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은 아름다운 일이다
주일이면 빠지지 않고 성당에 간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늘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서고, 익숙한 자리에 앉아 미사를 드린다. 기도를 하고, 성가를 부르고, 신부님의 강론을 듣는다. 그날도 여느 주일과 다르지 않았다.
미사가 끝난 뒤 성당 마당에 작은 장터가 열렸다. 강원도의 어느 성당에서 포도즙을 가지고 올라온 것이다. 농촌 지역의 성당에서는 주변의 땅을 빌려서 직접 농사지은 농작물을 가지고 도시 성당을 찾아온다. 물건을 팔아 얻은 수익은 그곳 성당의 낡고 좁은 성당을 보수하는데 쓰인다고 했다.
그날 우리 본당 신부님이 먼저 포도즙 이야기를 꺼내셨다. 강원도에서 수녀님들이 직접 가지고 올라오셨으니 관심을 가져 달라는 말씀이었다. 잠시 뒤 강원도에서 오신 수녀님 한 분이 포도즙 상자를 앞에 놓고 정성스럽게 설명을 시작했다. 포도 농사를 어떻게 지었는지, 농약은 최소한의 기준만 사용했다는 것과 포도즙 한 포에 포도 한 송이가 들어간다는 것까지 차근차근 설명하셨다.
강원도에서 오신 수녀님이 야무지게 설명하는 모습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도시에서는 무엇이든 너무 쉽게 사고판다. 물건은 진열되어 있고 필요한 만큼 고르고 계산하면 된다. 누가 그것을 만들었는지, 그 물건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것을 팔아야 하는 사람의 사정이 어떤지는 굳이 알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성당에서 만난 포도즙은 조금 달랐다. 포도즙 한 상자에 강원도 성당 사람의 모습이 보이고, 그 지역의 풍경이 보이는듯했다. 포도나무를 키우고 잘 익은 포도가 되기까지 애지중지 보살핀 사람들의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을 지나 포도즙이 되어 우리 성당까지 올라온 것이다.
난 두 박스를 샀다. 무엇인가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그저 수녀님의 설명을 듣고 나서 그냥 사고 싶었다. 내가 필요한 것을 사면서 누군가에게도 조금 도움이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었다. 집에 돌아와 식구들과 함께 포도즙을 나누어 마셨다. 포도 향이 제법 선명했다. 지나치게 달지도 않았다. 얼음을 동동 띄우니까 시원하고 더 청량한 맛이 났다. 식구들도 괜찮다며 모두 한 잔씩 달게 마셨다.
강원도의 어느 포도밭에서 익은 포도가 서울에 있는 성당까지 건너왔고, 그 포도가 다시 우리 집 식탁까지 건너왔다. 어쩌면 그것으로 오래된 건물의 한 귀퉁이를 고치는 데 쓰일 수도 있고, 성당의 어느 필요한 곳에 보태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한 잔의 포도즙이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눈다는 것은 꼭 큰 것을 내어주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때로는 내가 필요한 물건 하나를 사는 것으로도 나눔이다. 누군가에게 돈을 건네고 물건을 받아오는 단순한 거래처럼 보이지만, 그 사이에 마음이 오갈 때 그 온기는 조금 다른 일이 된다.
성당에서는 가끔 그런 경험을 한다. 주일이면 전국 여러 지역에서 사람들이 찾아온다. 어떤 곳에서는 쌀을 가져오고, 어떤 곳에서는 고구마나 감자를 가져온다. 직접 농사지은 잡곡이나 과일을 들고 직접 신부님이 또 수녀님이 찾아오신다. 그럴 때마다 가능하면 흔쾌히 구입을 한다. 나눔이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을 단번에 바꾸는 큰 손길보다, 서로의 삶에 작은 틈을 내어주는 마음. 무엇인가를 나눌 때마다 특별한 선행이라기보다 삶의 자연스러운 순환에 가까워진다. 내가 먹는 밥 한 그릇에도 어느 농부의 계절이 들어 있고, 입고 있는 옷 한 벌에도 누군가의 노동이 들어 있다. 쉽게 마시는 차 한 잔에도 누군가의 시간이 들어 있다. 세상에 홀로 만들어지는 것은 거의 없다.
나눔은 아름다운 일이다. 서로의 삶이 아주 조금씩 이어지도록 길을 내는 일이다. 내가 건넨 작은 것이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내가 받은 작은 것이 또 다른 사람의 삶으로 흘러가는 것. 그렇게 세상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수많은 연결로 유지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주일 성당에서 누군가 농사지은 것을 들고 와서 도움을 청하면 가능한 한 흔쾌히 동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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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세상이 아직 따뜻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바로 이런 때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진 것을 조금씩 나누는 일. 그 마음이 모여 세상의 어딘가에 작은 불빛 하나를 켠다. 그렇게 서로의 삶을 조금씩 받쳐주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함께 살아가는 따뜻한 방식 중 하나일 것이다. 마치 잘 익은 포도 한 송이가 먼 길을 돌아 사람의 마음과 마음 사이를 건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