간투자 연계 사업화(300억 원)와 민간투자 연계 융자(400억 원), 우리동네펀딩(40억 원) 등 740억 원이 투자 연계 방식으로 운영된다. 민간 투자사가 소상공인을 선별하면 정부가 사업화 자금이나 융자를 매칭하는 구조로, 기업가형 소상공인 육성 예산의 절반 이상이 사실상 투자 생태계 논리로 설계되어 있다.
누가 소상공인 지원 이론을 제공하는가
현재 소상공인 정바카라의 방향은 몇 가지 관점의 영향을 받는다. 각 관점의 배후에는 그것을 제공하는 주체가 있다.
사업자 역량론은 안정 지원과 성장 지원 전반에 깔린 기본 논리다. 특정 예산 항목으로는 강한 소상공인 창업 단계 지원이 두드러진다. 소상공인의 성패는 전략과 운영 능력에 달려 있다는 전제가 컨설팅, 교육, 멘토링 지원 전반을 관통한다. 이 관점의 이론적 근거는 자영업 실전서 계열과 외식업 컨설팅 시장에서 주로 제공된다.
디지털 전환론은 최근 정바카라에서 가장 명시적으로 부각되는 관점이다. 소상공인 디지털 역량강화 예산 1,136억 원이 이를 뒷받침하며, 2026년에는 혁신 소상공인 AI활용 지원 144억 원이 별도 신규 사업으로 신설되었다. 이 관점의 이론을 제공하는 주체는 플랫폼 기업들이다. 소상공인을 플랫폼 생태계의 참여자로 인식하고, 온라인 채널 전환과 AI 도입을 성장의 해법으로 본다.
투자 생태계론은 최근 등장한 흐름으로, 소상공인을 스타트업처럼 투자 대상으로 육성하는 관점이다. 벤처 생태계의 논리와 언어가 골목 상권으로 확장된 결과다. 정부는 이를 위해 민간 투자사가 유망 소상공인을 선별하면 정부가 사업화 자금이나 융자를 매칭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반면 공간과 상권은 이 정바카라 지형에서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인테리어 비용은 일부 사업에서 지출 항목으로 허용되지만, 건축물 자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독립적 지원 사업은 존재하지 않는다.
상권 조성에 해당하는 예산은 지역상권 활성화 375억 원이 사실상 전부다. 디지털 역량강화와 AI활용 지원을 합산한 디지털·AI 관련 예산 1,280억 원의 3분의 1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공간과 상권을 소상공인 지원의 핵심으로 보는 이론적 관점이 정바카라 설계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경험경제와 상권 조성으로의 확장
소비와 여행이 경험으로 전환됨에 따라 소상공인의 성격이 바뀌고 있다. 전통적 소상공인이 상품을 판매하는 사업자였다면, 오늘날 새롭게 부상하는 소상공인은 경험을 설계하는 크리에이터다. 신지혜는 평범한 골목을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오는 목적지로 바꾸는 사람들, 즉 공간을 점이 아니라 장소로 만드는 주체를 플레이어라고 부른다.⁷ 상품이 아니라 장소를 기획하고, 커피가 아니라 황남동을 판다.
상권의 성격도 바꾼다. 상권은 더 이상 유동인구와 접근성으로만 정의되지 않는다. 역사성, 분위기, 커뮤니티, 헤리티지가 상권의 핵심 자산이 된다. 황남동의 신라 고분과 역사적 골목이 소비자를 불러들이는 진짜 자원이다.
이 전환이 소상공인 정바카라에 요청하는 것은 지원 영역의 확장이다. 기존의 안정 지원, 사업자 역량 강화, 디지털 전환, 투자 생태계 지원은 유효하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성장 지원 안에서도 상권을 떠나는 성장이 아닌 상권 내 성장을 지원해야 한다.⁸
확장되어야 할 지원 영역 세 가지
공간 지원이다. 소상공인이 경험을 설계할 수 있는 물리적 환경을 합리적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이다. 임대료 안정화, 건물 개선 지원, 공공 유휴공간의 크리에이터 개방이 여기에 해당한다.
상권 건축 지원이다. 황남동은 신라 고분과 역사적 골목을 자원으로 상권을 조성할 수 있었다. 가능성 있는 다른 지역에서도 정부가 도시재생, 문화재 활용, 골목 환경 개선을 통해 동네의 매력에 투자해야 한다. 현재 지역상권 활성화 예산 375억 원은 이 방향의 출발점이지만, 상권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턱없이 작다.
크리에이터 생태계 지원이다. 상권을 촉발하는 것은 퍼스트무버 크리에이터다. 이들이 새로운 동네에 안착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이 필요하다. 로컬 크리에이터 발굴, 빈 공간 연결, 초기 정착 지원이 여기에 해당한다.
기존 접근과 새로운 접근은 대립하지 않는다. 좋은 상권이 형성되면 크리에이터가 모이고, 크리에이터가 모이면 경험이 풍부해지며, 소비자가 찾아온다. 그때 사업자 역량이 발휘되고, 디지털 채널이 경험을 확산시키며, 투자가 규모를 키운다. 이 순환의 출발점은 상권이다.
소상공인 지원 이론을 누가 제공하는가라는 질문은 정바카라의 방향을 결정한다. 플랫폼 기업이 이론을 제공하면 디지털 전환이 중심이 되고, 벤처 생태계가 이론을 제공하면 투자가 중심이 된다. 경험경제와 도시 연구가 이론을 제공할 때, 비로소 공간·상권·크리에이터 생태계가 정바카라의 중심으로 들어온다. 황남동 카페 매출의 상당 부분은 동네에서 나온다. 그 동네를 만드는 이론이 소상공인 정바카라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
참고문헌
¹ Pine, B. J., & Gilmore, J. H. (1999). The Experience Economy. Harvard Business School Press.
² Bitner, M. J. (1992). Servicescapes: The impact of physical surroundings on customers and employees. Journal of Marketing, 56(2), 57–71.
³ 송규봉 (2020). 《상권은 매출이다》. 북스톤.
⁴ 김성순 (2025). 《서울의 하이스트리트》. 디자인하우스.
⁵ 최원석 (2024). 《결국, 오프라인》. 디자인하우스.
⁸ 모종린 (2025). 소상공인 지원 예산의 의미.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크리에이터 소사이어티》.
⁷ 신지혜 (2026). 《핫플레이스를 만드는 플레이어들》. 와이즈맵.
⁸ 모종린 (2017). 《골목길 자본론》. 다산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