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구두 그녀
만나는 모임에서 보면 늘 옷차림이 멋있는 여인이 있다. 그날도 빨간 구두에 너덜너덜 과하게 찢어진 청바지. 중년에 나이를 생각하면 파격이다. 그런데 그녀의 차림에는 억지가 아닌 자연스러움이 있다. 주바카라스럽지도 않고, 어색하지도 않다. 늘 신선하게 다가온다. 마치 회색빛 오후에 갑자기 붉은 꽃 한 송이가 피어난 느낌.
그녀만 나타나면 다들 "참 젊어 보이세요."라고 감탄한다. 그럼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다 사업 때문에 그러는 거죠." 그녀는 패션 사업을 하는 대표다. 젊은 층을 상대로 옷을 유통한다. 젊은 감각을 이해하려면 그들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젊은 사람들이 어떤 색을 좋아하는지, 어떤 실루엣에서 자유를 느끼는지, 무엇에 설레고 무엇에 싫증 나는지 알려면 그들처럼 입어봐야 한다고.
"젊게 입다 보면 생각도 젊어져요."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다들 시선이 멈췄다. 흔히 나이는 숫자로 말한다. 그런데 사람을 늙게 만드는 것은 아마도 세월보다 감각의 굳어짐인지도 모른다. 새로운 것을 귀찮아하고 낯선 취향을 비껴가고 또 유행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야 라고 하는 순간 마음은 먼저 늙기 시작한다. 몸보다 먼저 늙는 것은 아마도 '감탄하는 감각'이 아닐까 싶다.
젊음은 피부에서 느껴지는 팽팽함이고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과 또 그 특유의 자유. 어쩌면 그것이 진짜 젊음이다. 그렇지만 조금 더 젊어지려는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중년을 보면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단순히 유행보다 자기 안의 굳은 틀과 싸워본 사람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이라는 슬롯적 규칙과 체면이라는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습관. 그 벽을 조금이라도 넘어본 사람만이 그 파격 옷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무채색으로 숨어든다. 튀지 않는 옷을 고르고 무난한 색을 입고, 너무 젊어 보이면 민망해한다. 어느새 나이에 맞게 라는 말이 삶 전체를 지배한다. 하지만 그 나이에 맞게라는 기준은 없는 것인데 말이다.
젊은 날에는 어른처럼 보이고 싶어 하고, 또 나이가 들고 나면 다시 젊어지고 싶어진다. 인생은 참 아이러니하다. 사람은 평생 내가 아닌 다른 무엇이 되려고 애쓰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진짜 중요한 것은 젊어 보이고 싶은 마음보다 여전히 설렐 줄 아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패션은 사람 내면의 표현이다. 말로 다 하지 못한 마음이 옷을 통해 드러난다. 어떤 사람은 검은색 옷 속에 자신을 숨기고, 어떤 사람은 화려한 색으로 삶의 의지를 드러낸다. 또 어떤 이는 찢어진 청바지 하나로 삶의 호기심을 찾는다.
그날 그녀의 빨간 구두는 정말 강렬했다. 빨간색은 참 신기한 색이다. 살아 있다는 기분을 환기시킨다. 지친 사람도 빨간색 앞에서는 잠시 심장이 깨어난다. 그녀는 여전히 빨간 구두를 통해 세상과 아직 뜨겁게 연결되어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옷 하나를 고를 때도 난 내 나이에 괜찮을까를 먼저 생각한다. 마음은 예쁜 색 앞에서 머물러도 결국 손은 무난한 옷으로 향했다. 남들의 시선 속에서 안전해지고 싶은 것이다. 튀지 않고 실패하지 않는 선택. 그러나 그런 조심스러움 속에서 어쩌면 내 감각도 조금씩 늙어갔는지 모른다.
인생 후반으로 갈수록 필요한 것은 감각을 잃지 않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음악을 듣고 더 아름다운 색을 보고, 더 새로운 취향을 배우려 해야 한다. 그래야 삶이 낡지 않는다. 몸은 늙어도 감각은 늙지 않을 수 있다. 시간을 오래 써 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감각이 있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들의 패션에는 속도가 있지만, 나이 든 사람의 패션에는 이야기가 있다. 지나온 계절이 있고 견뎌온 시간의 결이 있다. 그래서 중년의 멋은 삶의 시간에서 나온다. 감각을 아는 이에게서 풍기는 멋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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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쯤 찢어진 청바지를 입어보고 싶다. 꼭 젊어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아직 내 안에 있는 감각을 확인해보고 싶어서다. 어쩌면 사람은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조금씩 다른 인생을 입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떤 날은 찢어진 청바지 하나가 잊고 있던 젊음을 꺼내주기도 할 테니까.