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살아있는 생물
엘리베이터에서 함께 탄 젊은 남녀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여성은 회사에서 있었던 불쾌한 일을 숨 돌릴 틈도 없이 쏟아내고 있었다. 그들만의 언어를 섞어 분노가 연달아 흘러나왔다. 함께 있던 남성도 맞장구를 치며 감정을 보탰다. 그렇게 한참 이야기가 이어지다가 여성이 결론이라도 내린 듯 말했다. "아무래도 내일 출근해서 밍아웃해야 할까 봐."
밍아웃? 처음 듣는 말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검색해 보니 '커밍아웃'에서 파생된 신조어라고 한다. 자신이 어떤 취향이나 성향을 지녔는지 공개적으로 밝히는 행위를 뜻한다. 특정 분야의 마니아임을 밝히는 '덕밍아웃', 특정 인물을 좋아한다고 드러내는 '팔밍아웃' 같은 표현도 있다고. 결국 그 여성은 회사에서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겠다는 뜻인 셈이다.
요즘은 신조어의 시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말이 생겨난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말이 어느새 방송에 등장하고, 방송에서 쓰인 말은 다시 일상으로 스며든다. 겨우 하나를 익혔다 싶으면 또 다른 말이 등장한다. 뒤늦게 뜻을 찾아보고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 말은 이미 유행이 지나 있다.
나이가 들수록 그런 변화는 더 빠르게 느껴진다. 젊은 시절에는 자연스럽게 사용하던 말들이 어느 순간 낡은 표현이 되고, 낯선 단어들이 대화에 파고든다. 자칫 모른다고 하면 시대에 뒤처진 사람처럼 보이고 또 무리해서 사용하면 어색한 흉내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신조어를 만날 때마다 당황스러운 마음이 먼저 드는 것도 사실이다.
삶에서 말이 변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지금 사용하는 언어도 누군가에게는 한때 신조어였을 것이다. 옛 문헌을 펼쳐 보면 지금은 사라진 말들이 수없이 등장한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사용하던 표현 중 상당수는 오늘날 뜻조차 짐작하기 어렵다. 반대로 지금 모두가 익숙하게 쓰는 말도 수십 년 전 사람들에게는 낯설고 새로운 표현이었다.
언어는 살아 있는 생물이다. 살아 있는 것은 움직이고 변화한다. 강물은 흐르기 때문에 강물이고, 바람은 움직이기 때문에 바람이다. 언어도 시대의 생각과 감정을 담아 끊임없이 모습을 바꾼다.
젊은 세대가 새로운 말을 만들어 내는 것도 자기들만의 감정과 경험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나이 든 세대가 미처 담아내지 못한 미묘한 감정을 더 짧고 더 선명하게 전달하려는 노력일 수도 있다. 신조어는 때로 재치가 있고 또 시대의 고민이 들어 있다. 어쩌면 언어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렇다고 계절마다 유행하는 옷을 전부 입지 않는 것처럼, 유행하는 말을 모두 알아야 할 이유도 없다. 중요한 것은 단어 자체보다 그 말에 담긴 마음을 이해하려는 진심일 것이다. 그 안에 담긴 감정을 이해하는. 사랑한다는 말도 고맙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표현 방식은 시대마다 달라질 수 있으니까 말이다.
종종 젊은 사람은 나이 든 세대의 말을 답답하게 여기고, 나이 든 세대는 젊은 사람의 말을 얼른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말은 말일뿐 마음까지 다르지 않다는 것.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고, 존중받고 싶은 마음은 어느 세대나 같은 것이니까.
언어는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다. 거울 속 모습은 계속 변하지만 거울을 바라보는 인간의 본질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신조어를 만날 때마다 모르면 물어보면 되고, 이해되지 않으면 뜻을 찾아보면 된다. 세상이 변하는 만큼 언어도 변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들었던 '밍아웃'이라는 단어도 언젠가는 사라질지 모른다. 또 다른 말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자신의 생각과 정체성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어 하는 마음만은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말은 강물처럼 흘러간다. 어떤 단어는 잠시 반짝이다 사라지고, 어떤 단어는 오랫동안 살아남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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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요즘 유행하는 말을 많이 아는 것보다 그 말 뒤에 숨어 있는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이해하느냐다. 언어는 시대를 따라 변하지만, 마음을 향한 이해와 공감은 오래된 단어처럼 모두의 곁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