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하게 살아 있는 순간을 이름으로
유년의 우리 집 주변에는 나팔꽃이 많이 피었다. 담장 끝을 타고 오르던 연푸른 줄기, 이른 새벽이면 밤새 모아 둔 숨결을 한꺼번에 펼치며 피어나던 보랏빛 꽃. 아직 세상이 잠에서 덜 깨어난 시간,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맑은 곳에서 나팔꽃은 먼저 아침을 맞이했다.
사람들은 그 꽃을 오래도록 나팔꽃이라 불렀다. 나팔처럼 둥글게 말린 꽃의 모양을 닮았기에. 모양을 보고 이름을 붙이는 것은 삶의 방식이다. 그러나 영어 이름은 조금 다르다. 모닝 글로리(Morning Glory). '아침의 영광'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나팔꽃.
본래 이름조차 아름다운 꽃. 꽃이 찬란하게 살아 있는 순간을 이름으로 남겼다. 한 송이 꽃이 빛나는 시간을 기억해 주는 이름. 그 이름만으로도 나팔꽃은 이미 아름답다.
길을 걷다가 나팔꽃을 만나면 사진을 찍어둔다. 여름은 아직 뜨겁다. 뜨거움의 절정이 조금 지나면 더 아름답게 빛나는 꽃이다. 한여름보다 여름의 끝자락을 더 사랑하는 꽃이다. 태양이 조금은 너그러워질 무렵, 나팔꽃은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시작한다.
그래서 나팔꽃은 계절을 알려 주는 꽃이다. 달력보다 먼저, 바람보다 먼저, 절기가 바뀌고 있음을 조용히 말해 준다. 하지만 서두르지 않으면 나팔꽃을 제대로 만날 수 없다.
나팔꽃은 햇살이 지붕을 넘기 전, 밤이슬이 잎을 따라 맺혀 있을 때 가장 눈부시게 피어난다. 새벽 공기를 머금은 꽃잎은 투명한 비단처럼 맑고, 빛을 머금은 색은 낮보다 훨씬 깊다. 그 시간의 나팔꽃은 새벽이 잠시 빚어 놓은 조각 작품 같다.
그러나 나팔꽃은 해가 높아질수록 꽃은 말없이 입을 다문다. 아무런 미련도 없이, 누구에게도 아쉬움을 보이지 않은 채 천천히 꽃잎을 접는다. 사람들은 꽃이 시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살아남기 위한 쉼이다.
나팔꽃은 제 몸 하나 제대로 세우지 못하는 연약한 덩굴식물이다. 단단한 줄기도 없고, 스스로 버틸 힘도 없다. 누군가의 담장을 기대고, 나뭇가지를 붙잡고, 철망을 의지하며 하늘을 향해 오른다.
혼자서는 설 수 없지만, 그 무엇보다 청초하고 아름다운 꽃. 가녀린 존재가 더 높은 곳을 향해 손을 뻗는다.
그리고 나팔꽃은 자신의 모든 힘을 새벽 한순간에 쏟아붓는다. 밤새 뿌리에서 끌어올린 물을 꽃잎 끝까지 밀어 올려 단 한 번 활짝 웃어 보인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위해 가진 것을 아낌없이 사용한다. 그래서 해가 높아질 무렵이면 더 이상 버틸 힘이 남아 있지 않다. 꽃은 수분을 아래로 내리고, 잎은 고개를 숙인다. 시든 것이 아니라 몸을 쉬게 하는 것이다. 더위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지혜로운 방법일 것이다.
흔히 꽃은 늘 활짝 피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언제나 예뻐야 하고, 그러나 자연 속에는 신비의 시간이 들어있다. 꽃도 쉰다. 나무도 쉰다. 새는 가장 뜨거운 한낮에는 노래를 멈춘다.
그래서 나팔꽃은 하루의 대부분을 꽃이 아닌 모습으로 살아간다. 사람들은 피어 있는 시간만 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꽃은 접혀 있는 시간까지도 꽃이다. 보이지 않는 시간 동안 다음 새벽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세상살이도 그렇지 않을까. 눈부시게 빛나는 순간보다 묵묵히 견디는 시간이 훨씬 길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시간, 아무도 박수를 보내지 않는 시간 속에서 모두 조금씩 다시 피어날 힘을 모은다. 화려한 낮보다 고요한 새벽이 더 깊은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요즘은 길가에 피어 있는 나팔꽃 보기가 쉽지 않다.
담장 한구석, 아무도 시선을 주지 않는 철망 끝에서 외롭게 한 송이 나팔꽃이 피어 있는 걸 만나면, 한번 더 시선을 머문다. 나팔꽃의 그 숨은 신비를 알기에.
나팔꽃은 짧게 피어도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선택한다. 오래 남는 것보다 가장 빛나는 순간을 살아내는 것이 삶의 가치임을 말없이 보여 주는 것처럼.
아침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그 아침을 온몸으로 맞이하는 나팔꽃. 그래서 나팔꽃은 오늘도 새벽의 영광을 혼자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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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꽃은 보지 않아도 피고, 아무도 기억하지 않아도 계절을 알리고, 짧은 시간을 가장 깊은 아름다움으로 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