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할머니의 냄비

부모의 자식 사랑은 영원하다

by현월안




아파트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마다 마주치는 장면이 있다. 늘 비슷한 시간대에 할머니 손에 들려있는 냄비. 그 냄비에서는 날마다 다른 냄새를 풍긴다. 어떤 날은 비릿한 생선 조림의 냄새가, 또 어떤 날은 오래 끓여낸 된장국의 구수함이 공간을 채운다.



처음에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풍경에 불과했지만, 반복되는 마주침은 어느새 궁금증으로 바뀌었다. 팔십쯤 되어 보이는 할머니가, 왜 매일같이 냄비를 들고 오르내리는 걸까. 조심스레 여쭈었을 때 돌아온 대답은 놀라울 만큼 담담했다. 같은 단지에 사는 딸네 집에 반찬을 가져다주는 길이라고. 그 말속에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사랑이 담겨 있다.



늦둥이 막내딸과 사위는 아침 일찍 집을 나가 의류 도매를 하고 또 소매 판매까지, 밤늦게 마치는 옷가게를 한다고 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제대로 된 한 끼를 챙겨 먹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할머니는 매일 음식을 만들어 냄비째 들고 나선다. 식탁 위에 올려질 반찬은 바쁜 하루 끝에 딸을 기다리고 있다는 신호일 것이다. 냄비째 냉장고에 넣어 두면 가족들이 각자의 시간에 꺼내 먹고, 남으면 상할까 봐 다시 가져온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준다.



그리고 그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어린 외손주를 돌보며 낮시간을 함께 살아낸다. 아침이면 유아원까지 손을 잡고 데려다주고, 놀이터에서 놀아주는 일까지. 그 모습은 어쩌면 이미 한 번 끝났다고 여겼던 부모의 시간이 또 다른 형태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자식이 자라 독립하고, 각자의 가정을 꾸렸다고 해서 부모의 역할이 완전히 끝나는 것이 아니듯이 말이다.



엘리베이터라는 좁은 공간에서 마주친 그 할머니의 모습은, 삶에 대한 질문을 다시 하게 한다. 사랑은 무엇인가. 사랑은 특별한 날의 이벤트가 아니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드러나는 선택일지도 모른다. 힘이 들어도 멈추지 않는 발걸음, 귀찮음을 넘어서서 이어지는 손길, 그리고 또 그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일. 사랑은 쉽게 드러내지 않지만 분명하게 존재한다.



흔히 사랑을 받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알게 된다. 사랑은 받는 데 있지 않고, 기꺼이 내어주는 데 있다는 것을. 또 내어줌조차 계산하지 않는 데에 있다는 것을. 할머니가 들고 다니는 냄비에는 음식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시간과 정성, 그리고 말로 표현되지 않는 마음이 함께 담겨 있다.



어쩌면 자식들은 그 사랑을 완전히 알지 못할지도 모른다. 바쁜 일상 속에서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지금 현시대의 흐름. 하지만 사랑은 이해되어야만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닐 수 있다. 이해되지 않아도 드러나지 않아도, 부모자식 간의 사랑은 그 자체로 존엄이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각자가 사는 집으로 흩어지는 짧은 순간. 그 안에는 알 수 없는 긴 여운을 남긴다. 삶은 그런 장면들 투성이다. 눈에 확 띄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무언가를 들고 오르는 평범한 하루들. 그 반복 속에서 서로를 이어가고 또 다음 세대로 건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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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조용히 냄비를 들고 계단을 오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발걸음 하나하나가, 또 세상의 온기를 지탱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