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감이 불러온 작은 실수, 그리고 깨달음
엄마가 말했다. 요즘 야채가 소화가 잘 안 된다고. 예전엔 괜찮았는데, 나이가 드니 몸이 달라진 모양이다.
그래도 야채를 안 먹을 순 없잖아.
이것저것 궁리하다가 문득 당근라페가 떠올랐다. 건강에 좋다며 블렌더에 갈아드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당근은 쉽게 갈리지 않았고, 걸쭉한 덩어리만 남았다. 그다음엔 쪄서 드렸다. 이것도 귀찮아서 오래 못 갔다.
당근라페는 달랐다. 재료가 단출해서 만들기 쉬웠고, 양 조절도 수월했다. 레몬즙, 올리브유, 후추, 설탕, 머스터드. 매번 비율을 바꿔가며 입맛에 맞춰갔다. 2~3일이면 다 먹으니까 계속 새로 만들었고, 그러다 보니 손에 익었다.
'이러다 당근라페 장인 되는 거 아냐?'
농담처럼 생각했던 말이 어느 순간 진담처럼 느껴졌다.
오늘도 당근라페를 만들었다.
빨래를 돌려놓고 휴대폰 타이머를 맞췄다. 당근을 채 썰어 소금에 절이고 워치 타이머를 맞췄다.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타이머들이 거의 동시에 울렸다.
후다닥 빨래를 꺼내고, 당근라페를 만들기 시작했다. 후추, 레몬즙, 올리브유, 설탕 조금, 홀그레인 머스터드. 이제껏 최고의 맛을 냈던 황금 비율로 넣었다. 라텍스 장갑을 끼고 한 번 조물거렸다.
순간, 이상했다.
당근이 꾸덕하지 않고 질퍽했다.
소금에 절인 당근은 물기를 꽉 짜야한다. 그걸 잊었다. 타이머가 동시에 울리는 바람에 정신없었던 거다.
다행히 아직 다 섞이진 않았다. 볼 한쪽으로 당근을 밀어 물기를 따라내고, 한 움큼씩 쥐어 짜냈다. 그리고 다시 버무렸다.
원래는 맛을 보면서 만드는데, 오늘은 안 봤다.
'그냥 당근인데 뭐.'
운전을 시작할 때, 자신감이 붙으면 사고가 많아진다고 한다.
당근라페 장인의 길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오늘 같은 일이 생긴 건, 어쩌면 내가 너무 익숙해져서였을지도 모른다. 겸손하게, 다시 제대로 된 장인의 길에 들어서야겠다.
당근을 한 움큼씩 짜내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