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모시옷

군더더기 없는 선과 욕심 없는 색감과 단아함

by현월안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면 대개 계절보다 빠르다. 누군가는 예쁜 봄이고, 또 누군가는 벌써 한여름을 살아간다. 그런데 그 복잡한 틈에서 계절의 시간을 옷으로 알려준다. 지하철에서 모시옷을 곱게 차려입은 할머니를 보았다. 아직 여름이 오지 않았는데도, 곱게 차려입은 모습이 예뻐서 자꾸 눈길이 갔다.



하얀 모시옷은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정갈하게 만든다. 군더더기 없는 선과 욕심 없는 색감과 과하지 않은 그 단아함. 저고리 깃이 없는 단순한 디자인인데도 그 안에는 오래된 격이 들어 있다. 모시옷은 단아함으로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전철에서 만난 모시 할머니는 앉은 자세마저 흐트러짐이 없었다. 옷자락은 그 섬세한 결을 따라 맑고 청아해서 한참 동안 눈길을 떼지 못했다. 그리도 곱게 차려입고 어디를 가시는 걸까. 오래된 친구를 만나러 가시는지, 병문안을 가시는지, 손주 돌잔치에 가시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행선지가 어디든 그분은 이미 아름다운 길 위에 계셨다.



돌아가신 엄마도 여름이면 모시옷을 즐겨 입으셨다. 나들이를 가실 때는 잠자리 날개처럼 얇고 고운 모시옷을 입으셨고, 집안일을 하실 때는 가끔 올이 조금 더 굵은 베 옷을 입으셨다. 외출에서 돌아오신 엄마는 모시옷을 유난히 정성껏 손질하셨다. 옷고름을 풀어 곱게 펴고, 주름을 바로잡고, 늘 그 자리에 정갈하게 넣어 두고 애정하셨다. 세월이 흐른 지금은 안다. 엄마가 모시옷을 아꼈던 것은 한 번 입고 지나간 날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겠다는 종갓집 종부의 깊은 삶이 들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엄마 생전에 나는 모시옷 두 벌을 해 드렸다. 한 벌은 하얀빛 모시옷이었고, 또 한 벌은 비취색 모시옷이었다. 엄마는 그것을 번갈아 입으시며 외출하실 때마다 참 좋아하셨다. "어쩜 이리도 곱다냐." 그 말씀을 하시던 얼굴은 소녀의 얼굴이었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아름다운 것을 보면 다시 아이가 된다. 설레고, 웃고, 거울 앞에 오래 머문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보낼 때도 새것으로 모시옷을 입혀 드렸다. 마지막 길이고 또 평소에 가장 좋아하시던 차림으로 보내드렸다. 살아생전 여름마다 몸을 식혀 주던 옷이 이제는 먼 길을 가는 마음까지 시원히 감싸 주길 바랐다. 내가 해 드린 두 벌의 모시옷은 지금도 내 곁에 남아 있다. 장롱 깊숙이 넣어 두었다가 가끔 꺼내 보면, 이상하게도 엄마의 온기가 느껴진다.



여름이 다가온다. 거리에서 모시옷을 잘 차려입은 사람을 보면 나는 자꾸 걸음을 늦춘다. 혹시 저만치 앞서가는 저 뒷모습이 엄마가 아닐까 싶어서다. 세상에는 멀리 떠난 엄마를 다시 만날 수 없지만, 다행히도 엄마가 남긴 취향과 습관, 또 손길은 자꾸 다른 사람의 몸을 빌려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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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 없이 맑고, 소박하면서도 우아하고, 오래 두어도 빛이 바래지 않는 모시옷은 종갓집 종부 엄마 같은 성품을 닮았다. 올여름에도 모시옷을 입은 사람을 보면 또 마음으로 끌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