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신사가 들려주는 '삶의 선물'이라는 말
아는 지인이 급하게 티켓이 생겼다며 피아노 연주회에 초대했다. '건반 위의 신사’로 불리는 피아니스트 백건우 파아니스트 연주회였다. 피아노 선율이 주는 그 편안함에 때문에 순간 무장해제가 되었다. 인간의 감정과 피아노 곡은 같은 연결에 놓인 알 수 없는 위로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
피아노 연주와 중간중간 토크가 이어졌다. 열 살 때부터 68년간 클래식 외길을 걸어온 대가는 인터뷰에서 "평생 모차르트를 연주했지만 아직도 모차르트를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어서 중요한 말을 건넸다. "모르는 세계가 있다는 건 삶의 선물"이라고. 원로 음악인이 여전히 미지의 세상에 호기심을 느끼며 도전을 즐기는 모습에 감동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예전 같지 않은 육신을 핑계로 낯선 영역이나 새로움에 대한 관심까지 놓아 버리는 경우가 흔하다. 경험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세상은 호기심과 설렘을 안겨 주지만 또 두려움과 불안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모르는 세상이 있다는 건 삶의 선물'이라는 노 신사의 말이 귓가에 머물렀다. 흔히 모른다는 말을 부족함으로 받아들인다. 시험에서는 틀린 답이고, 흔히 미숙함처럼 여긴다. 그래서 많이 알고 익히고, 또 남보다 앞서려 애쓴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도전은 줄어든다. 경험이 많아서 세상을 더 잘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더 많이 예측하기에. 때로는 가능성을 애써 가두어 두기도 하고. 두려움은 용기가 없어서 생기는 감정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이가 들면 잃을 것이 무엇인지 실패가 얼마나 아픈지도 알고, 또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마음은 앞으로 가려하는데 이성이 자꾸 뒤에서 붙잡는다. 얼마 전, 한 지인이 내게 테니스를 한번 시작해 보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수십 년째 테니스를 즐기며 살아온 사람이다. 햇살 아래서 뛰는 일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사람을 얼마나 건강하게 만드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여인이다.
나는 웃으며 얼버무렸다. 사실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땀 흘리는 일도 공을 쫓아 뛰는 일도 익숙하지 않다. 평생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것이다. 몸이 따라줄까. 또 이 나이에 무슨. 머릿속에서는 수십 가지 이유가 순식간에 스쳤다.
사실 도전하지도 않고 미리 걱정한다. 인간은 실제 현실보다 상상 속의 위험을 더 크게 키우는지도. 같은 길만 걷다 보면 새로운 풍경은 만날 수 없다. 사실 같은 일만 계속하면 다른 생각을 배우기도 어렵다.
백건우 파이니스트가 평생 모차르트를 연주하면서도 아직 모른다고 말한 것처럼. 그 말은 백건우의 부족한 고백이 아니라, 끝없이 배우는 삶을 말하는 것이다. 아는 만큼의 인생보다 모르는 것이 남아 있는 인생이 더 아름다운 이유일 것이다.
모르는 세상은 인간을 불안하게 하지만 또 살아 있게 만든다. 설렘은 낯선 곳에서 시작되기에. 아직 가 보지 않은 길, 아직 읽지 않은 바카라, 아직 만나지 않은 사람, 아직 배우지 않은 운동이 수 없이 많듯이. 그 미지는 어쩜 삶이 주는 선물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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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는 것을 반복하는 시간이 아닌, 모르는 것을 향해 한 걸음씩 걸어가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너무 오래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 그 문 너머에는 두려움보다 아직 모르는 또 하나의 내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