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게 주는 사랑
오랜만에 지인을 만났다.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물을 틈도 없이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다. 한순간 무너져 내리듯이 흐느끼며 말했다. "우리 강아지가 죽었어." 십 년이 넘도록 함께 살아온 반려견이었다고. 가족 모두가 애지중지 키운 존재. 흔히 반려동물을 동물이라고 부르지만, 오랜 시간을 함께한 이들에게는 이미 가족이다.
그녀는 차마 화장장에 보내지 못했다고 했다. 마지막 모습이 재가 되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고 했다. 그녀의 가족들은 산바카라길 어귀의 한적한 곳에 조심스럽게 묻어주었다고 했다. 그렇게 이별을 했고 그런데 그날 밤 비가 내렸다고 했다. 한두 방울이 아니라 세상이 무너질 듯한 폭우였고,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저 아이가 젖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과 함께 동 틀 무렵 식구들이 뜯어말릴 틈도 없이 강아지가 묻힌 곳으로 달려가 땅을 파헤쳤다고. 젖은 땅에 놔둘 수 없다고, 집으로 데려가겠노라고. 새벽 어스름 그 기괴한 모습에 놀라 산바카라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신고를 했고, 경찰이 출동을 하고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고 했다.
경찰이 출동하고서야 그제야 그녀는 정신이 들었다고 했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그 순간 찾아온 현실과 부끄러움과 당혹감이 밀려왔다고 했다.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르겠어.”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울기 시작했다.
한참 장적이 흐르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위로도 쉽지 않았고 충고는 더 어울리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기이하다는 생각과 안쓰럽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녀는 강아지를 파내려 했던 것은 떠나보낸 사랑을 붙잡으려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는 존재를 잃는다. 부모를 잃고 배우자를 잃고 또 지인을 잃는다. 언젠가는 나 자신도 누군가의 상실이 된다. 그래서 삶은 만남이고 이별인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이별에는 익숙하지 않다. 함께할 때는 영원할 것처럼 사랑하고, 떠날 때는 처음 겪는 고통처럼 무너진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돌봐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지친 하루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는 존재. 말없이 곁에 앉아 체온을 나누어 주는 존재. 세상 모든 사람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날에도 이유 없이 자신을 사랑해 주는 존재. 반려견은 인간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준다.
반려동물의 수명이 인간보다 짧은 이유에 대해 어떤 시인은 이렇게 얘기한다. 사람은 사랑을 배우기 위해 평생이 필요하지만, 동물은 이미 사랑하는 법을 알고 태어나기 때문이라고. 그러나 그 말은 이상하게 마음을 울린다. 반려견은 인간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기다림과 무한한 사랑을,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존재가 언젠가 떠난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그래서 그녀와 반려동물과의 이별은 그만큼 사랑했다는 증거다. 그녀가 비 오는 새벽에 흙을 파헤친 것은 분명 이성적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하지만 사랑은 설명의 대상이 아니다. 사랑은 때때로 사람을 우습게 만들고 비합리적으로 만들고, 또 때때로 기이한 행동을 하게 만든다. 아마도 그것이 사랑의 흔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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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아가며 수많은 존재와 헤어진다. 그래도 그녀와 함께 했던 산바카라길과 함께 먹던 저녁 시간과 이름을 부르면 달려오던 기억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랑의 기억은 오래 남는다. 그래서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것은 다른 또 기억으로 옮겨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녀의 기억 속에는 긴 시간 꼬리를 흔들며 그녀를 기다리던 기억이 많았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