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의 나라, PD의 나라

장인의 나라, PD의 나라


최근 중앙일보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제목은 「재능 나오는 일본, 예능 나오는 한국」.


일본 야구의 전설 이치로는 은퇴 후 아마추어 팀 구단주로 고교 야구팀을 찾아다닌다. 타격 시범을 보이고, 기술을 전하고, 정신력을 이야기한다. 노모 히데오는 WBC를 앞두고 후배들의 전지훈련장을 찾았다. 레전드가 현장을 떠나지 않고, 자신이 쌓은 것을 다음 세대에 직접 전하는 문화다.


한국의 스타 선수들은 다른 선택을 한다. 해설 위원, 예능 출연, 유튜브 운영. 형식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모두 PD 활동이다. 자신의 재능과 경험을 콘텐츠로 만들고, 편집하고, 유통한다. 직접 현장에서 재능을 전하는 대신, 재능을 소재로 기획하는 자리로 이동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스포츠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관광산업도 같은 구조다. 한국의 관광 정바카라은 마케팅과 기획 중심이다. 캠페인을 만들고, 콘텐츠를 연결하고, 여행지에 스토리를 붙인다. PD의 역할이다. 관광공사가 육성하는 관광기업도 관광 상품을 기획하는 관광벤처다. 그런데 정작 연결할 콘텐츠, 붙일 스토리의 원천인 로컬 크리에이터와 지역 장인은 버티지 못하고 사라진다. 기획 예산은 늘어나는데 기획의 대상이 줄어드는 구조다. 반값 여행으로 관광객을 보내도 소비할 로컬 브랜드가 없으면 1회성 방문으로 끝난다. 관광객은 장소가 아니라 브랜드를 소비하기 때문이다.


상권도 다르지 않다. 브랜딩, 이벤트, 축제. 연결하고 포장하는 PD는 증가한다. 그러나 도시의 골목을 도시답게 만드는 것은 기획이 아니다. 그 자리를 오래 지킨 장인들이다. 빵집, 공방, 서점, 골목 식당. 누군가 잘 기획해서 거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일에 삶을 건 사람들이 수십 년을 버텼기 때문에 거기 있다. 익선동이 익선동이 된 것은 기획 때문이 아니다. 그 골목을 먼저 선택한 장인들이 로컬 브랜드 생태계를 만들었고, 기획은 그 이후에 따라왔다.


AI 산업은 다른가? AI 에이전트를 통해 자신의 모든 일을 기획할 수 있다고 흥분한다. 그러나 AI는 더 강력한 PD 도구일 뿐이다. 기획의 효율은 높아지지만, 기획할 가치 있는 일은 AI가 만들어주지 않는다. 가치 있는 일을 만드는 것은 장인이다.


PD를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좋은 PD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PD가 존재하려면 먼저 장인이 있어야 한다. AI가 아무리 강력해져도 마찬가지다. 연결할 것이 있어야 기획이 살고, 기획할 것이 있어야 AI도 쓸모가 있다.


기획과 수요 창출을 강조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지역화폐, 고향사랑기부제, 공공 구매, 디지털 전환, 투자 연결. 거의 모든 소상공인 성장 지원 사업의 기본 전제는 수요 창출이다. 수요가 늘면 공급은 자연히 따라온다는 논리다. 일반적인 재화와 서비스에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장인 공급은 다르다. 장인은 수요가 생겼다고 갑자기 나타나지 않는다.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고, 실험할 공간과 건축 환경이 필요하고, 초기에 버틸 수 있도록 곁에 있어 주는 지원 기관이 필요하다. 장인은 이 모든 것이 갖춰진 지역 생태계 안에서 오랜 시간을 거쳐 자란다. 생태계가 없으면 수요가 늘어도 채울 장인이 없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장인을 키우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로컬 크리에이터가 지역 안에서 실험하고, 실패하고, 뿌리내릴 수 있는 생태계가 필요하다. 교육과 훈련의 기회, 실험할 수 있는 공간과 건축 환경, 초기 창업자를 보육하는 지원 기관이 그 생태계를 구성한다. 정부는 기획을 지원하기 전에 장인이 자생할 수 있는 로컬 브랜드 생태계를 먼저 설계해야 한다. PD는 그 다음이다. 장인이 있어야 PD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