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은 누구나 서툴다
얼마 전에 신용 카드 기간 연장과 자동 이체 때문에 은행에 갔다. 그런데 직원의 손놀림이 어딘가 조심스러웠다. 카드 기간 연장과 자동이체 변경, 그리 복잡하지 않은 업무였지만 그 직원은 몇 번이나 화면을 확인했고 서툰 기색이 분명했다. 그때 옆 창구에서 선배로 보이는 직원이 다가와 설명과 몇 번의 시범, 그리고 그 지원 사격 덕분에 일은 금세 매끄럽게 풀렸다.
고개를 들어 창구 앞을 보았더니 작은 메모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새내기 신입직원입니다.'라는 말과 함께, 노란 병아리가 그려져 있었다. 어미 닭의 뒤를 졸졸 따라가는 병아리. 그 아래에는 또박또박 적힌 다짐이 들어 있었다. '열심히 배워 더욱 큰 서비스로 모시겠습니다'라고.
그 순간, 이유 없이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또 오래된 기억 어딘가에 있던 나의 기억들. 새내기라는 이름으로 서류를 들고 우왕좌왕하던 시간, 선배의 눈치를 보며 실수를 줄이려 애쓰던 시간들, 그럼에도 어김없이 실수를 저질러 누군가를 번거롭게 했던 순간들. 그 모든 것이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은 참으로 성실한 시간이기도 했다.
처음이라는 것은 누구나 서툴다. 익숙해지기 전까지 누구나 잠시 멈칫거리고, 몇 번은 또 돌아가고, 때로는 엉뚱한 길로 들어선다. 그럼에도 처음은 시작된다. 누구도 처음을 건너뛴 채 능숙해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흔히 능숙하게 일을 처리하는 사람과 막힘없이 말하는 사람과 또 여유롭게 상황을 이끄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 역시 한때는 처음 앞에서 머뭇거리던 순간이 있었을 테고, 작은 메모 하나에 자신을 신입이라 소개해야 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 병아리 그림은 아직 작고 서툴지만, '곧 자라나겠습니다.'라는 조용한 다짐처럼 보였다. 그리고 또 모두에게 건네는 부탁이 들어있지 않았을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라는.
삶은 끊임없는 처음의 연속이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또 익숙하던 관계 속에서도 또 다른 처음을 맞이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은 또 다른 얼굴로 찾아온다. 다만 더 이상 그것을 처음이라 부르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그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순간이 덜 서툴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색하고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고, 마음속으로 수없이 연습을 반복한다. 겉으로 티를 덜 낼뿐이다.
그날 은행에서 그 직원이 좀 느리더라도 시간을 기다렸다. 그녀가 실수를 해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앉아 있었다. 어쩌면 과거의 나에게 건네는 늦은 이해였는지도 모른다. 일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는 그 직원에게 짧게 인사를 건넸다. '수고하셨습니다.' 그 말은 특별하지도 않지만, 그녀가 고개를 들어 환하게 웃는 순간이면 된 것 아닐까라는 생각 말이다.
은행 밖으로 나오니까 봄 볕이 한층 더 따사로워 보였다. 세상은 여전히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지만, 그 속에서도 누군가는 천천히 배우고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시간을 묵묵히 견디고 있다.
처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다만 그 처음을 대하는 것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나 조금만 시선을 낮추면 보인다. 지금 서툰 그 사람이, 언젠가는 누군가의 선배가 되어 또 다른 처음을 도와줄 것이라는 사실이. 그러니 처음 앞에서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서툰 손놀림은 곧 익숙해질 것이고, 머뭇거림은 또 자신만의 리듬으로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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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창구 앞의 작은 병아리는 어쩌면 모두의 모습일지 모른다. 아직은 작고 아직은 서툴지만, 그럼에도 분명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이. 그리고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존중받아야 할 시간. 삶은 언제나 처음이라는 미완의 상태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삶은 서툴고 그래서 더 살아 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