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느끼는 것들
며칠 전 가족들과 함께 2박 목포 여행을 갔다. 이번 여행에서는 일부러 호텔 대신 원도심 골목 안쪽의 작은 한옥 게스트하우스를 숙소로 골랐다. 오래전 한약방으로 쓰였다는 그곳은 그리 화려하지 않았다. 윤이 나는 대리석 로비도 없었고, 감각적인 조명과 세련됨도 없었다. 대신 오래된 나무 기둥에는 세월이 손때처럼 배어 있었고, 삐걱거리는 마룻바닥에서는 오래전 사람들의 체온이 아직 남아 있는 듯했다.
그 소박함이 약간의 틈과 오래된 흔적이 남아 있는 것 같아서 더 안심이 됐다. 아마 삶 역시도 흠 하나 없이 반듯한 인생보다, 조금은 서툴고 사연이 있는 삶이 더 인간적이고 따뜻하기 때문일 것이다.
목포의 저녁은 고즈넉하게 여유가 있었다. 원도심 골목에는 반짝이는 불빛도 많지 않았고, 자동차 소리도 드물었다. 조용한 온돌방에 누워 있으니 문득 오래전 어린 시절 외갓집에서 자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시절에는 세상이 지금보다 훨씬 느리게 흘렀다. 그때는 사람들은 급하지 않았고, 밤은 깊고 길었다. 잠들기 전에 하늘을 한번 올려다볼 여유쯤은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목포 여행에서 인상 깊었던 것이 있었다. 아침에 들리는 맑은 새소리. 아침마다 새소리에 잠이 깼다. 처음엔 꿈결처럼 들렸다. 뒷마당 벚나무 가지 사이를 오가며 새들이 재잘거리는 소리가 창문 틈으로 스며들었다. 한 마리가 울면 또 다른 새가 답하듯 속삭였고, 잠시 뒤에는 마치 작은 합창이라도 시작된 듯 온 마당이 새소리로 가득 찼다.
평소에는 늘 알람 소리에 깨어난다. 휴대전화의 전자음은 하루의 시작을 알려주고는 현실 속으로 밀어 넣는다. 해야 할 일과 답해야 할 메시지와 늦지 말아야 할 시간들. 눈을 뜨는 순간부터 삶은 다시 경쟁과 의무의 궤도로 돌아간다. 그런데 목포에서의 그 새소리는 많이 달랐다. 그저 살아 있는 것이 기쁨인 것처럼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날 아침 우리 가족들은 한동안 말없이 새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누구 하나 휴대전화를 먼저 들여다보지 않았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그 소리.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보다 오늘이라는 시간이 선물처럼 느껴졌다. 아침 햇살은 한옥 창호지를 부드럽게 통과했고, 방 안에는 은은한 나무 냄새가 감돌았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이 조금 느려져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철학자의 글에서 읽은 글이 떠올랐다. "단 몇 분만 새소리를 들어도 하루 종일 불안과 걱정이 누그러진다."고. 그 글을 읽을 때는 그저 낭만적인 표현쯤으로 생각했었다. 그리고 목포의 그 아침에서 그 말이 이해가 되었다. 새소리는 자연의 배경음 같았고, 인간이 오래전부터 자연과 함께 살아왔다는 기억을 깨우는 소리였다.
삶은 너무 많은 소음 속에 놓여 있다. 끊임없이 울리는 알림과 빠르게 소비되는 뉴스와 부추기는 말들. 몸과 마음이 지쳐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멀리 여행을 떠나서야 내가 얼마나 오래 자연으로부터 멀어져 있는지를 알게 된다
여행은 살던 곳을 떠나 새로움을 장소를 보고 또 잊고 지냈던 감각을 다시 회복하는 일이다. 오래된 골목의 냄새와 낯선 도시의 저녁 공기와 그리고 새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눈을 뜨는 아침 같은 것들.
여행을 하면 작은 것들에 마음이 흔들린다. 평소에는 무심히 지나쳤을 풍경 앞에서도 오래 눈길이 머문다. 너무 바쁘게 살아오느라 잊고 있던 본래의 감각을 잠시 되찾게 하기 때문이다. 빨리 달린다고 반드시 좋은 삶은 아닌데도 말이다. 때로는 멈추어 새소리를 듣고, 햇살이 방 안으로 스며드는 모습을 바라보며 삶을 받아들이는 일.
목포에서 돌아온 뒤에도 문득 그 아침이 떠오른다. 아파트 창문 밖에서는 자동차 소리와 생활의 기계음이 먼저 들린다. 도시의 아침은 늘 분주하다. 그래서 휴대전화 알람을 새소리로 바꾸어 보았다. 목포에서의 그 평화로운 아침을 그대로 데려다주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하루를 시작하는 마음의 결은 조금 달라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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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사람은 자주 듣는 소리를 닮아가는지도 모른다. 날카로운 말들 속에서는 마음도 점점 거칠어지고, 조용한 자연의 숨결 속에서는 마음 역시 천천히 부드러워진다. 삶은 여전히 바쁘고, 현실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가끔은 그렇게 살아도 괜찮다는 듯 창가에 기대앉아 노래하는 새소리를 듣는 일. 그리고 여행은 그런 순간을 알게 해 주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