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는 배려하고 존중해야

전철 안에서 특별한 것을 보았다

by현월안




지하철 안에서 작은 소동을 목격했다. 한낮의 전철 안 사람들은 각자의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거나 무표정하게 생각에 잠기거나 음악을 듣는다. 그 평범한 풍경 속에서 한 젊은 여성이 임산부 배려석 앞에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죄송한데, 혹시 자리 좀 양보해 주실 수 있을까요?" 자리에 앉아 있던 중년 여성은 선뜻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다소 날카로운 목소리로 "진짜 임신한 거 맞아요?" 한다.



순간 전철 안 시간이 멈춘 듯했다. 젊은 여성은 잠시 말을 잃었다. 그녀는 임신 초기라 겉으로 티가 나지 않지만 입덧과 멀미가 심하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몸 상태를 낯선 사람들 앞에서 증명하듯 이야기해야 하는 젊은 임산부. 결국 옆에 앉아 있던 다른 승객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그런데 난 그 임산부 앞에 서서 손잡이를 잡고 서 있었으니까 그녀의 표정이 모두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은 그렁그렁 한 초조와 불안. 결국 난 그녀의 눈물 한 방울을 보고야 말았다. 같은 여자이기에 코끝이 시큰해지는 알 수 없는 동요가 함께했다.



전철을 타고 있는 내내 내 마음속에서는 오랫동안 그 잔상이 끝나지 않았다. 왜 보이지 않는 것을 쉽게 믿지 못하게 되었을까. 임신은 그리고 생명의 시작은 대부분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시작된다. 배가 불러오고 몸의 변화가 드러나기 훨씬 전부터 새로운 생명은 이미 자라고 있다.



흔히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려 한다. 아픈 사람도 겉으로는 멀쩡해 보일 수 있다. 힘든 사람도 웃고 있을 수 있다. 외로운 사람도 밝은 표정을 짓고 있을 수도 있다. 사랑도 그렇고 신뢰도 그렇고 희망도 그렇다. 누군가를 향한 진심 역시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



그런데도 사랑을 믿고, 사람을 믿고, 가족을 믿으며 세상을 살아간다. 슬롯는 눈에 보이는 사실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신뢰 위에서 굴러간다. 임산부 배려석도 그런 철학 위에 만들어진 자리다. 그 자리는 슬롯가 만든 약속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존중.



아마도 모든 임산부에게 확인을 요구해야 한다면 그 자리는 이미 의미를 잃은 것이다. 배려는 먼저 믿어주는 마음이다. 세상에는 거짓말하는 사람도 있다. 선의를 악용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믿어줬다가 생길 수 있는 작은 손해보다, 도움이 절실한 사람을 외면함으로써 생기는 상처가 훨씬 크다.



성숙한 슬롯는 먼저 내어주고 먼저 양보하고, 먼저 이해하려는 마음이다. 요즘은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도 많고,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도 늘고 있다. 그래서 그 귀한 존엄의 임신은 존중받아야 할 일이다. 그 누군가가 임신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여전히 특별하고 귀한 일이다.



그래서 임산부를 배려하는 것이고 또 미래를 배려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이 품고 있는 생명은 언젠가 슬롯를 이어갈 다음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날 젊은 임산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쩌면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왜 자신의 상태를 설명해야 하는지 왜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느냐고.



하지만 세상에는 그래도 규칙을 지키는 사람들이 많다고. 당신의 말에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 있다고. 그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내어준 한 사람처럼 말이다. 세상은 때때로 차갑고 거칠다. 그러나 인간은 서로를 배려하면서 조금씩 더 나은 존재가 되어 간다.



나는 그날 지하철에서 두 사람을 보았다. 한 사람은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고, 다른 한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내주었다. 그리고 그 짧은 장면 속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 어쩌면 사랑의 오래된 형태일지도 모른다. 그런 세상이라면 지금 임산부도,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도 조금 더 따뜻한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ㅂ


사람이 사는 세상의 한 단면이 지하철 한 칸에서 드러난다. 누군가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그 작은 순간 속에서 미래를 배우고, 인간다움의 깊이를 확인한다. 그리고 모두가 의식해야 할 것은 그다음 세대가 앉게 될 자리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